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엄마 초상치른 날 밤 생긴 일’과 ‘엄마의 집, 그 무서웠던 기억’편과 이어집니다. 두 편을 먼저 읽으셔야 이야기 연결이 쉬울 겁니다.

5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엄마의 집, 그러니까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큰올케랑 조카들이 살던 그 집이 아직도 남아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대로 있다면 한 번 보고 싶었거든요. 막내동생이 이삿짐 옮기는 걸 거들면서 집 안팎을 사진 찍어 두어장 보내주긴했었지만 실제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그때까지 집은 건재하다고 했습니다. 잔금을 전해받고 동생가족이 집을 비운 후 몇 달이 지났음에도 병원측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을 취하지않았답니다. 쇠사슬로 대문을 묶어 외부인의 출입을 봉쇄만 해 놓고. 막내동생이 말했습니다.

“집을 넘겨받는 즉시 허물어버리고 주차장으로 용도를 변경할 것처럼 서둘더니 무슨 일로 미적대는지 모르겠네. 하루라도 빨리하면 좋을 텐데...”

같은 동네에 살고있는 동생은 오며가며 그 집을 지나치게 된답니다. 마음이 아주 안 좋답니다. 부모님의 체취랑 기억이 담겨있던 집을 돈이랑 난짝 맞바꾼 것 같아서. 그 집을 구입하기 위해 부모님이 기울였던 노력을 생각하면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이 든다는 겁니다.

"물 새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집이었는데 적당한 시기에 잘 팔아치웠지 뭐..."

나 역시 같은 생각이 좀 들었지만 동생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기 위해 짐짓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음날 나는 그 집에 가보았습니다. 한때 동네에서 제일 크고 멋진집이었다는 명성에 맞게 멀리서도 눈에 뜨였어요. 그만그만한 단층집들 사이에 높게 우뚝 선 이층집이었거든요. 집앞에 다가가자 동생 말대로 대문에 굵은 쇠사슬이 채워져 있는 게 보였습니다. 엄마가 세상 떠나기 전, 그러니까 아프기 전에 3백만원이란 거금을 들여서 새로 세웠다는 은색 철재대문 손잡이에 채워진 굵은 쇠사슬을 보는 내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아버지엄마가 이 꼴을 봤으면 얼마나 허탈해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대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외관이 형편없이 망가져있었어요. 창틀이란 창틀은 모두 시커먼 곰팡이가 피어서 엉망진창이었고 페인트가 벗겨진 벽에도 온통 곰팡이가 자리를 잡았네요. 또한 마루의 큰유리창은 두어개 깨져있었습니다. 현관쪽 벽을 고급스럽게 장식하던 긴 대리석조각은 반 이상 떨어져나가 시멘트속살을 보이고 있고 꼭 닫아두지 않아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부엌문은 경첩이 빠져나가서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떨어질 듯이 아슬아슬하게 붙어있었습니다.

정원은 더 폐허같았어요. 아버지와 엄마가 정성들여 심고 가꾸었을 나무와 화초가 제멋대로 자라서 정글을 이루고 있었고 잡초와 떨어진 낙엽들이 마당 전체를 덮고 있었습니다. 마당 곳곳에도 곰팡이와 이끼가 시퍼렇게 자라고 있었고.

완전히 공포영화에 나오는 집같았어요. 예전에도 그리 밝고 산뜻한 느낌의 집은 아니었으나 보는 것만으로도 칙칙하고 요사스러운 기운이 뿜어져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몇달 비워두었다고 저렇게 금방 흉가같이 변해버리다니. 돌아오는 내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지난 10월, 한국에 갔을 때도 기차역으로 나를 마중나온 막내동생에게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은 집에 관한 것이었어요. 동생이 대답했습니다. 마침내 집이 없어졌다고. 집이 있던 자리에 하루 수백대 차가 분주하게 드나드는 주차장이 예정대로 들어섰다고.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걸어서 그 곳에 가보았습니다. 그 곳에는 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언제 거기에 집이 있었더냐는 듯 오가는 차와 사람들과 차단기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어요.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 움직임들을 바라보았지요. 우리가족의 보금자리였던 흔적을 찾을 수 없어서 조금 서운하기도했지만 후련하고 개운하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더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병원에다 집문서를 넘겼다해도 집이 그 곳에 존재하는이상 어둡고 악한 기운이 우리가족을 누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자꾸 들었거든요. 이제는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저녁 큰올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세상떠난 후부터 웬지 그 집이 무섭더라. 사람아닌 무엇이 있는 것같이 괜히 섬��하고 오싹오싹하고. 넌 그런 느낌없이 괜찮았니?”

빨래를 개키던 올케가 동작을 멈추고 내 옆으로 바싹 다가앉더니 말했습니다.

“형님도 느끼셨군요. 지금에야 말이지만 저도 많이 무서웠어요. 낮에도 그렇지만 밤에는 전등을 안팎으로 켜놔도 뭔가 괴괴한 기분이 들고요. 꼭 누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뒷쪽을 자꾸 돌아보게 되고...”

무엇보다 빨래가 안 말라서 힘들었다고 올케가 덧붙였습니다. 특히 겨울에는 일 주일이 가도 빨래가 안 말랐다네요. 처음 알았습니다. 집안에 해가 안 들어 늘 어둡다는 건 알았으나 일 주일이 지나도록 빨래가 안 마를 정도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두 조카들도 늘 무섭다고 했다네요. 무서워서 한 여름에도 창문을 못 열겠다고 할 정도로. 뭐가 쑥 들어올 것 같다면서요.

올케가 그 집에 살고 있었을 당시, 안 무섭냐고 내가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집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안 하고 남편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사는 게 무섭지않느냐는 뜻으로 물었더랬어요.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한테 집이 무섭다는 말을 하는 자체가 무서워서요. 올케는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더랬습니다. 그 대답에 참으로 다행이다, 하고 속으로 많이 안도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나는 다시 올케에게 물었어요. 그러면 그때는 왜 안 무섭다고 큰소리쳤냐고.

“그렇쟎아도 무서운데 무섭다는 사실을 입밖에 내서 말하면 더 무서워질 것 같아서요...”

올케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왜냐면 위에 쓴대로 내가 그랬으니까. 나 역시 아무에게도 집 무섭다는 이야기를 안 했거든요. 입밖에 내 말하면 큰 흉액이 몰릴 것같은 불안감이 들어서. 나는 올케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 그동안 견뎌내느라 수고가 많았구나...”

나중에 작은동생과 올케에게도 똑같이 물어봤습니다. 그 집을 드나들면서 뭐 이상한점 못 느꼈냐고. 둘이 대답했습니다.

"음침하고 음산한 기분이 있긴 했어요. 사람이 여럿 있어도 뭔가 썰렁하고 휑하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늘 습하고...”

모두들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암묵하고 있었지만 그 집이 으스스한 기운을 내뿜고있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던 겁니다.

서울가서 무당친구를 만났습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친구가 호텔로 찾아왔습니다. 무당친구도 몇 번 와봤기에 우리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당친구에게도 동생들에게 했던 같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보통사람보다 느끼는 게 다르고 보는 게 특별한 사람이니까.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이 궁금했거든요.

“이제야 알았나? 그 집은 보통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우리같은 무속인들이면 모를까...”

친구의 말에 의하면 터가 무지무지하게 세답니다. 집방향도 잘못 앉았다고합니다. 센 터에 방향까지 잘못 앉았으니 동생죽고 아버지죽고 엄마까지 죽는 흉한 일이 줄줄이 생긴거랍니다. 그렇다면 처음 이사가서 이십년 가까울동안 왜 아무일 없이 엄마아버지가 잘 살았냐고 물으니까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우리아버지가 보통사람이 아니랍니다. 귀신을 이겨먹을 정도로 기가 세고 대가 찬 사람이랍니다. 그래서 그 집의 흉한 기운을 누르고 살아서 괜찮았다고 하네요. 그러고보니 여지껏 살면서 우리아버지같이 자신만만하고 천하에 무서운 것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네요.

내 글을 빼놓지않고 읽은 독자님들은 기억할 겁니다. 아버지가 동네거지들은 다 챙겼다고 쓴 글을. 그 챙기던 거지들중 겨울철만 돌아오면 꼭 한 둘은 죽어요. 얼어죽는 거지요. 아무도 손 안 대려하는 거지의 사체, 아버지가 짊어지고 공동묘지에가서 묻어주었습니다. 대낮에도 가기 꺼려지는 공동묘지를 죽은 사람을 지고 혼자 가는 거지요. 한번은 아버지친구의 어린아들이 물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아이의 주검을 지게에 짊어지고 밤에(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이들 주검은 밤에 묻는다는 풍습이 있다네요)공동묘지를 가는데 엄청나게 무겁더랍니다. 어른 사체보다 훨씬 더. 칠흑같은 밤, 플래시 하나만 들고 가는 가파른 산길, 등에 짊어진 사체가 아버지를 찍어누를 듯해서 몇 번이고 넘어질뻔 하기도 했대요. 아버지가 큰 소리로 그랬대요.
“이놈아. 어린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건 안타깝지만 양지바르고 마른 곳에 널 잘 묻어주려고 가는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면 되겠느냐?!”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가벼워지더랍니다.

그리고 내가 어릴 때 이야기입니다. 겨울에는 연료를 아끼기위해서 부모님이랑 모두 한방에서 모여 잤습니다. 그날도 곤히 자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어요. 비명소리에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아버지가 비호같이 몸을 날려 한 여자의 멱살을 잡아채는 게 보였습니다.

세상에, 머리는 산발을 하고 뻘건 내복을 아래위로 입은 한 여자가 얼굴에 피칠갑을한 채 우리들의 방으로 잠입을 한 것입니다. 알고보니 동네의 미친여자. 동네아이들이 던진 돌에 상처를 입은데다 날은 춥고 갈 데는 없어 이집저집 대문을 흔들어보다가 우리집대문이 안 잠긴 걸 알고 들어 온 거예요. 한밤중에 그런 흉칙한몰골을 한 여자가 방에 들어와 있는 걸 보고도 전혀 당황하거나 놀라지않고 제압하는 아버지, 그렇게 담대한 아버지였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기세에 집의 흉한 기운이 눌린 걸까요. 그랬는데 아버지가 나이가들면서 약해지니까 그 기운이 스멀스멀 득세를 했나봅니다. 귀신들이 활개를 쳤나봅니다.

예전에는 눈에 반드시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만 실체를 인정했어요. 이제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않지만 들리지않지만 느껴지는 그 무엇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 사진은 현재 주차장으로 변한 집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