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예찬론 (feat난 아직 싱글)

글 쓰는 일을 평생 업으로 해오면서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책을 내서 팬 사인회를 하거나,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기고하면서 팬레터(추후에 이메일로 진화했지만)를 받거나 혹은 방송에 출연해 운 좋으면 길가다 알아보는????

2023년에 팬레터? 사인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 하겠지만 공감하는 분들이 더 많을듯요, 그 만큼 나이 들었다는 말이겠지만요, 헤헷헤헷

아무튼 나에게 미시 USA는 신세계였다. 그동안 비즈니스나 마케팅 수단으로 여러 사이트를 운영하고 관리해 봤지만 이렇게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고 받는 건 처음이라 신기하고 경이로우며 어메이징하고 가슴 콩닥콩닥하며 또 한편으로 무섭다. 이미 많은 팬(?) 아니 공감대가 비슷한 친구라 표현하겠다. 이미 많은 친구들을 만나 쪽지나 문자를 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소주도 한 잔 했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슴 벅찬 경험인지 어떠한 글이나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이건 작가들만의 유일한 특권이라고 감히 자부할 수 있다.

오늘따라 왜이리 서론이 길까요?? 바로 바로 남편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미시 USA 논란의 3대장인 남편, 시댁, 아이 중에 오늘은 내가 유일하게 경험이 많은 남편에 대해 파헤쳐 보려고 한다. 바람이나 이혼, 폭력같은 심각한 얘기는 차후로 미루고(워낙 욕 잘하는 성격이라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욕 한번 실컷 할 계획임) 미시님들께 더 한바가지 욕 먹을 각오로 남편 예찬론을 펼쳐보고자 한다. 지금 남편과 심각한 전쟁 중인 분들은 이 칼럼을 제발 스킵하길 권한다. 나 너무 많이 전쟁들(?)을 치뤄 더 이상 싸울 힘이 남아있질 않으니까 말이다.   

생활비라는 개념이 신기한 1인=====

카지노 딜러로 일하면서 하루에서 수 십, 수 백명의 인간 군상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 중에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이 바로 커플들인데, 가장 강력했던 첫 인상은 바로 남자가 여자에게 게임하라고 돈을 주는 모습이었다. 그게 뭐가 이상해? 부부든 연인이든, 같이 여행와서 블랙잭 테이블에 앉아 남자 지갑에서 이백 불 꺼내 자기 백 불. 여자 백 불 주는 게 뭐? 너무 당연한 거 아니야? 별 게 다 신기하네. 맞다. 나는 그게 신기했다. 너무너무 희한하고 의아했다. 내가 이상하다고? 나도 안다. 아니까 오늘 이 글을 쓰고 앉아 있다.

그럼 남자하고 여행 가 본 일이 없냐고? 그럴리가요, 당연히 있지요. 내가 돈 내구요. 내가 돈 쓰구요, 내 지갑에서 이백 불 꺼내 나 백 불, 남자 백 불 준 적은 있어도 남자에게 단 돈 10불 아니 1불도 받아 본 적 없다. 그 수 많은 전 남편들(?), 전 남자 친구들, 전 스쳐 지나간 놈팽이들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쉽게 부부를 예로 들자. 결혼하면 남편이 집에 돈을 가져다 줘? 생활비라고 와이프에게 돈을 줘??  와우~~ 진짜??? 정말로????????????????? 미치겠네.

맞벌이인 경우에도 남편이 생활비를 준다네요? 허허 참, 당연히 남들 다 그러고 사는 일반 상식적인 일을 너무도 신기해 하는 나는…. 솔직히 맞다. 평범하지 않은 삶은 살아 온 것이 맞다. 정!말! 몰라서가 아니라 정!!말!! 그래본 적이 없어서 남자의 지갑에서 돈이 나오는 걸 보는 나는 항상 신기하고 어색하며 기분이 묘했다. 뇌 왼쪽 전두엽이 간질간질하다. 그냥 내가 돈 쓰는 게 편타.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다. 여자 지갑이 열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페미니스트 분들, 전업 주부 분들 잠깐만 진정해 주세요. 아직도 할 말은 많고 많으니까 말이에요. 

가정환경이 영향을 미칠까?=====

어려서 부터 난 아버지가 없었다. 아니 없었다기 보다는 그런 놈 따위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슬프거나 비극이라고 결단코 생각지 않는다. 그 만큼 엄마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아직까지도 돌아가신 엄마만큼 돈을 척척 써 대는 여인네를 본 적이 없다. 70년 대, 80년 대에 서버, 운전기사, 경비 아저씨, 심지어 주유소 직원에게까지 팁을 척척 뿌렸다. 심지어 당시 그들은 팁이 뭔지 몰라 얼떨떨한 얼굴을 했던 기억이 선하다. 강남의 집은 매일 드라마 속 부잣집 촬영지로 연예인과 스텝들이 들락거렸고 분당이 처음 지어졌을 땐, 오피스텔을 몇 채씩 척척 구입했으며 멀쩡한 건물을 몇 십억에 구입해 하루 아침에 헐고 주차장을 만들기도 했다. 

덕분에 더 엄청난 걸 누리고 살았으며, 아빠의 빈자리 따위에 눈물짓는 신파따위는 쓰지 않았다. 

한가지 다른 점은 같은 뱃 속에서 난 형제들인데 언니나 오빠는 돈 1불에 벌벌 떠는 성격인데 반해 나랑 남동생은 일명 기마이가 좋았다. 문제는 엄마만큼 돈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열린 지갑처럼 돈 쓰는 것만 꼭 빼 닮은 점이 내팔내꼰의 비극을 낳게 된 것이다. 그 말인즉슨 가정환경이 니 팔자가 이렇게 된 결과에 대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핑계대지 말라는 뜻이다. 한국 광고계 불후의 명 대사,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이 말 알지? 선택 누가했어? 나잖아? 그래서 인생이 버라이어티하고 재밌으며 한편으론 x같은 게 아닐까?

결혼은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니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게 정답이다. 하지만 감히 하지마! 혹은 해! 라고 지적질은 안했으면 좋겠다. ‘내가 해 봤는데 안하는게 나아→ 그건 니 사정이구요.’ ‘내가 해 봤는데 하는 게 훨씬 좋아→ 그건 정말 팔자 좋은 케이스구요.’ ‘내가 안 해 봤는데 뭐하러 해?→ 안 해 봤으면 shut up.’ ‘내가 안 해 봤는데 해 봐도 좋을 듯→안 해봤으면 또또 shut up!’

다시 한 번 정리를 하자면,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는 가정 하에 고민되는 상황이라면 니 맘대로 하라는 말이다. 그 때 그만 뒀어야지 땅을 치고 후회한들 늦은 것이고, 그 때 결혼 안 했다고 지금 행복하다는 보장 역시 없는 것이다. 말 장난 그만하자. 결혼 할 놈은 누가 말려도 하고 이혼 안 할 놈은 누가 부추기고 옆에서 지랄해도 안 한다. 다 내 팔자고 내 인생이라는 말이다.

그러다 문득. 미시 속풀이에 올라온 글 하나가 뇌리를 때렸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엄마가 자식의 결혼을 앞두고 사돈댁에서 이 사실을 알까 전전긍긍하는 글이었다. 흠….. 재혼 혹은 삼혼 넘게 한 사람들 얼마나 찔렸을지 안다. 자식의 일이니 더 예민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식 쪽 팔릴까봐 내 인생 참고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물론 더 신중하고 또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게 엄마의 도리겠지만 그렇다고 재밌자고 심심하다고 이혼하는 사람 없다. 그들의 가슴 뜯어내는 상처와 구구절절한 속내를 단지 ‘사돈댁’이라는 이유 하나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면 정말 인생이 너무 처절하지 않을까 싶다.  

사는데 남편이 꼭 필요할까?=====

사랑에 유효기간이 존재하는가 원론적인 질문이라면 대답은 당연히 에스이다. (이 역시 글이 너무 길어질 수 있으니 자세한 사랑의 유효기간은 다음 기회를 노리자)

그렇다면 남편은 어떤가? 필요할까? 젊어서 성호르몬, 도파민과 옥시토신이 철철 넘쳐나 지나는 사람만 봐도 섹스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던 한정된 미친 시간을 겪고 난 후 흔히 얘기하는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유지하는데 남편과 아내는 존재해야겠지!..........요?????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그 와중에 선택은 내 몫이지 남이 상관할 바 아니다,라는 말이다. 사람마다 처해진 상황이 수 억만 가지 다르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면? 충고정도는 가능하겠지만 다 큰 성인 역시 결정은 내 몫이다. 

남편과 매일이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또 다른 질문이라면 케바케겠지. 그런 사람 분명 있겠지. 내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들은 적은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대부분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하겠지, 꿈에서나 해볼 수 있을 듯. 그런데 그거 알아? 편하고 행복한 가족 이야기면 시청률 안나와요 시엄마가 물고 뜯고 남편이 바람 피우고 지랄을 해야 욕하면서 빅히트작이 되는 거니까요. 

자극에만 무뎌진 우리는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산다.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자잔한 행복, 내가 제일 그리운 따스한 말 한마디.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결혼을 했던 안 했던, 그게 남편이라면 더 금상첨화겠지만, 가장 해보고 싶은, 가장 듣고 싶은 말 사랑해, 오늘도 고생했어. 이 한마디. 제 아무리 노력해도 나만 평생 들을 수 없는 이 한마디. 

젠장,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신파극 찍고 앉아있다고? 아이쿠 그럴 수도 있겠는뎁쇼?????

나이들어 연애만 하라고? 왜? 도대체 왜????=====

아이에게 미안하다고들 한다. 누구는 이렇게 살려고 계획했나? 내팔내꼰이라고 한들, 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친들, 지금 내 상황이 요모양 요꼴인걸 누굴 탓해? 충분히 스스로 자책하고 무너지는 억장 겨우겨우 부여잡고 버텨내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면도칼로 긋지 마세요. 너나 잘 하란 말이에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원칙적으로 FM대로 살면 인생이 너무 극단적이지 않을까? 지루해서 심심해서 죽는다는 말이 충분히 생길듯? 그러니까 그 딴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나이 들어 연애만 하든 결혼은 백 번 하든 내가 알아서 할게요. 왜 사서 고생하냐고? 밥 해 주고 청소해 주고 병 수발 들 일 있냐고? 응. 하고 싶어. 늙어서 가정부 노릇 할 일 있냐고? 응, 안해 봤어. 해보고 싶어 나도.

예를 들어보자. 여자가 부자이다. 렌트 집이 몇 채 있다. 애들도 몇 명 있다. 나이 들어 결혼 하려니 혹시라도 사고로 먼저 죽으면 내 재산 모두 새 남편한테 가고 애들은 권한이 없는 거 아닐까? 그 정도 돈 많으면 제발 변호사 사세요. 유언장 빵빵하게 만들어 놓고 새 남편이랑 화끈하게 화려하게 잘 먹고 잘 사세요.

반대의 경우라면? 여자가 돈이 없다. 그래서 돈 많은 남자까지는 안 바라더라도 평범한 재력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치자. 나이 들어 알콩달콩 산다면 뭐 이런 글 쓸 필요도 없겠지만, 몸만 달랑 들어가 알고 보니 성격 파탄자 새 남편과 허구 헌날 싸우고, 돈 가지고 타박하고, 남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산다고 치자. 어쩌라고? 미시에 속풀이 하세요. 토닥토닥 해드릴게요,흑흑.   

식구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정으로 사는 거야. 요즘같은 세상에 이혼 안하고 참고 사는 것만 해도 어디야? 바람을 피워 아님 도박을 해? 이 정도면 그냥 살아. 다정하고 친절하기까지한 남편을 원해?? 푸하하핫! 꿈도 크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약간의 진심과 사심이 섞인 농담일 수 있고 억지로 현실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사랑의 베이스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랑이 없으면 정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내 지론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상상하는 무한대의 정신세계보다 더더더더 많은 다수의 부부들이 투닥거리면서도 서로의 품을 보듬으며 산다. 나는 그게 부럽고 또 죽기 전에 정말정말 해보고 싶을 뿐이다. 남편에게 1불 따위 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냥 내 돈 쓸게요, 나한테 달라고만 하지 말아요, 젠장.

나는 반지가 끼고 싶다.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실가락지라도 하나 끼는 게 소원이다. 심지어 악세사리 중에는 반지를 제일 좋아한다. 다른 데 끼라구요? 네 번째 끼워야 제일 이쁘거든, 진심으로. 이 코딱지만한 반지 하나가 의미하는 건 실로 대단하다. 

외로울 때 벗이 되어주고 따스한 말 한마디 남겨주고 같이 왁왁왁 욕해주고 같이 쏘주 한 잔 기울이고 진심이 담긴 다정한 눈빛, 허그, 토닥토닥, 가벼운 입맞춤….. 

에잇, 멸치 반찬에 소맥 한 잔 말아 먹고 잠이나 자빠져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