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아
부쩍 봄 날씨가 완연해졌구나.
긴소매 입기를 싫어하는 우리 준이가 좋아하는 계절이 왔네.
반소매를 입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이봄에도 잘 먹고 잘 자고 쑥쑥 잘 자라주렴.
어제 저녁에 밥 먹으면서 네가 한 말 덕분에
엄마 아빠 형아는 오늘도 웃을 수 있구나.
삼겹살을 찍어먹을 수 있게 고추장이 필요하다는 아빠에게
엄마가 마침 고추장이 딱 떨어졌다고 했지.
그러자 네가 그랬잖아.
고추장이 아쉽네.
그 말을 듣고 엄마 아빠 형아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 보았지.
그리고는 너를 막 칭찬했잖아.
네가 '아쉽다'란 단어를 처음으로 제대로 쓴 날이거든!
이제까지 너는 뭔가 아쉽다, 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부끄럽다'고 자주 표현했어.
그때마다 그게 아니라 이렇게 말하는 거야...
하고 고쳐주어도 넌 단어를 기억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지.
사실, '아쉽다'는 단어는 쉬운 개념이 아닐 거야.
'~하고 싶다', '~갖고 싶다'하고는 또 다르니까 말이야.
무언가 있으면 채워질 것 같은 자리가 비어 있고,
그 빈 곳을 느끼며 하는 말이 '아쉽다'거든.
언젠가 그렇게 알려주었더니 네가 '할머니가 아쉽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지.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경우에는 '그립다'가 또 적절하단다.
준아.
단어는 정말 어렵지?
엄마 아빠는 살아온 시간이 있어서 자연히 익힌 단어가 많지만
너는 계속 배워가야 하니까 말이야.
사실은 형아도 단어를 배우고 있는 중이야.
그러니까 단어를 잘 모른다고 기 죽을 필요는 없단다.
하지만 엄마는 단어란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단어'에는 한 가지 뜻만이 아니라 여러 뜻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감정, 느낌, 뉘앙스,
심지어는 색깔이나 냄새도 느껴지려 하거든.
사랑.
이 단어는 아주 달콤한 복숭아향이 날 것만 같아.
색은, 크림색이 좀 섞인 분홍색?
우정.
이건 '사랑'하고는 또 달라서 싱그러운 민트향이 느껴져.
색은, 푸른색과 초록색이 섞인 청록색.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엄마는 그렇구나.
준아.
단어는 이런 거란다.
한 단어가 누군가의 생을 품을 수도 있을만큼 품이 넓기도 하단다.
엄마는 네가 단어를 많이 알아갔으면 해.
어떤 시인은 모르는 단어를 하나 알게 되는 순간
새 우주가 열린다고 표현하기도 했어.
그 단어를 모를 때으 세계와 알고 난 다음의 세계는
천지차이라면서 말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우정, 사랑...이런 단어를 모르고 살 때와 알게 될 때는
정말 그 차이가 크지 않을까?
엄마도 여전히 단어를 배우는 중이야.
네가 우리를 찾아오기 전에는 몰랐던 단어들도 아주 많이 배우고 있단다.
그런 의미에서 넌 우리에게 우주를 열게 해 준 사람인 지도 모르겠어.
우주만큼 사랑하는 내 아들, 준아.
오늘도 웃을 수 있게!
0
쪽지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