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 하므로 좋은 점이 있습니다. 출근시간에 쫒기지 않아도 되니까 룰루를 데리고 아침에도 산책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저녁에 한 번, 그리고 주말에만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침 저녁으로 합니다. 나랑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많은가 봐요. 아침에 개랑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 중 한 중국인과 캄보디안 부부는 아주 친해져서 서로 독시터도 해주고 가끔 밥도 같이 먹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먼저 죽더라도 내가 슬픔에 빠져만 있는 걸 원치않는다는 남편이 한 말이 있어요. 무조건 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 그러면 개를 매개체로 해서 다시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남편 말이 맞았네요. 야위고 비루먹은 모습이던 우리 룰루가 일년이 된 지금은 일취월장해서 나가기만하면 사람들이 꼭 말을 겁니다. 귀엽고 예쁘다고요. 아닌게아니라 룰루로 인해 에스도 만났고 위에 쓴 두 부부도 만났습니다. 내가 만약 싱글이었다면 분명 남자도 만날 수 있었을 겁니다.
얼마전에는 나랑 같은 또래의 한국 여성도 만났어요. 물론 룰루로 인해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알고보니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여성이었습니다. 이름은 샌디. 남편이랑 딸이랑 삽니다. 그림 그리기, 요리에 소질이 있습니다. 곳곳에 장식한 본인의 그림으로 그녀의 집은 작은 갤러리같아요. 직접 만들었다는 통밀빵 맛은 기가 막힙니다. 짬뽕은 식당보다 더 맛있게 만듭니다. 잠깐 키웠던 새가 병으로 죽자 딸이랑 일 년 가까이를 슬퍼했다는 걸보니 심성도 착하고 동물사랑도 지극한 것 같아요. 독서랑 걷는 것도 좋아해서 나랑 아주 잘맞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처음 만나던 날부터 우리 룰루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샌디가 개를 한 마리 입양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힙니다. 그 말에 반짝, 내 머리에 떠오른 개가 있었습니다. ‘크림’이었습니다. 미시유에스에이 ‘입양 이동봉사방’에 올라온 세살짜리 숫컷입니다. 오묘하고 신비한 눈 색깔을 가진. 그러나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실을 아는지 착 가라앉은 눈빛을 가진.
사실 이 크림이를 내가 입양했으면 싶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반대했어요. 죽은 블루랑 같은 모습의 개가 아니면 절대 집에 들이지 않겠다는 겁니다. 남편의 심경을 이해했습니다. 블루를 보통 예뻐했었어야지요. 아직은 다른 모습을 가진 강아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나는 크림이 입양공고를 시간날 때마다 들여다 보았습니다. 물론, 안타까워서지요. 한국의 한 임시보호자가 돌보고 있다는 크림이는 몸집이 좀 큰 편에 속합니다. 또한 첫눈에 현혹될 만큼 귀여운 모습도 아닙니다. 어쩌면 입양가능성이 높지 않을 아이입니다. 그래서 자꾸 마음이 가고 눈에 밟혔어요. 이빨이 부정교합인 관계로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입양문의가 제로라 ‘빵이’라고 이름 붙여진 한 싯츄 믹스도 너무 불쌍해서 내가 입양하려했다가 남편과 크게 싸울 뻔 했습니다. 다행히도 빵이는 나중에 입양이 된 것 같았어요. 그러나 크림이 입양공고는 한 달이 넘도록 여전히 내려지지 않고 그냥 있었습니다.
나는 미시유에스에이에 포스팅된 크림이 입양공고를 샌디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침을 튀기며 개 입양의 장점을 설명했지요. 지금은 우리가 걔네들을 구하는 것 같겠지만 곧 걔네들이 우리를 구했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내 말이 아니더라도 샌디는 크림이를 마음에 들어하더군요. 그녀가 입양의사를 밝히기가 무섭게 나는 부랴부랴 입양관계기관에다 연락했습니다. 쏜 화살보다 더 빠르게요.
“기쁜 소식입니다. 어쩌면 크림이가 입양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 여름, 휴가지에서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길거리를 배회하다 구조되었다는 크림이. 단지 몸집이 좀 있고 사람들의 눈길을 단번에 끌만한 귀여운 생김새가 아니라는 이유로 몇 개월이 넘도록 임시보호처에서 생활하던 우리 크림이는 그렇게 해서 미국으로 왔습니다. 입양관계기관과 몇 번의 서면인터뷰와 전화인터뷰를 통해 입양이 결정된 후 샌디는 크림이가 쓸 침대며 사료,목욕용품, 장난감 들을 잔뜩 주문했답니다.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오는 이동봉사자로부터 크림이를 건네받는 날짜가 정해진 후에는 설레임과 걱정에 몇날 며칠 잠을 설쳤다고 했습니다. 당연하지요. 생명을 가진 식구를 집에 들이는 일인데요.
‘크림이가 출국합니다’라는 문자와 함께 관계자 품에 안긴 크림이 사진을 받고 나는 울었습니다. 고맙고 안스럽고 기쁘고 안도하는 마음에 눈물이 마구 나더군요. 크림아, 드디어 오는구나. 그동안 고생 많았다…
크림이가 미국에 도착하던 날은 나도 아침부터 마음이 부산했습니다. 스무 시간 가까운 이동을 크림이가 잘 견뎌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 직장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몇 개월이나 정들었던 임시보호자를 떠나 관계자의 손에서 이동봉사자한테로, 그리고 샌디에게로 하룻만에 몇 번씩 교체되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크림이 심리 상태도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샌디로부터 들으니 크림이는 아주 어연했다고합니다. 공항에서부터 집까지 오는 동안에도 얌전하게 케이지 안에 엎드려 있었고 집에 도착해서 목욕을 시키는 동안에도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목욕을 마친 후에는 샌디는 물론, 남편에게도 딸에게도 넙죽넙죽 가서 안기고 마치 그 집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녀석처럼 행동하더랍니다.
며칠 후 아침, 산책길에서 크림이를 만났습니다. 사진에서 보던 것 보다 훨씬 단정하고 핸섬한 모습의 크림이를 쓰다듬으며 주책없이 또 울었습니다. 길고 험난한 여정을 잘 견뎌낸 크림이가 대견해서. 또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크림이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애써 준 모든 관계자들과 이동봉사자가 고마워서 나온 눈물이었습니다. 특히 크림이를 미국까지 데려온 이동봉사자는 크림이 외에도 세 마리를 더 데리고 들어왔답니다. 휠체어 탄 노모까지 모시고 오면서. 보통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아이 하나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만 개 한 마리를 미국에 입양시키기 위해서는 수 많은 봉사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내가 한국에서부터 두 마리의 유기견을 입양했기에 그들 입양단체에서 일하는 봉사자들의 노고를 압니다. 그들은 자기 돈 써가면서 자기 시간 써가면서 때로는 험한 소리 들어가면서 오로지 불쌍한 유기견들이 따뜻한 새주인의 품에 안기길 바라는 염원 하나로 기꺼이 그 힘든 일을 합니다.
이 칼럼을 통해 그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말로 정말로 고맙습니다. 당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을 하는 분들입니다. 당신들의 손길 위에 신의 축복이 가득하길 염원합니다!
- 사진은 비 오는 날, 샌디가 신겨준 장화를 신고 산책 나가기 전의 크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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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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