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국 생활이 2주가 넘었다.
이제는 슬슬 익숙해질 법도 한데
거리도 건물도 내게는 여전히 낯설다.
이래뵈도 나로 말할 것 같으면~~미국에서는 길찾기 선수고
한번 가본 곳은 다음 번에도 척척 잘 찾아가곤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곳은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 같고
날이 갈수록 그저 빙빙빙 맴도는 느낌이다.
길 가에 있는 상호 하나 씩을 확실하게 외워두어야 겨우 안심이 되는 정도니
제 아무리 미국에서 지도를 잘 봤다 해도 이곳에선 명함도 못 내밀 일.
여기가 겐가~ 싶을 때는 그저 미국에 있는 우리집이 그립다.
보청기가 있음에도 보청기를 끼지 않고 묵묵히 침묵을 견뎌내는 아버지를 보는 일이나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제 한 몸 아끼지 않고 부지런을 떠는 엄마를 대하는 일,
예쁘게 치매가 오긴 했지만 1990년 이후의 기억을 모두 잊으신 듯
며느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마주하는 일.
이런 일들 하나 하나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어렵고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하기만 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연습이 없었듯이
늙어가는 부모를 마주하는 데도 연습이 없다.
그 때문에 건장하고 늘 우러러만 보였던, 큰 산처럼 커보였던 아버지가
가녀리디 가녀린, 기운없고 잘 들리지 않는 노인의 모습으로 다가오니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막막한 모양이다.
다른 사람은 귀가 다 안들려도
내 아버지에게 그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다른 사람에게 치매가 와도
내 시어머니에게 그런 일이 생길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
생각도 못한 일이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을 멀리서 듣기만 하다가
막상 눈으로 보고 겪게 되니 가슴이 아프다. 목이 메인다.
있는 동안 더 잘해드리리라 마음을 잡아본다.
이번이 어쩌면 당신들을 보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음을,
내가 후회하지 않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음을
마음에 꼭꼭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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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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