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둘째 이모의 첫째 아들이었던 상철이 오빠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 오빠는 이모들이나 사촌언니의 대화속에 종종 등장했었다.   나와 네살 터울인 우리 언니가 그 오빠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 나도 그 오빠를 만난적은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때 난 너무 어렸어서, 기억하지 못한다.    상철이 오빠란 말을 들으면, 교련 복을 입고 철제 책상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이 모습은 내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일 뿐,  실제 기억은 아니다.   

상철이  오빠는 똑똑해서 공부를 무척 잘했다고 한다.         1970년대 어느 해인가, 그 오빠가 고3이 되던해에  열이 펄펄 나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상철이 오빠의 죽음은 불랙홀처럼 이모의 웃음과 기쁨을 모두 빨아들였다.   우리 이모는 눈을 깜빡일때 한쪽눈만 감겼다.  다른 쪽 눈은  아들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시신경이 죽었다. 

이모는 상철이 오빠 외에 세명의 딸과 막내 아들이 있었다.   언니 둘은 파독 간호사로 독일로 건너가 그곳에서 자리잡았다.       언니들은  독일에서  매달  돈도 보내고, 좋은 물건있으면  사서 우편으로 이모한테 보내왔다.  그런데 마음이 너무 착한 이모는 받는 족족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 바빴다.   뭐가 급하다고 가까이 사는 이모를 만나기도 전에  다 나눠줘서 이모들은 독일에서 온 물건 구경 조차 못했다.    이모들은 좋은 물건 있으면 형제들이나 주지  뭣하러 쌩판 남한테  나눠주냐며 뒤에서 수근됐다.   독일언니도 언젠가 다른 이모들한테 언니 친구들은 집에 돈보내면 부모님이 집도 사고 땅도 사고 해서 집안이 일어나는데, 둘째 이모는 형제도 아닌 동네사람  다 나눠 주느라 집도 없이 아직도 저렇게 산다고 돈 보내는 보람도 없다고 했다고 한다.  

  막내 상진이 오빠는 인물도 좋고 심성이 참 착했다.  이모랑 이모부가 키가 작아 다른 형제들은 다 키가 작았는데 , 오빠는 키도 컸다.  이모가 중곡동에 사셨는데, 시골에 사는 언니랑 내가 서울에 놀러가면 오빠가 우리데리고 어린이 대공원에 데려가서 청룡열차도 태워주고 솜사탕도 사주곤 했다.  

내가 초등학교때 우리집은 재래식 화장실을 허물고 수세식으로 바꾸는 공사를 했는데 그때 일을 잠깐 쉬고 있는 오빠가 와서 우리집 공사 일을 도왔다.  그때가 오빠나이  25살 전후 였던 것 같다.  나는 오빠한테 오빠는 애인 없냐, 취직은 왜  안하냐며 아주 되바라진 질문들을 했었고, 오빠는 한번 화도 안내고 웃음으로 넘겼다.    그리고 우리한테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노래도 같이 불러 줬다.  

그리고 3년 쯤 지나 정말 급한 일 아니면 절대  울릴 일 없는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날  엄마 아빠는 여행중이셔서 집에 안계셨다.  .   아빠가 공무원이셨는데. 그때  시골 공무원 부부를 여행 시켜주는게 있어서 거기 가 계셨다.   

.   그날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여보세요”

“ 엄마 바꿔줘”

“ 엄마랑 아빠 여행가셔서 지금 안계시는 데요.”

“  상진이가 죽었어”

“네?  “

“ 상진이가 죽었어.  심장마비로,  엄마, 아빠 연락오면 바로 알려드리고, 서울로  전화달라 해줘.”

난 자다가 받기도 했고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전화끊고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당시 엄마 아빠한테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그 인물 좋고 착하던 상진이 오빠는 버스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한다.   그때 그 오빠 나이  28살이었다.  사귀던 여자도 있었고, 취직한 회사에서 사장님으로 부터 일잘하고 심성도 착하다고 신임도  많이 받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나 급작스런 일이라 혹시 버스 급정거로 인한 사고사는 아니었는지 알아봤었는데,  오빠 가방에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오빠는  걱정하실까봐 이모한테는  말을 안했었지만 ,  회사동료한테는  소화가 안되고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사고사는 아니었다.  

둘째 이모부는 3대 독자셨다.   이모부의 말씀으로는 이모부네 조상은 못된 양반이었다고 한다.  너무 못된 짓을 해서 마을사람들로 부터 원망을 샀다고 한다.   좋은 명당자리가 있으면 남의 집 묘도 파내고 그 자리에 묘를 쓰기 까지 했다고 한다.  누군가 이를 보고 이 죄는 너네 자손들이 받을거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  가세도 기울고 손이 귀했는데 이모가 두명의 아들을 낳아 어른들이 너무 좋아하셨었다고 한다.  

다른 집 사촌언니가 내가  성인이 되었을때 해준 이야기인데,    이모가 옛날에 사주를 봤는데 비구니가 될 사주였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 앞으로  숟가락 하나 지니기 힘들고,   아들 먼저 데려간 것도 어쩌면 비구니가 될 이모 팔자 때문일지 모른다고 했다.   

오빠가 그렇게 허무하게 가고 나서 일년 쯤 지나 이모들이랑 둘째 이모네 집에 갔었다.  

이모의 눈은 계속 눈물에 잠겨있어서인지 눈동자가 말갛게 불어있었다. 

둘째 이모가 울면서 말씀하셨다.  

“우리 불쌍한 상진이 나때문에 그렇게 됐나봐.   상철이 백혈병으로 보내고,  하루도 상철이 생각을 안하고 지나간 날이 없었어.

상철이가 너무  보고싶고, 생각나서 너무 힘들어서 기도했어.   나 좀 살려달라고.   차라리 상철이를 잊고 살게 해달라고.  

10년을 매일 보고싶다고 울며 살았는데 상진이 죽은 날부터 상철이 생각이 하나도 나질 않아,      상진아 미안해”    이모는  상진이 오빠를 부르며 울다 쓰러지셨고,    엄마와 다른 이모들은 눈물 범벅이 되어 '언니 그런생각하지마.  아니야, 언니때문 아니야'를 반복하며 쓰러진 이모를 흔드셨다.  

이모가 상철이 오빠를 잊을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이모의 기도를 들어주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