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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한글방

2단계-ㅅ편 그리고 `저는 42년생 초졸인 농부의 딸입니다" youngchae (elainemom) 2021-5-18  10:45:16
2단계 ㅅ 편입니다.

물건찾기- 할때는  밑에 쓰여진 단어를 먼저 읽게 한 후 시작하세요.  박스안에 있는 것 외에 다른 것도 쓰게 해보세요.

문장 읽기- 처음 몇번은 천천히 정확하게 읽게하고, 점점 빠른 속도로 읽게 해주면 나중에 긴 문장 읽기 할때 도움이 됩니다.


이야기 넷- 저는 42년생 초졸인 농부의 딸입니다.

 

나는   충청도 아주 시골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초등학교 밖에 다니지 못한, 그것도 공부를 너무 잘해 월반해서 초등을 4 만에 졸업하는 바람에 학교 생활이 4 뿐이 우리 아버지.

그런 우리 아버지의 소원은 자식 넷을 모두 대학에 보내는 것이었다.

 

대학이 뭔지도 모르던 초등 때부터, 아버지는  대학가야 하니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무슨 책인지도 모르시면서, 책 파는  사람들이 시골에 오면 무조건 전집으로 사셔서 사기를 당한적도 있었다. 

돈을 쓰고 싶은데, 자식들 나중에 대학보내려면 아껴야 한다며 

매일 엄마에게 잔소리 하시던 아빠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서울에서 70년대 생인분들은 대학가는게 어느 정도 당연했겠지만

내가 살았던 충청도 시골에서는 상업고등학교를  많이 갔고, 상고를 졸업 바로 취직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아마  우리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대학은 꿈꾸지도 않았을 거다.

 

좋은 대학 가려면 도시로 가야한다고 해서, 고등학교를 대전으로 갔고 거기서 다시 서울로  대학을 갔다.  

대학을 선택할 때도 아버지는 형편상 학비가 충남대를 가라고 했지만,

나는 오빠가 다니고 있는 서울에 있는  사립대를 가고 싶어했다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다는 딸의 말에 아버지는 한번의 반대도 없이 가라고 하셨다.


옛날 분들은 더구나 딸이면 서울로 대학을 보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울로 가면 학비도 배로 비싸고, 생활비도 많이 드니까 지방 국립대를 가게 했다.

 

그래서 내가 대학가는 해에 오빠는 군대를 가야했다.

 

충청도 작은 시골에서 자랐지만, 딸이라고 아들과 차별 한번 안하셨고,  

넉넉하진 않지만 딸이 하고 싶은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하셨던 아버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신,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지금은 파킨슨병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고생하시지만, 

전화 드리면 항상 밝은 목소리로 ' 괜찮다고, 너희만 지내면 아버지는 좋다고' 하시는.

평생 자식에게 바라지도 않고, 작은 용돈 한번 드리면 세상 기뻐하고 고맙다 그러시는

우리 아버지가 사무치게 보고 싶은 5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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