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우리에게 온갖 고난과 역경과 고통을 주셨지만 아울러 ‘희망’이란 찬란한 선물도 같이 주셨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고개들어 하늘 한 번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지치고 비탄스러워도 현재의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만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버텨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나 또한 그랬습니다. 작년 8월, 내 미개함으로 한겨울 얼음물 같은 냉기에 온몸이 휩쌓인 듯한 증상이 찾아왔을 때,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더랬습니다. 생강 대추 홍삼 등 몸을 데워주는 식품들을 장복하면서 보신하면 금방 나을 거라고 낙관했어요.

그런데요. 일 년이 지나도 증상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매일 뜸을 두 달간이나 떴고요. 염소탕을 두 재나 먹었습니다. 아울러 공진단, 경옥고, 흑마늘, 생강, 대추, 꿀, 등등 열을 내준다는 식품을 안 먹어 본 게 없었지요. 침 또한 수없이 맞았고 하다하다 안 되어서 양의를 만나 ‘가바펜틴’이란 약도 복용했습니다. 하체에만 유독 이런 증상이 있으니 척추가 문제가 아닐까, 하는 통증 전문의의 소견에 따라 엠알아이도 찍어보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이상 무.

백약이 무효인 나날이 일 년이 넘게 되자 희망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절망이 들어섰습니다. 이런 고통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나 하는 두려움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즈음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의 췌장암 발병 소식을 들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헤어날 수 없는 흑막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기분.

그렇게 나락에 떨어져 있는 와중에 ’미시 롸이러 중 한 작가의 글이 불편해요‘라는 제목의 속풀이 방 글을 접하게 되었어요. ’고집스럽고 꼰대같은 글인데 왜 인기가 있는 줄 모르겠다. 나만 그런가요?‘라는 내용으로 나를 저격한.

처음엔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그 글을 읽었고 같은 마음으로 댓글들을 지켜 보았지요. 아, 이렇게 다른 시각으로 나를 보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마음에요. 익명이니 당연히 남 눈치 볼 필요없이 비판할 수 있지 않겠어요. 솔직한 독자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니까 말이지요.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역시 나를 감추고 남을 흉보고 욕하는 일은 구미가 바짝 당기는 일인가 봅니다. 삽시간에 댓글이 120개가 넘고 조회수가 만 이천에 육박합니다. 나는 댓글 하나하나를 다 읽었습니다. 참 재미있더군요. 인상이 세다, 췌장암 걸린 친구까지 글 소재로 썼더라, 모델하우스 같다고 집자랑을 해놨는데 전혀 아닌 것 같다, 한쪽 면만 보고 주장이 강하다, 틀리는 영어단어를 줄기차게 쓴다, 코워커의 외모를 비하한다, 남 외모를 비하하다 못해 강아지 외모도 비하했더라, 매 글마다 댓글은 50여개가 달려있는데 읽어보면 작가의 댓글이 절반이더라, 눈 나빠서 이웃집에 온 경찰차를 잘 못보고 소문 낼 뻔 했다는 글을 보고 기함했다, 한약을 양파즙으로 속여서 미국에 가져온 글을 보고 작가의 양심을 짐작했다…

물론 그렇게 깎아내리는 글보다 그들을 비난하고 나무라고 이계숙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댓글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백인백색이라고 각자의 느낌과 감상과 생각은 다르니까. 그런데 딱 두 개의 댓글이 나를 얼어붙게 하더군요. ’건강하지 못한 글이다’, 그리고 ‘지금 가서 읽고 왔더니 주부가 쓰는 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글이더라’는.

그 말이 비수가 되어 나를 찔렀습니다. 어느 글이 건강하지 못했을까. 무릇 글이란 정신과 소양을 채우는 양식인데 건강하지 못한 글을, 그리고 주부가 쓰는 일기 수준의 처참한 글을 글이랍시고 지금까지 쓰고 있었단 말인가.

지난 17년동안 단 한 번도 어기지 않고 독자님들과 약속한 날짜를 지키면서 매 회 조회수 1위, 댓글 1위에 빛나는 ’이계숙의 미국에 살며‘가, 나의 자존심일 수도 있는 이계숙의 미국에 살며가 무참하게 거부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원글보다 거기에 달린 댓글이.

그렇게 쉽게 남의 작품들을 폄하하고 무시하고 조롱하고 비하하고 업신여기고 비아냥거릴 수 있는 강심장이 차라리 부러울 지경이었어요. 왜 건강하지 못한 글인지, 왜 한낱 주부가 쓰는 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지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설명이라도 했으면 아하, 그렇구나 납득이라도 했을 텐데요. 그냥 �� 하고 던져 놓은 그 몇 마디가 나를 마구 흔듭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못난 탓이겠지요. 속이 꽉 차 있는 사람이라면 작은 바람에 휘둘리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사실 평소였다면 대범하게 흘려 보냈을지도 모르는데요. 몸과 마음이 약해질대로 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맞은 독한 화살은 심장을 관통했습니다. 피를 철철 흘리게 했습니다.

열흘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래, 그만 하자였습니다. 모든 세상만물에는 때가 있는 법. 이제는 그만 하라는 신호인가 보다. 사람도 죽을 마당에 이 무슨 대수라고. 결단을 내리게 해 준 ‘댓글녀’ 두 명이 차라리 고마웠습니다. 미시 운영진에게 통보했습니다. 그만 쓰겠습니다. 다음 번 글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라고.


그. 러. 나. 돌.아.가.겠.습.니.다! 모든 걸 접고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청춘 방장님을 비롯한 여러 독자님들의 만류와 간청에 도대체 내가 뭐라고 저렇게 많은 분들을 안타깝고 슬프게 하나 싶어서 다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독자님들이 저를 잡는 간절한 손길을 뿌리치기에는 제 마음이 모질지 못하네요.

모든 분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감격하다가 감동하다가 미안하다가 고맙다가 하여튼 울고 웃었습니다.특히 ‘수 김‘ 님의 댓글은 날 더 많이 울게 했고요. 청춘 방장님이 언급하신대로 저의 오래된 독자인 계화 님도 제가 마음을 다잡는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여러 독자님들의 사랑에 고맙다는 말로는 제 마음이 표현이 안 될 듯 하지만 더 재밌고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다음달 1일부터. 미국에 돌아가서 몸과 마음을 좀 추스린 후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약속할께요.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절필선언 같은 것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5백 회를 끝으로 칼럼문을 닫겠다고 선언했는데요. 5백회, 천 회, 만 회, 계속 쓰겠습니다. 팔에 힘이 빠질 때까지. 근데 제 팔은 소 한 마리는 거뜬히 때려잡고도 남을 만큼 튼튼하답니다. 앞으로 20년은 끄떡 없을 듯!

친구는 가면 갈수록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친구 마지막 가는 길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하루하루가 불안한 상태입니다.

저는 친구에 의해 억지로 맞은 침 덕분인지 몸이 많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출국하기 전에 두어번 더 맞았으면 좋겠는데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표가 연휴라서 전부 매진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예매해 놓을 걸.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우리 인간사라고 하더니 기차표가 그걸 말해 주네요. 아니, 두 번 다시는 쳐다보지 않으리란 제 방에 다시 돌아가는 결심을 한 것으로 정말이지 인간사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합니다.

목욕재계하고 비싼 분 찍어바르고 향수 뿌리고 쨘~ 하고 나타날 터이니 그때까지 모두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그동안 국적기를 타지 않아서 못했던 ‘이동봉사’. 이번엔 국적기를 타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나랑 같이 미국에 들어갈 두 생명들, ’우디‘와 ‘오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