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진짜 먼 나라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장 17시간 30분을 날아서 도착했다. 

몇 달 전 여름에 갔을 때는 덥지만 화창한 날씨였는데, 이번에는 하루종일 회색 구름이 낀 한국의 장마철과 비슷한 날씨였다. 

그 몇 달 동안 체력이 떨어졌는지 도착하는 날부터 콧물, 기침, 두드러기, 오한으로 고생했었다. 

그냥 있어도 으슬으슬 춥고 속도 안 좋고 만사가 다 귀찮았다.

남편은 우리 왔다고 저녁마다 킹크랩, 사천요리집, 핫팟집 등등 유명한 식당을 데리고 다녔는데, 난 그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냥 내 마음속에서는 뜨끈한 콩나물 국에 밥 말아먹고 싶은 게 전부였다.

12월 31일에는 새해맞이 불꽃축제를 보러 갔다.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오후 5시에 불꽃축제가 열리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건너편에 도착했다. 

몸은 으슬으슬한데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우비를 입고, 7시간을 자리 잡고 앉아 기다렸다. 

8시부터 마리나 샌즈 호텔들은 색깔을 바꾸며 레온이 빛났고, 멀라이언과 Fullerton 호텔은 오색찬란한 조명을 쏘아 화려하게 빛났다.

 12시 가까이 되어 하늘에서 불꽃이 화려하게 터졌다.

구두쇠에 가까운 남편이 거금을 들여 우리를 부른 것도, 이 불꽃축제를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에서 였는데, 난 마음 속으로는 왜 이 고생을 하나 싶고, 콩나물 국 한 사발 저녁에 든든하게 먹고, 집 소파에 누워 TV를 보면서 새해를 맞이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우리 큰 이모 생각이 났다.  

예전 해외 여행이 쉽지 않았던 시절에 우리 첫째 이모의 성공한 자식들은 돈을 모아 첫째 이모 세계 여행을 시켜드렸다. 

나가실 때는 걸어서 나가셨지만, 입국할 때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셨다.

우리 이모는 자식들 효도 때문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혹시 우리 이모도 나처럼 여행 내내  콩나물국 생각만 간절히 하신 것은 아니었을까?

자수성가한 회장님들 애첩들은 요즘 요리 전문가한테 회장님이 고생하던 시절 먹던 감자 수제비, 갱시기 같은 음식을 배우러 다닌다고 한다. 

산해진미를 다 맛볼 수 있는 회장님들도 결국에는 고생할 때 먹었던 그 음식을 제일 먹고 싶어 한다고 한다. 

젊은 애첩이 살살 웃으며, 내놓는 그 음식을 먹으면, 아무리 자린고비 회장님이라도 무방비 상태가 되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을것 같다.   그 음식을 대접하는 한 회장님은 조강지처는 버려도 그 애첩은 절대 버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거금을 들여 비행기표를 사주고, 저녁마다 좋은 음식점 데려가 준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 보다 , 내가 비행기에서 내려 아팠던 날 콩나물 국 먹고 싶다고 했는데도, 굳이 맥도날드 햄버거 배달시켜준 남편에 대한  서운한 마음 만 가득하다.

이번 싱가포르 여행에서 내 머리속에 남은 것은 화려한 불꽃축제도, 명품이 즐비한 오차드 거리도 아닌 콩나물 국에 대한 간절함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