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대학 간 첫 째 딸 친구들을 집에 초대한 적이 있다. 딸 친구들이 우리 집에 대한 인상을 “extreme minimalist의 집”이라 했다고 한다. 우리 집은 군더더기 없이 모던하게 꾸며놨다. 바꿔 말해 “휑” 하다. 

난 정말 정리정돈을 못한다. 난 딱 책 2권으로도 방을 어지럽힐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다.      또한 뇌 용량이 적어서 그런가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잘 기억을 못 한다. 

이에 대한 타계책으로 집 안 물건의 양을 확 줄여 버렸다.  필요 없다 싶은 것은 다 갖다 버렸다.  희한하게도 난 물건을 살 때 보다 갖다 버릴 때 더 신난다. 

우리 집은 들어와서도 휑하지만, 서랍 안에도 물건이 많지는 않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지럽힐 껀덕지가 없는데,  그 와중에도 잘 보면 구석구석 또 어수선하다.  물건이 많았다면 진짜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 남편과 시어머니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대신 물건의 위치를 정확히 기억한다.

우리 시댁에 가면 눈 닿는 곳마다 물건이 꽉꽉 들어차 있다.      

둘째가 아기였을 때 시댁 가서 기저귀가 부족해 사러 나가려니까, 4년 전에 우리 첫째 딸이 아기였을 때 시댁에 놓고 간 거라면서 그 많은 물건 중에 내가 4년 전 놓고 간 기저귀를 찾아서 가지고 나오셨다. 

지금 1년째 남편이 나가 살고 있는데도 물건 찾을 일이 있으면 남편한테 전화해서 그 물건이 어디 있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남편은 책상 3번째 서랍에 있는 박스를 열어보라며 알려준다.      

남편 방에는 남편이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 이모한테 생일 선물로 받았던 손 뜨개질로 만든 꼬질꼬질한 상자, 25년 전 연애할 때 봤던 영화 표, 대학시절 사 모았던 시네마 잡지 같은 물건들이 있다.  하물며 수능시험 표도 있다. 

기억력이 좋아서 인가 뭔 추억할 게 그리 많은 지 모르겠다. 내 맘 같아서는 남편 없을 때 다 갖다 버리고 싶은데 버리면 다 알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갖다 버릴 수가 없다. 

나는 이렇게 미니멀리스트로 살아서 그런지, 생활도 미니멀하다.  

그냥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굳이”라는 말을 붙이게 된다. 땡스기빙 장식을 할까 싶다가도 치울 때 귀찮을 텐데 ‘굳이’싶어 안 하게 되고, 크리스마스 장식도 어차피 치워야 할 텐데 ‘굳이” 싶어 생략했다.  그러니 발렌타인데이고 뭐고 아무튼 ‘굳이’를 붙일 수 있는 모든 이벤트를 생략하고 살았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그런지 결혼기념일에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고, 누군가 내 생일을 챙겨주면 오히려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첫째 딸 윤서가 작년에 대학에 들어가서  우리 집이 얼마나 재미없게 사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큰 딸이 나에게 말했다. 

“엄마! 애들이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진짜냐고 깜짝 놀라더라. 우리처럼 사는 집 없는 것 같아 우리는 너무 아기자기한 재미가 없어. 그런 것을 안 해봐서 그런지 특별한 날 아이들이랑 이벤트 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

윤서가 기억을 못 해서지 사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적이 있기는 하다.  

윤서가 한국에서 유치원 다녔을 때,  크리스마스 트리가 너무 하고 싶었었는지 종이에 별모양을 그려 거실에 있는 빨래 건조대에 빨래집게로 매달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불쌍해서 급하게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산적이 있기는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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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하게 산 죄인 것 같다.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날들을 그날이 그날같이 의미 없이 흘려보냈다.      

 내 수고스러움이 조금 들어갔더라면 아이들의 어린시절은 풍요로운 추억으로 가득 찼을 텐데. . .   

내가 이렇게 아이들을 키웠으니, 나중에 아이들이 분가하고 나서, 크리스마스날 같이 특별한 날  좋은 곳에 가서 저녁이라도 먹자고 하면,  그냥 보통 쉬는 날인데 뭐가 특별하다고 귀찮게 나가서 같이 저녁까지 먹어야 하냐고 되물을 것 같다.  

내가 윤서한테 물었다 “윤서야 우리 지금이라도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도 하고 선물교환도 할까?”

그러자 윤서가 대답했다. 

“엄마 지금까지 안 했는데 우리 다 컸는데 이제 와서 굳이? ”

큰일이다.  굳이라는 단어가 윤서의 생활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