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는, 천천히 갑니다
천천히 걷습니다
천천히 걷기에
빨리 해내지 못합니다
그런 아이를 키우면서
하루에도 열 두번도 무너졌습니다.
테라피에, 공부에, 이것저것
시킬 게 너무 많고
신경 쓸 게 너무 많았습니다.
매일 즐겁게 쓰던 다이어리를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여쁜
일러스트, 그림, 스티커로 치장하던
다이어리를 저만치 치웠습니다.
자폐성 발달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이런 제목으로 커다란 바인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두꺼운 바인더가 금새 찼습니다.
한 권, 두 권, 세 권...
그러던 어느 날
다시 다이어리를 집어 펴 들었습니다.
오늘의 날짜를 적으니
몇 년을 건너뛴 시간의 공백이 보입니다.
그 공백에는 오로지 슬픔과 절망만 가득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다시 예쁜 그림과 스티커를 그리고 붙입니다.
슬픔과 절망 속에 핀 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써 나갈 이 다이어리에도
슬픔과 절망은 스밀 것입니다.
하지만 이전의 것들과는 다릅니다.
슬프지만,
천천히 가려 합니다.
이 아이가 제게 가르쳐 준대로 말입니다.
앞으로 함께 다이어리를 쓰려 합니다.
그동안 쌓아온 바인더를 펼치려 합니다.
천천히 걸어가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걸어가는 길에,
꽃 한 송이 놓습니다.
부디, 향기롭기를요...
-Slow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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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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