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명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집 딸들은 다 좋아하지 않았으리라.
즐기기 보다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그도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나눠주는 일이었으니까.
손이 크고 나눠주기 좋아하는 엄마는
친척들에게 돌린다며 유과를 만들곤 했는데
-우리는 유과를 산자라고 불렀다-
각 방마다 연탄 불 활활 땐 방바닥에 색색의 반죽 민 것을 말리고
말린 것들을 뒤집고,
뒤집고 나면 튀기고,
튀기고 나면 조청을 발라 투박하게 가루를 낸 살 튀밥을 발라주었다.
보통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말린 것들을 뒤집는 일과
조청을 바른 유과에 튀밥을 발라주는
지극히 쉬운 일이었지만,
우리는 유과 때문에 방을 내주어야 했고
어떨 때는 하루종일 그 일에 매달려야 했다.
석작(대나무함) 가득 맛있는 유과를 담아 친척들에게 보내면서
엄마는 힘든 고생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어디 명절 뿐이랴..
제삿날에는 하루 종일 전 만드느라 날 새는 줄 몰랐고,
과일이며, 떡이며 동네방네 나눠주기 바빴다.
이제는 다~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오늘은 유난히 그 시절, 신명나게 일하던, 목소리 쩌렁쩌렁하던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며칠 동남아 여행을 떠난다는 작은 언니랑 통화 중에
엄마가 여행한다고 용돈을 주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울 엄마는 아직까지도 그런 거 참 잘 해~"
"그니까, 절대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지. 그래선지 엄마는 부자는 아니어도
한번도 부족하게 산 적은 없는 것 같아."
"맞아. 그게 엄마가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인 것 같아.
우리가 물려받아서 우리도 움켜쥐려고만 하지 않잖아. 그치"
"그럼그럼, 움켜쥐면 그 순간엔 자기 것 같아도 결코 그게 아니니까."
돈이란 돌고 돌고 돌아서 돈이라고 한다지?
어쩌면 엄마가 다른 사람을 위해 쓴 돈이
결국 돌고 돌고 돌아 다시 엄마에게 갔을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보다 더 많이 갔을 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땐, 불평하고 짜증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엄마의 유산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엄마의 본.
그것이 엄마가 말 보다 행동으로 보여준 유산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그들은 엄마가 자신들에게 남겨준 유산이 무엇이라 여길까?
늘 밝았던 엄마 모습이 엄마의 유산이 되길 바란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정직하게, 원칙을 지키며 살았던 엄마의 원칙이 그들의 유산이 되길 바란다.
화목한 가정을 일구기 위해 매일, 매 시간 노력한 엄마의 정성이 그들이 유산이 되길 바란다.
엄마를 보고 온 지 겨우 두어 달 지났을 뿐인데
오늘 따라 유난히 엄마가 그립다.
깡마른 체구에 한 시도 쉬지않는 부지런함.
이젠, 좀 살살하라고 이따 일어나실 시간에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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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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