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시기도 아닌데
왠 정체성타령이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수도 있겠다.
미국으로 이민을 오고나서부터
정체성이라는 단어가 피부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생김새도 비슷,
머리색도 비슷,
옷차림도 모두 비슷한 한국과는 달리
동아시아인의 얼굴을 하고 미드웨스트에 살면
"마치 나는 당신들과 다르오"라는 표를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붙이고 사는 느낌이다.
모두 비슷해서
내 출신이 어디인지, 내가 얼마큼 먹고 사는지, 내가 배웠는지 못배웠는지를
작정하고 조용히 있으면 그럭저럭 숨길수 있었던 한국과는 달리
수많은 백조의 무리속에 얼떨결에 섞여있는
거위가 되어 있는 것 같은 삶이다.
이민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10년전 한국에 살았을때는
20-30대 젋은 여성로서의 정체성과
딸로서의 정체성이 아마도 가장 큰 정체성이 아니었을까 한다. ( K-큰딸 ㅠㅠ)
미국에 와서는
이민자임이
그 무엇보다 결정적인 정체성이 되었다.
"이민자 > 엄마 > 여자 /아내" 의 순이었다.
나를 차지하는 제일 큰 정체성이
나의 모든 말과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나가는 내 또래의 여성을 보며
내가 그냥 여자이기만 했다면
"나보다 안 이쁘네" 라고 생각했을텐데
이민자가 되고나니
"나보다 영어 잘하겠지?" 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2024년 현재 나를 이루는 정체성들은 무엇들이 있을까?
이민자, 여자, 40대 중반의 노화가 시작된 여자?, 엄마, 아내, 딸, 공립학교 교사 등등
그리고 새로이 추가된 정체성
바로 아이를 잃은 엄마.
순위를 매겨보자면
아이를 잃은 엄마 > 이민자 > 40대 중반의 여성 > 아내 > …….. 정도의 순인것 같다.
지금의 나는
지나가는 내 또래의 여성을 보면
"저 사람도 자녀가 있을까?”
혹은 “겉보기엔 모르겠지만 혹시 말못한 아픔이 있는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새로 집중해야 겠다고 결심한 정체성은
역시나 엄마,
무엇보다 큰아이의 엄마라는 정체성이다.
지난 몇 년간
떠나간 둘째아이만 부여잡고 있느라
정작 내 곁의 큰 아이는 살뜰히 돌보지 못했다.
이제 큰아이의 엄마로도 세상을 바라보자.
질풍노도의 시기 맞다. 아직도.
2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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