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서너시까지 불면으로 생난리를 치다가 거실 소파에서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꿀같은 단잠에 빠진지 몇십분, 남편에 의해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야했습니다. 갑자기 침실에서 남편이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뒷뜰로 나가는 문을 열어놓았냐고. 부엉이 우는소리가 들린다고. 시계를 보니 아침 5시경. 겨우겨우 들었던 잠을 깬 나. 화산같은 울화가 터지는 걸 꾹 참고 얌전하고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뒷문은 철통같이 굳게 닫혀있다...

다시 눈을 붙였는데 한 번 깬 잠이 올리가 없습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죽을 지경입니다. 남의 잠은 다깨워놓고 세상모르게 다시 잠에 빠졌을 남편이란 사람에 대한 미움때문이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봄이라하나 스물 네 시간 히터를 돌려야할 정도로 온도가 낮은 요즘입니다. 특히 새벽에는 더 추워요. 왜, 왜, 왜, 내가 하릴없이 뒷문을 열어놓겠어요. 미치지않은 다음에야.

아침. 실컷 늦잠을 자고 어슬렁거리며 거실로 나오는 남편에게 다다다 퍼부었어요. 말을 할 땐 일단 먼저 생각이라는 걸 좀 해라. 추워죽겠는 요즘인데 무슨 이유로 내가 뒷뜰 문을 열어놓겠냐. 설사 부엉이 우는 소리가 가깝게 들려서 뒷문이 열린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치자. 불면증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나를 조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혼자 조용히 일어나 뒷문을 확인해보면 될 일 아닌가. 그렇게 되지도않는 일로 소리를 질러 힘들게 든 잠을 깨워야 속이 시원하냐. 미안한지 남편은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웬만한 사람은 감히 근접을 못할 정도로 날카롭고 차갑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어찌 바보같은 짓은 골라가며 하는지.

오늘, 블루의 몸이 좋지않은 것 같았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입에 물려주는 말린닭고기를 받아 먹지 않아요. 밍키는 얼른 채가서 냠냠 먹는데. 재택근무하는 남편이 있기에 별 걱정을 안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상태가 안 좋아지면 병원에 데려가면 될 일이고.

오전 10시 쯤 띠링, 하고 문자 메세지가 도착합니다. 남편입니다. 블루가 토했답니다. 조금후 다시 도착한 문자 메세지. 블루가 설사를 한답니다. 또 조금후에는 밍키마저 토한다는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10분 간격으로 두 강아지의 상태를 생으로 중계방송합니다.
 
참 사람 돌게 합니다. 그래서 한참 일하고 있는 사람보고 어쩌라고. 일하다말고 집으로 뛰어가리? 뛰어가 본들 내가 할 일이 무엇이겠어요.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하니까 병원 갈 정도는 아닌 것 같답니다. 그러면 중계방송을 하지 말든지.

두 것들이 잘못되면 어쩌나하는 불안에 안달복달하면서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바람처럼 날아서 집에 들어서니 여느때와같이 두 강아지들이 몸부림을 치면서 반가움을 표현합니다. 하루종일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둘은 멀쩡하기만 했습니다. 내가 남편에게 일갈했습니다. 나를 말려죽게할 작정이었냐고.

나 같으면 상대방 걱정할까봐 알리는 걸 주저하고 삼가했을 일입니다. 세상끝난 듯이 꼭 그런식으로 수선을 피워야 할까요. 그럴 때마다 얼마나 한심한지요. 이런 화상을 믿고 어찌 이 풍진 세상을 같이 헤쳐나갈까,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지인들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앞다투어 자기남편들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최근, 한 지인에게 있었던 일이랍니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퇴근을 하는데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다급한 목소리로 어디냐고 묻더랍니다. 운전중이라고 했더니 빨리 집으로 오라고, 집에 도둑이 들어서 값나가는 살림살이를 다 싹쓸이를 해갔다고 소리를 지르더래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으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온 몸이 덜덜 떨려 운전을 못하겠더랍니다. 얼른 길가에 차를 대고는 숨을 몰아쉬고 진정을 하는데 미칠 듯이 화가 나더래요. 운전중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는 남편에 대한 울화지요.
집에 가면 저절로 알게 될, 좋지도 않은 그 소식을 운전하고 있는 사람한테 그렇게 급히 전해서 놀라게 해야겠냐는 게 그녀의 항변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지요.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건 빙산의 일각이라고. 이야기하자면 한도끝도 없답니다.

어제 있었던 일이라면서 다른 지인도 말했습니다. 남편 점심상을 차려준 후 옷을 갈아입고 있던 중이라고 했습니다. 병원 예약시간에 촉박해서 급하게. 남편이 손가락으로 뭘 집어들고 방으로 들어오더랍니다. 점심으로 차려준 수제비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 이겁니다. 순간 달려가서 수제비그릇을 뒤엎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치밀더래요. 갑자기 수제비가 먹고 싶다는 남편의 주문에 병원예약 시간이 빠듯한데도 불구하고 끓여주었으면 머리카락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게 나왔어도 입 다물고 그냥 먹어야 옳지 않냐 이겁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들고와서 보여주면 어쩌라고?!”

그녀는 다시 화가 치민다는 듯 이를 앙다물었습니다. 내 남편도 그래요. 닭을 고아 만든 스프에서 닭뼈가 나오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골라낸다고해도 가는 뼈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꼭 바쁜 사람을 불러서 보고를 합니다. ‘이따만한 닭뼈를 발견했다’. 그냥 식탁 한 켠에 발라내고 나머지를 먹으면 될 텐데 장한 일 했다고 칭찬을 바라는 어린애처럼 신바람이나서 일일이 알려주는 것입니다.

내 남편이나 남의 남편이나 모두들 왜 그럴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확 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