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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굴러가는 아이들

응답하라 1988..안녕 내 추억, 내 청춘 김복희 (bokkp) 2016-1-24  18:04:57

'응답하라 1994'를 보고 글을 쓴 것이
2년 전 2013년 12월이었는데
다시 '응답하라~'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어쩌면 내게는 응사보다 응팔이 더 설레고 시리고 추억이 돋았으니
뭔가를 써서 기록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으리라..
 
1988년 당시 나는
함께라는 이름으로도 잘 어울렸지만
혼자 있기를 즐겼고,
고개를 숙이고 다녔으며
긴 생머리 휘날리며 청순한 척 하다가도
어떤 때는 미용실 원장의 권유로 
머리카락에 치명적인 z 파마를 하기도 했던
대학 3학년생이었다.

드라마에서라면 보라의 나이 정도..가 되겠지만
보라처럼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인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밤낮으로 도서관에만 처박혀 살았던 범생이도 아니었다.

8년 전 쯤 그때를 회상하며 적은 글을 옮겨보기로 한다.

***************

학교 다닐 적엔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길을 나서기도 했었다. 그것은 몇 날 며칠을 요구하는 길떠남이 아니라 그날 하루..그날 몇 시간을 아무 생각없이 걷는 일이었는데 대개는 수업이 없는 아침 시간이거나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쓸쓸한 오후 시간이기도 했다. 어깨에는 가방 하나 둘러매고 가슴에는 책 두어 권을 장식처럼 보듬고는 이 거리..저 거리...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자가용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어도 맘만 먹으면 가지 못할 곳이 없었지만, 내 행동 반경은 여기 아니면 저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극히 편협하고 왜소했다.

가끔씩은 '쉼'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카페에 들어갔었는데 내가 자주 머물렀던 카페의 이름은 '오래된 시계'였다. 학원이 즐비했던 동구청 어느 길목,  어느 건물, 어느지하... 한 쪽 벽에 커다란 시계가 죽은 듯이 걸려있고 자리마다 깨알같은 낙서가 침묵처럼 흩어져 있었던 곳. 아주 가끔씩 나는 그곳에 들러 3000원 짜리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혼자서 새털같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핸드폰은 언감생심, 삐삐조차도 내것으로 소유해보지 못했던 시절이라  그곳에 그렇게 앉아있으면 어쩐지 나와 관계된 모든 것과 단절되어 있는 듯한 야릇한, 소외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오래된 시계'에 남다른 애정이 있거나 특별히 되새길만한 추억거리가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아주 가끔씩, 문득 혼자라고 느껴질 때, 커다랗게 한 벽을 차지하며 눅눅한 자리를 지키던 오래된 시계가 생각난다. 내 젊은 날 내가 잠시 머물렀던 자리, 내가 고독이라는 사치를 마음껏 누렸던 곳, 깨알같은 낙서들 속에 우리네 한살이가 숨쉬어 있던 곳이었기에 말이다.

대학생들이 자주 가는 카페에 적힌 낙서들이야 뻔할 뻔자, 누구야 사랑해, 우리의 사랑 변치말자 따위의 사랑고백이거나, 사랑보다 강하다는 우정이야기, 혹은 EDPS라는 말로 가볍게 둘러댔던 음담패설이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 아무도 안보는 틈을 타 주절주절 몇 자 적어놨든가? 기억나진 않지만 만약 적어놨다면 폼 잡는답시고 고독이 어쩌고 외로움이 어쩌고 방황이 어쩌고 하며 깝죽거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 나이 때는 그런 개폼도 폼이라고 생각하며 잔뜩 힘주었던 때였으니까. 요즘에도 필시 대학생들이 북적거리는 곳에는 오래된 시계처럼 낙서로 뒤덮인 카페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누렸던 외부와의 단절은 꿈도 꾸지 못하리라. 

밥은 혼자서 먹느니 차라리 굶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던 때 어찌 그리 커피는 혼자 마실 수 있었는지 밥과 커피의 차이가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아도 젊었을 적 나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밥은 혼자서 꾸역꾸역 먹지만 커피는 꾸역꾸역 마실 필요가 없는 차이..밥을 먹으면서는 한눈 팔 수 없지만 커피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마실 수 있다는 차이..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실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간혹 영화도 혼자 보았다. 그 시절에는 개봉한 영화를 하나씩 상영하는 개봉관과 여러 영화를 동시 상영하는 동시상영관이 있었는데, 나는 주로 동시상영관에 들러 철 지난 영화를 두 편씩 싼 값에 배불리 보았다. 게다가 그 당시 동시상영관에서는 두 편 중 한 편은 꼭 야한 영화를 해주는 식이어서 실비아 크리스탈의 '차탈레 부인의 사랑'이나 보데릭의 '볼레로', 킴베신저의 '나인하프위크' 등의 외화는 물론이고 이대근의 '변강쇠', 이보희의 '어우동', 원미경의 '뽕' 등의 국내영화도 혼자서 숨죽여 보기에 충분히 감미로왔다.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면 대개는 사위가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존재가 하얗게 드러나는 대낮보다도 애써 보려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그 어둠이 좋았다. 그 어둠을 잘 이용하면 나는 숨어있으면서도 내가 보고자하는 것은 얼마든지 볼 수 있었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숨을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둠을 벗삼아 때때로 집까지 마냥 걸어가기도 했다. 그럴 때 올려다 본 하늘에는 변함없이 손톱 모양의 초승달과 친구처럼 반짝이는 별 하나가 한 발자국  떨어져서 떠있곤 했는데, 지금도 간혹 밤에 올려다 본 하늘에선 그때 내가 봤던 초승달과 별 하나를 보게 된다.

이상하게도 내가 올려다 본 밤하늘엔 꼭 초승달과 별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용케 그것들이 하늘에 있을 때만 내가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선후관계가 어떻든지 아무튼 무심코 올려다 본 밤하늘에 초승달과 별 하나가 떠있으면 구성진 예감처럼 마음을 파고드는 싯귀가 있었다.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어머니...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의 한 대목을 되내이며 걸어가는 길..그 길이 꽃길이건, 밤길이건 그런 것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무작정 나선 걸음에는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이유가 있다면 무작정이란 단어가 더이상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한번씩은 우연히 지인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는데, 내 인생에 우연히 누군가를 만난 일이 곱씹어봐도 몇 번 되지 않은걸 보면 필시 그냥 눈인사만 하고 지나치기가 십상이었을테지만 혹시라도 반가운 이를 만나게 되면 어느덧 그 일행에 합석을 하곤 했다. 혼자 시작한 발걸음이 여럿이 되고 무작정 시작한 길이 행로가 정해지면 사색과 가라앉음의 분위기는 어느새 들뜨고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곤 그 속에서 나는 혼자있음을 즐기기도 하지만 어울림 역시 사랑하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진정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무척 힘들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마음속 깊은 그곳에 늘 나보다 남을 먼저 의식하는 센서가 작동했고, 그 센서는 곧잘 회피와 자기 숨김의 방식으로 나타나곤 했으니까...

남을 의식하는 행동은 손쉽고도 간단하게 '배려'라는 이름으로 치장되었지만 내가 행동하고 생활하는 모든 공간과 시간 속에서 그것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자신이 혐오스럽고 싫어지기도 했다. 그때의 기억을 가만히 떠올리면 이중생활이라는 말로 함축할 수 있으려나?
**************

스스로 고백한 과거의 글을 보니
지금의 나와는 360도 다른 사람이 1988년엔 살고있었다.
그래서 난 입버릇처럼 "과거의 나도 좋았지만 지금의 내가 좋아.."라고 말을 하는 모양이다.
27년 전,
그때는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았었는지
그때는 무슨 고민이 그리 많아 세상 고민 다 짊어진 사람마냥 우울해하고 방황했는지..

'우울하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응팔의 덕선인 나로 하여금 '밝아서 청춘이다'라는 말이 
그 시절엔 더 어울리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줬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가 더 빛나는 것은
과거의 나를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안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다면...
아픔과 슬픔과 고민은 그때 그곳 그 과거 속에 묻어두고
뛰쳐나오자.

이미 가버린 시간이지만
다시 오지 않을 그 시간이 있어
그 깊은 고민과 그 깊은 생각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음을 알기에 그 시간들에 감사하자.

그런다면...
빛나는 중년을 위해 나아갈 발판은 다져진 셈이다.
이제..펄쩍 뛰기만 하면 된다.

응답하라1988년..
내 추억, 내 청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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