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가 갑작스레 우리곁을 떠난 후 흑암의 슬픔에 빠져있을 때 주위에서 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야 해. 시간지나면 태산같던 아픔이 옅어질 거야.

주위 사람들의 말이 맞더군요.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경악과 슬픔과 후회에서(왜 하필 그 시간에 문을 열어놓았을까 하는)많이 벗어났습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독자님들의 위로도 큰 도움이 됐지요. 또한 침대며 장난감이며 사진이며 블루와 연관된 모든 것을 다 치운 것도요. 즐거웠던 추억을 위해 몇 개는 간직하라고 남편이 조언했었지만 눈 앞에 물건들이 보일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내려서 견딜 수가 없어요. 하나도 남김없이 다 없앴습니다.

그중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강아지 ‘룰루’ 였는데요, 독자님들은 잘 모를 겁니다, 우리 룰루에 대해서. 왜냐면 룰루에 대한 글을 거의 쓴 적이 없으니까. 이제 우리 룰루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룰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블루에 대해 더 언급을 해야합니다. 여기 몇 번 언급했지만 블루는 보통 강아지가 아니었어요. 별난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웬만한 인내심과 아량을 가지고는 키울 수 없는. 오는 날부터 잠시도 가만 안 있고 온 집안을 헤집고다니던 버릇이 세상 뜰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머리카락 스치는 소리에도, 바늘 떨어지는 소리에도 죽어라 짖는 버릇은 또 어떻고요. 택배 배달이라도 되는 날은 집안이 뒤집어집니다. 수요일마다 오는 정원사가 있어요. 2년이나 얼굴을 익혔으니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닙니다. 정원사가 일을 마치고 사라질 때까지 자지러지게 짖는 것도 모자라 창문을 향해 펄쩍펄쩍 뜁니다. 저러다 숨넘어가지 싶을 만큼. 식탁에 뭐라고 놓아두면 큰일 납니다. 언제 어느새 귀신같이 잽싸게 휩쓸어서 입에 넣어버리니까. 그렇게 잠시도 눈을 못 떼게 말썽을 일으키는 녀석이었지만 남편과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로 사랑했습니다. 복실복실, 인형같이 귀여운 외모에 반해서, 그리고 애교에 빠져서입니다.

어쨌든 블루의 에너지가 너무 많은 게 문제였습니다. 물 밖으로 내놓은 생선같아요. 스물 네 시간 펄쩍펄쩍 뜁니다.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시켜도 넘쳐나는 활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를 더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가능하면 어린놈으로. 둘이 매일 싸우고 뒹굴면서 에너지 소모를 시킬 수 있으니까. 그래서 룰루를 한국으로부터 입양한 겁니다. 코비드 19때문에 이동봉사자를 구하지 못해 두 달을 속을 끓이다가 천사같은 분이 나타나서 마침내 룰루가 미국땅에 오게되었습니다.

새 강아지를 만난다는 기쁨으로 밤잠도 설치고 일찌감치 공항에 나갔던 우리. 오매불망 기다렸던 강아지 룰루가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 입을 벌린채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너무너무 못생기고 이상한 몸형태를 가진 강아지가 온 겁니다. 몸통이 기형적으로 길어요. 젓가락같은 다리는 네 군 데로 제각각 휘었어요. 게다가 허리와 등이 활처럼 솟아 굽어있습니다(얼굴과 앞 모습만 나온 사진을 받아봤기에 그런 괴상한 몸형체를 가진 강아지라고는 꿈에도 몰랐지요). 블루같이 귀여운 외모를 기대했던 우리는 실망하고 경악하고 허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케이지에 갇힌 채 열 몇시간의 비행으로 몸을 펼 수 없는 상황이었기도 했겠지만 강아지가 걸음도 제대로 못 걷습니다. 비척비척 금방이라 옆으로 쓰러질 것 같습니다. 몇 번싼 오줌으로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기저귀를 차고 있긴 했지만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강아지라니.

기저귀를 제거하고 안아 올리니까 꽤 큰 덩치의 강아지가 솜처럼 가볍습니다. 얼마나 굶었는지 뱃가죽이 서로 닿아있고 갈비뼈가 만져집니다.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입양비 외에 적지않은 도네이션도 했건만 그 돈으로 좀 배불리 먹이지. 룰루가 도착한 후 도네이션을 좀 더 하려했던 마음이 싹 가셔버렸습니다.

집에 데려오니 블루가 새친구 생겼다고 좋아서 날뛰는데 룰루는 구석진 자리로 숨습니다. 입고 있던 얼룩덜룩 얄궂은 옷을 벗겨놓으니 룰루의 상태는 더 심각합니다. 등 위에 끈으로 묶여있던 자국이 움푹 패여 있어요. 새끼때 채운 하네스를 몸집이 클 때까지 벗기지 않고 방치해 두었던 것 같아요. 또한 태어나서 한 번도 산책을 못해본 것 같습니다. 한 살 넘었다는 강아지의 발바닥이 말랑말랑한 데다 완전히 핑크색입니다. 케이지에 갇혀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아요. 그래서 걸음을 못 걸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룰루의 모습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살이 찌면서 굽었던 등이 좀 펴졌어요. 그래도 여전히 이상합니다. 블루와 자꾸 비교가 됩니다. 생긴 모습이 그러니 썩 정이 안 가는데 학대받은 개가 그렇듯 쉽게 마음을 안 엽니다. 쓰다듬어 주려고 불러도 잘 오지도 않습니다. 멀찌감치서 눈치만 봅니다. 블루랑은 같이 장난도 치고 싸움도 하면서 잘지내는 것같지만 우리랑은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블루가 떠난 후 룰루에게 관심을 쏟게 된 건 당연지사.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전혀 몰랐던 룰루의 장점을, 그러니까 룰루의 진면목을 말입니다. 블루와는 달리 룰루는 정말로정말로 얌전하고 착한 성품을 가진 강아지였어요. 혼자 집에 두고 나갔다가 와도 저지레를 일절 안 합니다. 문이 열려 있어도 현관에 앉아서 바깥을 내다는 볼 지언정 제 멋대로 나가지도 않고요. 호시탐탐 문 열리기만 기다렸다가 총알같이 튀어나가버리는 블루때문에 늘 신경을 곤두세웠어야 했는데.

말도 얼마나 잘 듣는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습니다. 인적없는 공원에서 목줄을 잠깐 풀어놔 봤습니다. 옆을 떠나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습니다. 지가 좋아하는 말린 닭고기를 놓아두고 ‘안돼’ 하고 명령하면 절대로 먼저 건드리지를 않아요. 블루같았으면 명령이고 나발이고 비호같이 얼른 낚아채 갔겠지요. 참 재밌는 게 아무 훈련도 시키지 않았는데 우리 집에 온 지난 9개월 동안 룰루 스스로 깨우친 것 같아요. 얼마나 신기한지. 그리고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운지.

우리는 지금 룰루에게 흠뻑 정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튈지 몰라서, 무슨 저지레를 할지 몰라 늘 노심초사해야 했던 블루와는 다르게 평온한 나날 속에서. 룰루를 보면서 다시금 느낍니다. 개나 사람이나 생김새보다는 성품이 우선이구나하는 것을. 못생겨도 성품이 좋으니 사랑이 저절로 가는구나하는 것을.

- 사진은 우리집에 온지 두 달 무렵의 룰루. 살이 제법 올랐고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시켜 발바닥이 까매지고 활처럼 솟아오른 등이 약간 펴지긴 했지만 정상적인 개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의 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