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아
며칠 전, 엄마와 아빠는 네게 자폐증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기로 마음 먹었단다.
그래서 네게 대화를 청했지.
엄마와 아빠는 잠시 말을 망설였어.
입이 잘 떼지지 않아서 말이야.
네가 Autism Spectrum Disorder라고 말을 해야 하니 말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너인데
과연 이 말을 납득할 수 있을지...
납득이 안 돼 실망하고 좌절하고 속상하지는 않을지...
어떻게 하면 무리없이 네가 이 일을 받아들여줄 수 있을지
엄마, 아빠는 마음이 복잡했단다.
하지만 이제는 네가 네 자신에 관해 제대로, 정확하게 알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어.
네가 가진 ASD는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 말이야.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어.
"준아, 혹시 Autism이란 말 들어봤니?"
그러고 엄마 말을 아빠가 받아서 할 생각이었지.
본격적인 말은 아빠가 해 주기로 했어.
엄마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말이야.
그런데 너는 다른 곳을 보며 이렇게 말했지.
"Yes, I know. I have autism."
엄마, 아빠는 너무 놀라서 서로를 마주보았지.
"You...know...that?"
우리는 대뜸, 누가 너한테 그걸 알려주었느냐고 물었지.
그게 좋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알고 싶어서 말이야.
너를 놀리거나 네게 상처주려고 한 말은 아닌지 걱정이 돼서 말이야.
너는 이렇게 대답했어.
"It's just...I just know that."
그냥 알게 됐어.
그랬구나.
일반학교의 인클루젼 클래스에 있다 보니 네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갔구나.
엄마는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어.
그걸 네가 드디어 알게 됐는데, 네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이 났어.
네가 티피컬 아이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넌 어땠을지.
지난 며칠 간 너와 이야기를 나눠본 뒤
오늘에서야 엄마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단다.
네가 아이들에게 'Hi'하고 인사하면 왜 시큰둥하거나 제대로 'hi back'을 해주지 않았는지,
왜 아이들이 인스타그램에 생일파티며 극장에 간 이야기를 잔뜩 올리면서
너는 한 번도 불러주지 않는지
왜 아이들이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너를 한 번도 초대해주지 않는지...
왜 너는 친구가 없는지...
네가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엄마가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단다.
네 나이에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잘 아니까 말이야.
학교가 끝나고 또 주말이면 늘 혼자 집에 있는 널 보며
엄마 아빠는 재미있는 일을 많이 만들어주려 애쓰지만
부모가 채워줄 수 없는 친구의 공간이란 게 있다는 걸 잘 아니까 말이야.
그 모든 걸 네가 'ASD'로 돌릴까봐,
네가 ASD를 가져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까봐
엄마는 그게 마음이 아팠던 것 같아.
그래서 네가 ASD를 가진 걸 부끄러워하거나 죄라도 지은 것처럼 여길까봐 말이야.
이제 우린 계단 하나를 올라선 거라고 생각해.
너도 이제 네가 ASD인 것을 알았고
엄마, 아빠도 네가 그걸 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 모든 걸 우린 하나하나, 인생의 계단을 올라가듯 밟아가려고 해.
짧은 시간에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
선생님, 전문가들의 도움도 필요할 거야.
오늘부터 엄마는 책에서 읽은 이 글귀를 매일 외우듯 간직하려 해.
자폐인은 인류의 정상적인 일부이며
비자폐인과 똑같은 자질을 보일 수 있다.
그렇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자폐증이 있다.
바로 그래서 존중받고 받아들여질 자격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어.
그리고 그 존중은 네 자신에게서 제일 먼저 나와야 해.
네 자신을 존중하길, 준아.
그럴 수 있도록 엄마, 아빠가 온힘을 다해 도와줄 거야.
우리 멋진 아들, 준아.
2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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