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우리 남편이 쓰는 단어 중 정말 마음에 안드는 단어가 있다.

“애초에”  

내가 어떤 실수를 하거나 결과가 잘못 되었을때는 예외 없이 사용하는 그 말

이 단어는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와 같은 인간미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너무 쌀쌀 맞은 단어다.  이 단어는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데 촛점을 두지  않고, 아주 근원적인 잘못에만 집중한다.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지.  애초에 잘했어야지.   애초에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애초에 왜 했냐고?

이 단어에 대응하는 나의 방패는 “어짜피”다    이 단어는  원인분석을 하기 보다 대충 덮고 끝내려는 나의 성격이 드러나는 단어다.  

 어짜피란 단어가 무책임한것 같지만 사실 시시비비 따지지 말고, 수습하는데 집중하자라는 의미도 있다.  

“애초에 잘했어야지 “  "

“어짜피 그렇게 됐는데 그런 말을 왜 하냐고?"

이 두단어가 찌르며 싸운다.  “애초에”와 “어짜피”  사이에 논리적인 중간지대란 없다.  그냥 목소리큰 놈이 이기는 거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목소리 크기는 기가막히게 잘 조절한다.  

 내가 잘못한게 없다 싶으면 악을 박박쓰며 크게 “어짜피”를 외치며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어짜피 벌어진 일인데 어쩌라고.  좀 어지간히 하라고!"

 뭔가 원인이 나한테 있다 싶으면  불쌍한 목소리로 “어짜피”라는 말 끝을 살짝 흐리면서, 남편 주위를 다른데로 돌린다.  

"어짜피 벌어진 일이니까,  밥이나 먹고 생각해보자

오래 같이 살아 서로 생각이 비슷하다 싶다가도 어떤 일 터지고, 남편한테 “애초에”  소리 듣고 나면, ‘맞다.  우리는 애초부터 다른 인간이었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서운 건   지 아빠 쏙 빼닮은 첫째 딸도 언제 부터인지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첫째가  둘째한테 하는 소리를 들었다. 

 “ 애초에 제대로 했어야지?  미안하다면 다야?” 

난 애초에 소리를 듣고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뭐 때문이지도 모르면서 끼어 들어 첫째한테 소리를 질러댔다.

“야!  뭐가 애초에야?  잘못했다는데.  너나 잘해.  동생한테 뭐라하지 말고.”

갑자기 들이 닥쳐 화를 내서 인지, 둘째 편을 들어 줬음에도 불구하고.  둘째 마저도 우리 엄마 왜저러지 하는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얼마 전 나무자르는 업체를 시켜 야드에 나무를 잘랐다.  힘든 작업이었는데 사고 없이  잘해줘서 고마운 마음에 그 날 바로 check을 써서 우편으로 보냈다.  그런데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내 check이 아닌, 남편check에 내 사인을 해서 보냈다.  그리고 금액도 영어랑 숫자랑 다르게 쓴것을 발견했다.   남편이 알게되면 또 “애초에”  소리 들고 나올텐데 걱정이다.  이번에는 어떤 모드로 “어짜피”를  꺼내야 할지 고민이다.    

애초에 그렇게 서두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반복되는 실수를 하는 내가 오늘은 짜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