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가, 내가 세상에서 태어나 제일 잘한 일 다섯가지 중 '블루 입양'을 하나로 꼽을 만큼 사랑했던 우리 블루가 죽었습니다. 이 세상에 블루가 없다는 게 아직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어제 토요일, 일 년에 한번 실시하는 '커뮤니티 그라지 세일'행사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작년에는 스킵되었던 행사, 올 해는 한달이나 지나 실시되었습니다. 캠핑, 스키, 골프, 롤러스케이트 등 온갖 종류의 취미가 많았던 남편이 나이가 들면서는 그런 스포츠를 즐기는데 한계를 느꼈는지 그 장비들을 없애겠다고하여 그라지 세일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여섯시. 아니 어제 아침이 되겠군요. 남편은 자고 있었습니다. 나 혼자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꺼내놓으려 현관문을 열어놓았는데 블루가 열린 문을 통해 앞길로 뛰어나가다가 때맞춰 지나가는 차에 치인 것입니다. 제한속도보다 빠르게 지나가던 차에.새벽에 뭐가 급해서 차를 그렇게 빠르게 몰았는지.
바로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정말이지 단 1, 2초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차에 부딪치고 튕겨져나가 쓰러진 블루를 미친 듯이 쫒아나가 안아올렸으나 블루는 이미 축 쳐져있었습니다. 나는 이미 알았습니다. 블루가 잘못되었다는 걸. 블루를 안은채 이 세상사람이 낼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널부러져있다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그때까지 자고 있던 남편에게 울부짖었습니다. 블루가, 블루가, 블루가 차에 치였다고! 잠결에 제대로 된 상황판단을 못한 남편은 후다닥 일어나더니 팬티바람으로 현관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블루가 길에 쓰러져있는 걸로 생각한 거지요.
피 한방울 안 흘리고 뼈 한 자락 다친 데 없이 블루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유기견으로 거리를 떠돌다가 2009년 8월 31일, 우리의 품에 안겼던 블루였습니다. 나보다도 남편이 얼마나 블루를 좋아했던지요. 이렇게 이쁜 강아지는 '복제'를 해서 한 마리 더 만들어야한다고 늘 농담을 하던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이 지난달 은퇴기념으로 10만불에 가까운 트럭을 샀어요. 자기 평생의 드림카라고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아까 그럽니다. 이 트럭을 포기해서 블루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키를 내던지겠다고. 나 역시 그렇습니다. 블루가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모두를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꽤 비싼 남편의 스포츠장비들이라 그라지 세일에서 적지않은 수입을 올렸지만 돈을 담았던 박스는 아직도 그라지 한 구석에 팽개처져 있습니다. 얼마인지 세어볼 의욕도 없어요. 블루가 이 세상에서 없어졌는데 돈이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화장을 한다고 남편이 말했으나 내가 못한다고 했습니다. 두고두고 내 옆에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점점 굳어지는 블루의 몸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인들과, 그리고 커뮤니티와의 약속때문에 눈물을 참으며 억지로 열었던 그라지세일을 대충 마치고 나니 2시가 넘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뒷뜰 한 구석을 팠습니다. 정부에서 허락하는 깊이대로(남편이 줄자로 재어가면서)깊게깊게 구덩이를 팠습니다. 100도가 넘는 오후, 둘이서 눈물과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그리고 그때까지 잠자듯 상자 안에 누워있는 불루를 차가운 땅 속에 넣었습니다. '굳바이 블루'하면서 남편이 흙을 덮으며 통곡을 했습니다. 늘 냉철하고 침착하고 감정의 흔들림이 없던 남편, 결혼생활 20여년만에 그렇게 심하게 우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블루가 묻힌 자리 위에 꽃나무를 심었습니다. 이름은 모릅니다. 언제 개화하는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크게 자라는지도 모릅니다. 블루가 더 이상 냄새 나기 전에 얼른 땅속으로 안식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마음에 급하게 골라온 것이라. 홈디포에 있는 것중 가장 이쁘게 꽃이 피어있는 것을 골라온 것이라. 남편이 꽃나무에 물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제 블루가 꽃으로 만발해서 우리에게 늘 인사를 할 거라고.
입양공고에 난 사진만 보고는 이렇게 이쁜 강아지가 왜 유기되어 길거리를 헤매야했을까, 궁금했었는데 블루를 데려온 첫 날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얼마나 부산스럽고 유별나던지요. 단 일초도 가만 있지를 못하던 블루, 온갖 저지레와 말썽을 부리던 블루. 정말이지 힘들었더랬습니다. 그러나 애교도 많았던 강아지였습니다. 잠이 안와 침대에서 빠져나와 소파에 누우면 어느새 바람처럼 달려와 내 옆에 차악 몸을 붙히던 블루. 뽀뽀도 얼마나 잘 하던지요. 아침에 눈 뜨면 적어도 뽀뽀 삼백번은 받아야만 일어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블루가 안 보이네요. 하루종일 굶어서 쓰린 속을 부여잡고 소파에 누워있는데도 우리 블루는 내 옆으로 안 오네요. 내가 깨어난 기척을 보이면 쏜살같이 달려와 뽀뽀를 퍼부어주던 블루. 엊저녁부터 지금까지 잠 한숨 안 자고 몸을 뒤척거리는 데도 뽀뽀를 안 퍼붓네요...
남편이 말합니다. 현관문 열어놓은 게 실수였다고 자책하지 말라고. 왜 블루를 일찍 데려갔냐고 신을 원망하지 말라고. 세상에 둘도 없는 귀염둥이가 2년이나 우리 곁에 머물렀던 걸 감사하라고.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멍합니다. 믿어지지 않고 그냥 멍합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 블루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는데도 해는 지고 바람은 불고 그리고 새벽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 하루종일 울었는데도 계속 눈물이 그치지 않고 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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