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이 불어 울타리가 무너졌다.
강풍 때문에 울타리가 무너진 게 몇 년 전에 한 번, 그리고 이번이 두번째다.
나무조각을 이어 붙인 울타리라 그닥 견고함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지난번에 무너졌던 그 자리가 또 다시 말썽이다.
아무래도 그 자리가 바람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인 것 같아
이번에 수리할 때는 특별히 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울타리가 무너져 내린 동안에는
옆집과 우리집 뒷마당이 휑하니 뚫려서 마치 서로의 민낯을 보는 듯 어색했다.
집과 집 사이...
굳이 담이란게 없어도 별 문제는 없을텐데
늘상 있어왔던 울타리는 너의 집, 나의 집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었고
그것이 무너진 순간 빨리 원상복구를 시켜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까지 주었다.
누구나 있을 땐 모른다.
든든하고 꿋꿋하게 서 있을 때는 그것이 울타리였는지 알려고도 하지않고 알아도 무심하다.
그런데 그것이 무너진 순간..그때 깨닫는다.
울타리가 나의 성을 더욱 더 견고하고 따뜻하게 보호해주는 존재였음을..
흔히 부모를 울타리라고 표현한다.
울타리가 그렇듯 부모의 역할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나를 가두기도 하고, 나를 보호해주기도 하는 것 같다.
부모가 내 곁에 있을 때는 별로 관심이 없고 무심하지만
떠나게 되면 존재만으로 얼마만큼 위로가 되고 보호가 되었는지를 깨닫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울타리는 다시 세울 수 있지만,
더 견고한 것으로 세워 다시는 강풍 따위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지만,
이미 떠나버린 부모는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이다.
멀리 산다는 이유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나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님들에게 소홀했다면 오늘은 전화 한 통 잊지말자.
잦은 기침으로 병원에 가신 93세 친정 아버지는
어쩌면 폐암일 지도 모른다는 판정을 받았다 한다.
수술을 하겠느냐는 의사에게 아버지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가겠노라 했단다.
나이가 90이 넘었는데 이제 죽어도 이상한 것이 아니지않냐 했단다.
아직도 나는 폼나는 바바리를 입고 쩌렁쩌렁 말씀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귀가 안들리고, 기침을 계속 하시고, 입맛이 없어 밥 한 그릇 비우기가 힘드시지만
그도 나에겐 크고 높은 울타리였다.
견고하고 높아서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울타리..
울타리를 고치느라 남편은 거진 한나절을 고생했다.
못 챙겨주고, 나무 챙겨주고 나는 그저 곁에서 허드렛일을 했을 뿐이지만
다시 우뚝 선 울타리는 똑바로 서서 다시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위용을 자랑한다.
편찮으신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훌훌 털고 일어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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