가깝게 지내는 동생이 이번에 애를 낳았습니다.
예정일을 2주나 앞서서 낳았는데 마침 진통이 시작된 날,
아기 아빠가 진작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job interview를 가게 된 바람에
내가 산모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되는 행운을 갖게 되었지요.

보통 초산은 예정일을 넘기기가 다반사고
넉넉잡아도 일주일은 여유가 있겠거니 싶었는데 산진통이란게 그렇잖아요.
예고없이 진행되니 산모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의 혼까지도 쏙 빼놓는..^^
그런데 그 동생은 워낙 외유내강이었는지 진통도 어찌 그리 침착하고 소리없이 하든지요.

“아프면 아프다고 해..”
“소리를 질러도 괜찮아..” 하며
내가 소리지르기를 종용(?)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생 생긴 모습 그대로 시종일관 참으로 조용하고 얌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10년이 훌쩍 넘은 그 옛날 내가 아이 낳았을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내 첫 아이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낳았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요즘처럼 원하기만 하면 인터넷을 통해 뚝딱 정보가 넘쳐나던 때도 아니었고,
고작 몇 권 안되는 책이며 주위 사람들에게 주워들은 이야기가 전부였으니까요. 
난 새벽에 진통을 시작했는데 이정도면 됐다 싶어 병원에 갔더니
당당 멀었다며 집으로 돌려보내더군요.
그렇게 정신 없는 와중에도 ‘뭐 이런데가 있나…아파 죽겠구마는…’ 하며
애꿎은 간호사를 원망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고  진짜 애 낳을 만큼의 진통이 반복됐을 때 다시 병원에 갔는데
이제는 병원에서도 제법 받아줄 만큼의 진통이었는지 바로 분만실로 직행 했었지요.
옷을 벗어 가운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는데 그때 시트에서 느껴지던 차가운 감촉..
정신없는 중에도 그런 느낌은 오래 남는지 지금도 시트의 차가운 감촉이 생생합니다.ㅠㅜ
그리곤 줄곧 진통에 대한 기억 밖에는 없네요.
무통분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지라 죽어도 무통주사는 안 맞겠다고 우겼던 기억..
진통이 없을 때는 잠깐 잠에 곯아 떨어졌다가, 진통이 시작되면 금세 깨어 끙끙거리고 소리 지르던 기억..
지금 생각하니 나는 진통도 참 시끄럽고 솔직하게 했다..싶어집니다.^^;;;
아마 간호사들은 굉장히 시끄러운 동양여자가 애 낳으러 왔다고 말들이 많았을지도 모르구요.
나중에 남편에게 내가 소리지른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냐 물으니
'얼마나 아팠을까..'싶었다고 대답해주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은 좀 했었지요.
‘뭔 여자가 소리를 이리 질러대나…’ 생각했다면 한참동안 부끄러웠을 것 같거든요.:-)

병원에 들어간지 거의 12시간 만에 아이를 낳았는데 오랜 진통 후에 느껴지는 감격때문이었을까요?

아이를 가슴에 안겨주는데 어찌 그리 눈물이 나든지..
진통할 때 내질렀던 소리보다도 더 큰 소리로 엉엉 울었습니다.

‘그래.. 부족하고 모자란 엄마에게 와줘서 고맙구나..’
‘이렇게 건강하게 무사히 세상빛을 보고 나와주어 고맙구나..’
그런 생각에  핏덩이 아이를 안고 그렇게  엉엉 울었던 것이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그때 울었던 그 울음의 의미를 간혹 되새기게 됩니다.

10달 동안 내 속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고, 12 시간 이상의 진통을 해서 낳은 내 아이..
그 아이를 낳았을 때의 감격과 벅참을 기억하고 되새김으로써
점점 커가는 아이를 대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거지요.

왜…초심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이를 낳으면서 가졌던 처음의 마음을 간직하면서 아이를 키우면
정말 제대로 키워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자라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고백하건대, 시간이 지나다보면 진통의 아픔도 차츰 잊혀져가고, 
아이를 가슴에 안고 처음 가졌던 감격과 벅참도 묽어져갑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맨 처음 아기가 안겨주었던 새 생명의 감격과 벅참이 있었기에
밤잠을 설쳐도, 하루종일 아이의 시간표에 맞춰 생활하게 되어도,
나를 버리고 아이의 존재만으로 온 세상이 꽉 차게 되어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으쓱해지기도 하고 뿌듯해지기도 하거든요.

인연이 있었던 모양인지 친한 동생의 아이는 내 첫 아이의 몸무게를 그대로 갖고 태어났습니다.
6 파운드 9온즈..
태어난 시간도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니까 얼추 비슷했구요.
게다가 볼이 발그레한 어여쁜 여자 아이라 내 딸처럼 엄마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리라 믿어봅니다.

임신을 했을 동안은 예비엄마의 꼬리표를 달고 살았을 테지만
산고 끝에 엄마라는 정식 이름을 갖게 된 동생..
그 동생에게 이슬이 비치고 진통이 시작되어 병원에 간 날.
그 날의 쌀쌀했던 새벽 공기는 내 평생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밤을 꼴딱 새는 고생은 조금 했지만,
내 인생에 두고두고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동생에게
칼럼을 통해 정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를 그 자리에 있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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