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   나의 요리를 미술에 비유하자면 창의력에만 의지하여 그리는 추상화와 같았다.    기초 실력은 전혀 없고 정성, 건강, 사랑 이런 추상적인 필만 충만했다고나 할까.     음식의 재료 양념 그 어떤  기준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고 재료사이의 경계도 허물어 버리는 전희예술과도 같았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 1층 식당 메뉴에는  쭈꾸미가 들어간 돼지고기 찌개가 있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맛.   나는 남편을 위해 그 요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퇴근하면서 마트에 들러 쭈꾸미, 돼지고기(돼지고기 부위도 어떤걸 살지 몰라 그냥 찌개용으로 썰어놓은 것을 샀다.), 팽이버섯, 미나리, 등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돼지고기,  쭈꾸미, 미나리, 팽이버섯, 호박을 손질하여 냄비에 넣고, 빨간 국물을 내기위해 고추장도 몇 수푼 넣고 또 간장도 조금 넣었다.   두 사람을 위한 찌개에 들어갈 재료의 양에 대한 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호박 하나 다 썰어놓고, 사온 돼지고기 다 넣다보니 엄청난 양이 되어버렸다.  들어가는 양념에 대해서도 감이 없었기 때문에  고추장 간장 그냥 넣고 싶은 조미료를 넣고 싶은 만큼 넣었다.  

  돼지고기는 익기전에 먹으면 안된다는 말을 들은지라 돼지고기가 익을 때까지 맛을 보지 않았다.   돼지 고기가 다 익은 것을 확인 한다음 본격적으로 간을 보기 시작했다.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끓이다보니 돼지고기 익을때쯤 쭈꾸미는 쪼그라 들어 꼴뚜기 만하게 되고 미나리는 누렇게 색이 빠져있었다.   그 맛은?  음식점에서 먹었던 맛과는 영 다른 맛이었다.    짠맛도 있고 매운 맛도 있었는데 그 두 맛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그 무엇인가가 없었다.  공허한 맛이었다.   지금 이라면 이럴 경우 다시다 조금 넣었으련만, 그때만 해도 조미료를 넣는 다는건 무슨 독극물을 넣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공감미료 자체를 집에 들이지 않았었다.  음식을 맛보다는 건강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설탕도 왠만하면 사용해선 안된다고 생각할 때였기 때문에.   비록 뭔가 많이 빠져있고 재료들이 다 따로 노는 난해한 맛이지만  남편과 나의 뜨거운 사랑은 그 맛들의 빈공간을 채울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남편은  세치 혀가 아닌, 나에  대한 사랑과 내 정성에 대한 감동을 통해,   진정한 천상의 맛을  경험하게 되라라 기대했건만  …. ….

남편은  꾸역꾸역 먹더니, 다시는 이 요리 하지 말란 말을 남긴 채,   바로 체해서 밤새 고생했다.    

 난 날 사랑해주는  멋진 남자랑 결혼한것이 아니라  비위도 약해 빠진 아주 까탈스러운 인간이랑 결혼한 것이었다.    남편은 쭈꾸미와 돼지고기가 함께 들어간 찌개는 난생 처음먹어본다며 왜 이런짓을 했냐고 물었다.   남편은  나더러 음식을 할때는 제발 창의성에 의존하지 말고  정확한 레시피 대로 하라는 말을 남긴 채 쌓인 업무가 많다며 다음날 부터 야근을 하기 시작했다.  

난 그 다음 날 부터  혼자서 쓸쓸히  저녁을 먹게 되었다.   남편은 나중에 고백했다.  그때 주구장창 하던 야근은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내가 만든 저녁을 피하기 위해서 였다고..

얼마후 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요리 수업과 EBS에서 하는 최고의 요리비결 프로를 열심히 보며 프로 주부로서의 실력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요리란 사랑, 정성 이런 형이상학적인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설탕, MSG, 신선한 재료, 그리고 재료넣는 순서와 불의 세기를 감지하는 동물적 감각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것을 … ...음식을 잘하는 사람은 신선한 재료를 언제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를 잘안다.   그리고 재료를 어떤 순서로 넣으며 또 불의 세기를 어떻게 조절하여 적절하게 익히는 지를 타고난 감이 있든지 아니면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터득한 노하우가 있다는 것을.   그러나 이런 모든것을 다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음식을 만드는 수고스러움을 이겨내는 부지런함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고기 양념할때 배갈아넣고, 생강즙 조금 넣으면 훨씬 맛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강 껍질까서 강판에 갈기가 귀찮아 수년동안 생략해오고 있다.   나는 과연 죽기전까지 이 귀찮음을 이겨내고 배즙과 생강즙이 들어간 고기양념을 하는 날을 맞이 할 수 있을까?  

난 나의 귀찮음과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다.     오늘도 난 닭갈비 양념을 하루전날 해 놓으면 맛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게으름과 귀찮음을 도저히 이기지 못하고  사온 닭을 양념 안 한 채 냉장고로 넣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