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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로 한국여행

두발로 한국여행- 서울에서 한 달살기-(1) jay kim (jkimus) 2023-5-13  04:48:37

우리의 한국에서 한 달 살기 첫 출발은 서울에서 시작된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학창시절을 보냈고, 직장생활도 서울에서만 했기에 나에게 가장 

익숙한 곳이 이곳이고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도시이다


내가 성장한 곳은 용산구 내 원효로, 청파동, 남영동이다. 지방 경험이라고는 부평에 있던 

큰집을 여름방학 때마다  언니들과 함께 방문했던 것과 항공사 근무를 하고 있는 덕에 

휴가때마다 직원에게 주어지는 두장의 비행기표를 이용해 제주도에 다녀오곤 했다

10년 이상 근무를 했으니 나는 적어도 10번은 제주도를 다녀 온 셈이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라 일가 친척도 없는 나는 제주도 여행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아무튼 그결과 여행객에게 관광 안내도 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제주도를 많이 알았다.


그당시 제주도 푸세식 화장실 밑에는 제주 똥돼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 엉덩이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3-4마리의 똥돼지는 우리의 배설물을 즉석에서 

받아먹었다처음  이런 상황을 겪었을 당시에는 누구라고 놀랐을 것이지만(나도 처음엔 엄마야~~” 하고 뛰쳐 나왔다.)

그 다음부터는 똥돼지가 없는 곳만 골라 사용해야 했다

제주도는 해마다 갔지만 내게는 계속 흥미로운 곳이었다

제주도 이야기는 다음에 또 하기고 하자.


서울에서 한달 살면서 제일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은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였다

용산구 원효로에 살던 나는 청파동에 있는 효창국민학교를 졸업했다.  학교가 일제강점기에

설립되어 매우 노후됐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폐교한단 말도 들은 것 같지만 어릴적

6년을 함께했던 학교의 흔적이라도 보고 싶어 남편과 함께 그곳을 방문했다.


몇일 서울에 살면서 느낀 점은 예전 모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없어진 것이 너무 많았다

어디든 큰 건물과 아파트들이 지어져 옛모습은 커녕  천지사방을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그 오래전 파리제과가 있었고 몇 걸음 더가면 금성극장이 자리하고, 또 몇걸음 가면

성남극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고 어디쯤인지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숙대로 가는 굴다리 입구쪽에는 신광여중고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떡복이집

아이스크림 집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 세월의 흐름 뒤에 

남는 것은 아련한 어린날의 추억뿐임을 실감했다.   


옛날에 입었던 상처는 지금 통증을 모르지만 과거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지금부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게될 현실은 나의 기억에 통증을 가져 올 것처럼 느껴진다

신광학교 옆에는 내가 유년시절 다녔던 청파감리교회가 있었다. 국민학교 3학년때 세례를

받았던 그 교회는 반갑게도 오늘도 그냥 그자리에 있었다. 어떻게 청파감리교회는 경제성장을

등에 업고 폭주하면서도 질서 정연했던 도시계획의 폭풍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답은 나도 모르지만


여하튼 반세기가 훌쩍넘은 세월속에 내게 믿음을 갖게 한 교회가 아직도 같은 자리에

남아 있다는 것은 내게 놀라움이었고 부활절에 받은 노란 달걀같은 반가움이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기회가 생긴다면 꼭 방문해야겠다는 순간적인 결심을 뒤로 하고 

효장국민학교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국민학교 앞에 있던 문방구와1원을 지불하면 눈깔사탕을 먹을 수 있었던 가게도 없다.

또뽑기하던 잡화상도 없어졌다. 또뽑기를 할 때마다 꽝만 나왔던 가게인데 내 기억의 

편륜 속에 남아있음이 이상했다. 어린날의 기억은 조그만 풍선 하나에 매달린채 바람에 흔들린다

학교 정문 앞에서 서서 매일 등하교 하면서 친구들과 재잘재잘 거리던 골목길을 내려다 보니

다행이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60년대에  숙명여자대학교의 캠퍼스는 지금처럼 넓지 않았다.

효창국민학교와 그주변의 많은 토지가 모두 숙대 캠퍼스에 편입(?)된 셈이어서

숙명여자대학의 캠퍼스 크기를 짐작하기가 쉽지않다.

한국에서 시대의 흐름이란 과거는 없애고 현재를 새로 만드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효창공원도 그 과정중의 결말인 듯했다. 잘 다듬어진 오늘의 공원 모습은 틀림없이 

과거보다 이쁘겠지만 내 기억속의 효창공원은 분명 아니었다. 효창운동장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숙대를 지나면 공원 문턱에 내가  타던 그네가 보였었는데 

그 것도 없다.  정말 내 마음에 품고 있던 그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한순간 날아가 버려 허탈했다.

공원 바닥도넘어지면 무릎이 까질만한 흙과 지푸라기와 나무 잎사귀가 많아 어쩌다 넘어지면 

이 흙으로 허옇게 변하곤 했는데

너무 인공적으로 반듯하게 선을 그어 만든 바닥이 파란 농구장과 어느공원에나 가면

볼 수 있는 운동기구들이 자리를 차지하여 너무 딱딱해 보이기만 했다.

옛 효창운동장이 동네 꼬마들의 축구장이었다면 오늘의 그곳은 현대식 프로야구 

구장과도 같은 모습이다. 우리 세대는 참으로 어려운 세상을 살았구나 ….






공원 너머로 보이는 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이 계절에 무슨 꽃이 저리도 예쁘게 피었을까?  그것은 효창운동장 둘레에 심어진 

아직 싹이 나지않은 나무가지마다 태극기가 걸려 만들어진  꽃이었다.

보기에 좋았고 오랫만에 태극기를 보고 잠시 울컥이며 눈앞이 흐려진다.

누가 뭐라해도 나는 한국년이구나!…..  

3.1절 기념행사를 위해 준비한 태극기 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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