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되던 시절==========

담배를 처음 배운 건 14살인가 15살인가 중학교 2학년 올라가면서이다. 안다, 나도 내가 발랑 까진거. 때는 바야흐로 80년대 초반, 당시에는 어린 여학생이 담배를 피운다는 건 상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모든게 나쁜 친구들 탓 아니던가? 한창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어울려 다니던, 일진 축에도 못 끼고 그냥 술마시고 담배피우던 동네 양아치 언니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담배를 배웠다.

성인이 된 후에도 손에서 담배를 놓지 못했다. 여전히 여자에게 담배는 금기시 되던 시대를 살았지만 그래서 악착같이 더 피웠다. 남자는 되는데 여자는 왜??? 이해하기 힘들었고 용납하기 싫었다. 광고회사를 다닌다는 핑계로, 글을 쓰고 창작활동을 한다는 구실로 더 대놓고 버젓이 즐겼다. 엄하고 무서운 엄마 말을 안 들은 딱 두 가지. 의사가 되지 못한 것과 담배를 못 끊은 것이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딱 1년 금연 한 것을 제외하곤 담배를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다. 담배도 국산이 아닌 일명 미제만 즐겼다. 주로 말보로 레드나 미디엄을 하루에 한 갑 정도 피웠다. 담배 피지 않는 남자는 아예 만나지도 않았으며 술 마신 날에는 그 양이 2,3배로 늘었다. 스스로가 멋진 현대 여성이라 생각했고 사회의 거지같은 선입견에 맞서 떳떳하게 담배를 태우는 신세대라 자부하며 오만했다. 아픈 곳도 부작용도 없었다.

그러다 미국에 금연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발 빠른 업체들의 마케팅 전략으로 전자담배 열풍이 일었다. 말보로 레드에 값비싼 듀퐁 금장 라이터, 긴 손톱 사이에 섹시하게 꽂혀 있던 연기 자욱한 일반담배 대신 화려한 유광의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Juul이란 전자담배의 디자인에 콱 꽂혀버렸다. 기존의 연초에 비해 냄새도 전혀 없고 무식한 변명이겠지만 건강에 덜 해로울 것 같았으며 금연 전 단계로도 좋았으며 무엇보다 예뻤다.

콜드 터키 금연법==========

누군가 짧고 경쾌하게 쓴 글이 하나 보였다. 10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콜드 터키 금연법으로 단 칼에 끊었다는 내용으로 가끔 담배 심부름을 해 주던 남편에게 무지하게 칭찬 받았다는 심플한 내용이었다. 순간 머리가 띵!! 무언가에 세게 한 방 맞은 듯이 현타가 세게 왔다. 일명 몇 초 동안 모든 세계가 순간적으로 멈추듯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오직 그 문장에만 시선이 꽃혔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충격받은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이 담배를 사다 준다고? 였다. 내 평생 상상도 생각도 물어 볼 원인조차 이유조차 유추해 낼 수 없을 남편의 담배 심부름에서 우선 1차 충격을 받았고, 두 번째는 콜드 터키가 무슨 말인지 평생 처음 들어보는 금연법이 있다는 점에 다시 놀랐다. Cold Kurkey? 차가운 칠면조를 뭐 어쩌라고? 구글을 뒤졌다. 어이없는 웃음만 나왔다.

컴퓨터 중독이든 마약이든 담배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한 방에 딱 끊는다는 콜드 터키 금연법은 말이 쉽지 그게 생각처럼 된다면 그 누가 중독에 괴로워 하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그것이 알고 싶다 버전), 팔뚝에 붙이는 티코틴 패치이던 먹는 금연 처방약, 껌, 보조제, 금연 침, 한약 기타 등등 어떠한 것이던 시도해 봤고 실패했었던 과거와 달리 각인된 그 한 마디!

콜드 터키!! 그냥 내 의지로 한 방에 끊는다. 그래! 이거야!! 한 번 해보자!!! 우선은 늘 한 보루 사던 일반담배, 대 여섯 갑이 남아 있긴 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휴지통으로 직행. 바로 하루 전 날 사 놓은 Juul 리필 용액과 메인 전자담배, 요 부분에서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역시 가차없이 버렸다. 혹시나 휴지통을 뒤지는 불상사가 발생할까 일부러 호텔 휴지통에 버렸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끊자는 의지가 가능했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나는 몸이 아프면 병 간호를 해 줄 남편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솔직한 심경이었다. 미시 글에서 담배 심부름까지 해 주는 남편이라면 당연히 병 간호도 해주지 않을까? 근데 나는?? 안 그래도 슬슬 몸 고장나는 나이인데 담배 심부름은 커녕 아프면 누가 날 챙겨주지? 누구한테 도움을 청하지??  

사실 그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 담배를 한 방에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게 사실이다. 벌어진 떡대와 튼튼한 골격에 비해 정기적인 비실거림, 정기적인 ER 실려감, 정기적인 기절 등등을 겪고 있던 나로서는 혹시라도 내가 만약 쓰러진다면? 이라는 현실적인 걱정에 해답이 절대 없음을 깨닫고 더 늦기 전에 스스로 조금이라도 건강을 지키고자 담배를 끊은 이유가 가장 컸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그 흔한 가족도 위급 사항 시 부를 친구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인생을 잘 못 살았네, 우울증이네 하는 사치스러운 감정 낭비 대신 내 몸 챙길 사람 진정 나 하나밖에 없구나 라는 걸 절감하고 담배 따위는 끊어버리기 쉽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다. 하긴, 몇 번 911에 전화 걸어 앰뷸런스에 실려 가 혼자 일 처리하고 나온 적 있지 않던가. 세상 제 아무리 혼자라지만 정말 덜렁 혼자가 되고 나니 건강이라도 하자라는 게 목표가 되버렸다.

니코틴과 타르없는 천연(?) 전자담배========== 

예전의 금연 시도와 실패를 비웃기라도 하듯 담배를 끊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연초는 말이다. 하지만 전자담배가 문제였다. 콜록콜록 심각한 기침 부작용까지 길들여가며 익숙해진 전자담배를 끊는 것이 정말이지 100배는 더 힘들었다.그 때 또 다시 누군가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전자담배하고 똑같은데 니코틴도 타르도 없는 천연 성분 100프로가 있으니 그거라도 피우라고.

아, 그런 게 또 있었어요? 참 나, 사람은 배우고 살아야지, 전혀 모르던 사실이었다. 당장 Vaping이라고 써 진 간판을 찾아 들어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금연자를 위한 무니코틴, 무타르 전자담배가 존재했다. 총 80불 정도로 일반 전자담배에 비해 비쌌지만 액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사서 피워봤다. 아뿔사, 그렇구나, 짝퉁이 뭔지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다 낫다고, 전자담배를 깊숙히 빨 때의 중독성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면 아직까지 이름도 잘 모르겠는 모양만 전자담배를 추천한다. 물론 잘 사용하지 않게 된다. 처음엔 너무 힘들어 곧잘 가지고 다녔는데 지금은 아예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맛이나 흡인력, 담배의 느낌은 1도 없다. 다만 없으면 너무 허전할까봐 구색을 갖추는 형식으로 가지고는 있는 정도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40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끊은 상태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끊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한편으론 금연하기 위해 별 방법을 다 해 봤어도 성공하지 못했었다. 다만 담배 심부름 해 줄 남편도 없고 병 수발 해 줄 남자친구도 가족도 없지만 50 중반이 넘어가니 더 이상 담배 피우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추하고 냄새났으며 더러웠다. 내가 저 짓을 40년 넘게 했다고? 아이고 대~~~~단하십니다 그려. 누군가 말하지. 담배 값, 술 값 아꼈으면 빌딩 몇 개는 샀을 거라고 말이야. 그만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남은 건 1도 없다. 오히려 담배 끊은 지 6개월이 지나가는 요즘, 얼굴에 뭐 했어? 이뻐졌네? 눈빛이 초롱초롱해졌어? 샴푸 뭐 써? 향수 뭐 써? 냄새 너무 좋다. 뭐 이런 얘기들은 자주 듣는다. 바뀐 건 하나도 없는데, 담배 끊은 것 외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는데, 지나가다 마추친 옛 남자친구들!!!에게서 슬금슬금 다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귀신같이 알아챈다. 아무 시술도 안한 내가 이뻐진 사실을 말이다, 호호홍. 그러거나 말거나 난 아직 싱글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