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라는 명목으로 한 달 넘게 집에만 있으면서 간편식인 라면만 줄창 먹었더니 영양실조에 걸렸나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귀가 울립니다. 잠을 잘 못 자거나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거나 영양섭취가 부족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다가 위의 나열한 조건이 해결되고 충족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져요. 그래서 그동안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물론 남편한테 내 증상을 말해 본 적도 없고. 이번에는 남편이 옆에 있길래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습니다. 귀에서 위이윙하는 소리가 난다고. 마치 동굴속에 있는 것처럼 내 말하는 소리가 울린다고.

이럴 때 현명한 남편이라면 해야할 말이 몇 마디 있습니다. 괜찮아? 병원에 안 가 봐도 되겠어? 그러나 공감능력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도 없는 나의 멍청한 남편은 말합니다. 내 귀에서는 스물 네시간 위이잉 소리가 나지. 어렸을 때 형이 장난으로 내 귀에다 대고 딱총을 쏜 후부터. 평생 그 소리를 달고사는 나같은 사람도 있어...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똑같은 업무, 똑같은 사람들(지금은 집에서 일하니까 그들이 조금 그립지만)의 직장일이 정말로 따분하고 재미없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하소연합니다. 직장일, 정말 지겨워죽겠는데 휴가내서 몇 달 푹 쉴까. 남편이 대답합니다. 나는 더 지겨워. 휴가를 내려면 내가 먼저 내야해...
 
항상 이런식입니다. 그냥 좀 진득하게 들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시작한 건 난데 자기가 한 술 더 뜹니다. 나의 불평은 쑥 들어가고 한참동안 남편 말을 듣고있어야합니다. 짜증이납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남편과는 말을 안 하게됩니다. 불평할 일이 있어도 위로받을 일이 생겨도 그냥 입을 다물게 됩니다. 그렇지만 내 남편은 괜찮은 편입니다. 여지껏 내게 상처주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까.

지인 하나가 말했습니다. 40년이란 세월이 지났어도 잊혀지지 않고 가슴에 남아있는 멍울이 있다고. 첫 아기가 태어난 후의 일이랍니다.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육아경험도 없이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아기를 키우는 게 너무너무 힘들더랍니다. 그래서 하루는 남편에게 투정비슷하게 말했대요. 아무래도 애를 다 키울 때까지 미용실 문을 닫아야할 것 같아. 힘들어서 못 하겠어. 그 말을 들은 남편의 얼굴색이 싹 굳어지더니 단번에 그러더랍니다. 지금 붓고있는 곗돈은 어떡하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미용일이 적성에 잘 맞았고 영업도 잘 되는지라 전혀 그만 둘 생각은 없었다고. 설사 남편이 그만두라고한다해도말입니다. 그냥 남편의 따뜻한 위로 한 마디를 듣고 싶었을 뿐이었답니다. 그런데 곗돈 걱정을 먼저하는 걸보고 이런 사람과 계속 살아야하나,싶은 생각이 치밀더래요. 너무너무 섭섭하더래요.


비슷한 얘기가 또 있습니다. 역시 내 주위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차를 가지고 외출했다가 접촉사고가 났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겠지요. 집에 가니까 남편이 바깥에서 기다리고있다가 그녀가 주차하기가 무섭게 달려들어 차를 살피더랍니다. 어디 망가진 데가 없나 보는 거지요. 작은 사고라고는하나 운전대에 가슴을 세게 부딪쳤던 그녀. 신체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너무 놀라고 당황스럽고. 무엇보다도 남편한테 미안해죽겠더랍니다.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차로 사고를 냈으니. 그래서 잘못했다고 사과부터 할 생각이었는데 부인의 안전유무보다는 차를 더 걱정하는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더래요. 사과할 마음이 온 데 간 데 없어지더랍니다. 그래서 차를 확인하고 있는 남편의 뒷통수를 핸드백으로 있는 힘을 다해 후려갈겼답니다.

그리고 또다른 지인의 사연.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 남편이라는 사람의 머릿속이 궁금해졌습니다. 정말로 생각이라는 게 있는 사람일까. 오래 전에 지인이 생활비라도 벌어보려고 혼자 운영할 수 있는 작은 샌드위치가게를 샀을 때의 일이랍니다. 한 며칠 일해보니까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주위에 노숙자도 많고 마약거래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무섭더랍니다. 특히 하루매상을 담은 지갑을 가지고 밤에 퇴근을 할 때.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빨리 생명보험을 들어놓으라고.

남자들만 그렇게 눈치없이 둔하게 구는 줄 알았는데 여자라고 다를 바없네요. 한 할배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 다 나가게되자 그동안 살던 집을 팔아버리고 작은집을 한 채 샀답니다. 지은지 백년 가까이된 집. 물론 고칠 데가 한 두군데가 아니었겠지요. 원래 건축에 취미와 소질이 있었던 할배였던지라 건축자재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며 생업에 종사하는 틈틈이 집을 수리했답니다. 잘라내고 붙이고 파고 묻고 칠하고 끼우고 맞추는 일을 혼자서, 때로는 전문가를 불러서. 돈도 꽤 많이 들었겠지요.

몇 달에 걸친 작업끝에 마침내 집수리가 끝났습니다. 쓸고닦고 청소를 싹 끝내고나니 새 집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더랍니다. 몰라보게 변한 집안팎을 부인한테 보여줄 생각에 잔뜩 마음이 부풀었던 할배. 그동안 수고했다, 당신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는 등의  부인의 칭찬과 찬사를 당연히 기대했겠지요. 그러나 할배의 기대는 퇴근한 부인이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부인이 집을 둘러보면서 픽, 웃더니 한 마디하고 말더랍니다. 돈이 좋긴 좋네...

그 얘기를 하면서 할배가 말했습니다. 내생이 있다면, 그래서 다시 결혼할 기회가 생긴다면 대화가 되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칭찬을 할 줄 아는 여자와 하고싶다고. 그렇습니다. 부부 간에도 칭찬은 필요합니다.

지인 하나는 음식솜씨가 뛰어납니다. 식당을 차리면 손님들이 줄을 잇겠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런데도 그녀의 남편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칭찬을 안 했답니다. 그 어떤 음식을 해줘도 그냥 묵묵히 먹기만하고. 어느날 참다못해 지인이 물었답니다. 어때요? 괜찮아요? 맛있어요? 그런데도 아무 대답없는 남편. 그녀는 이제 요리하는 데에 별로 재미를 못 느낀대요. 반응이 있어야 신이 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게요. 모두 왜 그럴까요. 우리가 배우자로부터 듣고 싶은 한 마디는 별거아닙니다. 애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쉽게 자주 할 수 있는 말이지요. 힘들지. 수고했네. 괜찮아. 맛있네. 고마워.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