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연구의 권위자 Ami Klin박사는 말한다.
다른 많은 장애나 질병, 질환, 증상이 그렇지만
자폐증 또한 유전적으로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고.
자폐증 또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는
커가면서 생기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다고.
준이에게서 언제부터 자폐 스펙트럼 증상이 나타났는지 생각해 보면,
딱히 언제라고 하기가 뭣하다.
우선, 걷기가 느렸다.
목가누기, 뒤집기, 기기는 오히려 티피컬 아이보다 더 빨랐다고 할 수 있기에
걱정을 늦게 한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걷기만 하면, 또 다 되는 줄 알았다.
우리 집에, 우리 부부에게, 발달장애라니...
가당치도 않지.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평생 살았기에
'보통'이 아닌 삶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조차 하지 못할 때도 준이는 자폐성 스펙트럼 발달장애에 속해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전문가, 특히 Amy Klin 박사에 따르면 말이다.
아기가 갖고 태어난 증상이나 기질이 커가면서 드러나고 발현될 뿐,
이 아이는 갖고 태어났다.
이렇게 보아야 할 것이다.
아주 어린 아기 적에도 생각해 보면 그렇게 티피컬하지 않았다.
큰 아이를 키워봤으니 알만도 한데, 정말이지 눈이 가리워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큰 아이의 '예쁜 짓' 위주가
'발달'면에서 꼼꼼히 영상을 찍어놓고 싶다.
퍼즐맞추는 모습, 컵 쌓는 모습, 그림 그리는 모습, 말하는 모습 등등을
나이별로 꼼꼼히 기록해두면 둘째, 셋째 아이와 비교가 가능하고
그게 만일의 경우를 하루라도 더 빨리 대비할 수 있는 지침이 되어 줄지 모른다.
설마, 그렇게까지...하기에는 지금 자폐성 발달장애의 유병율이 너무 높다.
정확한 통계는 나라마다 다르고 미국도 주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50명, 60명 중에 한 명이라는 이야기가 대세인 것 같다.
Ami Klin 박사는 자폐증의 조기발견이 대단히 중요하며
그 발견을 두살때까지 미룰 필요도 없다고 한다.
이미 생후 6개월의 아기를 비교해도 그 반응 정도가 확연히 다르고
ASD의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생의 첫 몇 주에 ASD의 가능성을 알 수 있다면,
아이마다 케이스와 증상은 천차만별이라 어느 하나의 '만병통치약'을 구할 수는 없어도
그 아이만의 어려움을 포착해서 그 어려움을 집중적으로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준이를 키우면서 배운 것은,
ASD는 '낫게 한다'기 보다는 '좋게 한다'가 더 맞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ASD는 타고나는 것인만큼 완벽한 제거가 어려울 지도 모른다.
어떤 병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고, 아이의 유전적 성향, 기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전적이라고 해서 부모 중 누군가의 잘못이나 흠이라고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초점은 아이를 '좋게 하는'것에 맞춰져야 하지 싶다.
한 때는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기를 불편해하는 남편을 보며 슬그머니 책임을 민 적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아이의 '유전적 특징'에는 분명 나도 기여한 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윗대, 남편의 윗대, 그 윗대, 윗대...
그걸 따져 책임전가를 한다해도 나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준이는 태어나기 위해 태어난 소중한 생명.
태어나도록 운명지워진 고귀한 생명.
내가, 우리 가족이, 그리고 희망컨대 이 사회가 해줬으면 하는 일은
준이가 지금 가진 어려움을 조금은 덜어서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이다.
어려움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 세상을 살아낸다는 것은 충분히 힘든 일이니까.
나 혼자 살아내기 힘들지만
'같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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