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터가 과연 있나요?’라는 제목이 속풀이방 조회수 상위에 올라있는 걸 보았습니다. 클릭했더니 내용은 대충 이랬습니다. 유독 동네 한 집의 주인들이 ‘흉사’를 당해서 나간다. 암에 걸리거나 이혼을 하거나 실직을 당해서. 새로 누가 들어오면 역시 같은 이유로 집을 판다. 안 좋은 집터가 있는 것같다….

댓글이 백 개 넘게 달렸는데 거의 글쓴이를 비난하는 내용이었어요. 달나라에 가는 현대에서 아직도 그런 미신을 믿고 있는 원글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다. 요즘 뻑하면 이혼이요, 암 발병이요, 실직인데 어찌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하느냐. 동네에서 이혼 안 하고 가족 중에 암 안 걸리고 실직 안 당해 본 집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등등.

그렇습니다. 당해보지 않으면, 내 눈으로 목격하지 않으면 황당무계한 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지요. 나 역시 그랬습니다. 우리 부모가 살던 집, 그 동네에서 유일한 이층집이라고 아버지 엄마가 자랑스러워 마지 않던 그 집에서 일어난 일을 겪지 않았을 때는. 지금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느껴지는 그 무엇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2019년 7월 1일에 썼던 ‘엄마의 집, 그 무서웠던 기억’편과 2019년 12월 1일의 ‘귀신이 머물던 집’ 및 2022년 6월 1일, ‘그 집에는 귀신이 살았다’ 등 내 글 세 편을 먼저 읽어 보시면 무슨 말인이지 이해가 쉬울 겁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또 있어요.

몇년 전, 한국에 갔는데 동생이 식식거립니다. 우리 부모가 살던 집, 그러니까 병원에 팔아넘겼던 집때문입니다. 병원측에서 집을 싹 다 허문 후 그 터를 주차장으로 썼답니다. 집도 넓었었고 마당 또한 무척 넓었기에 주차장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했지요. 그러다가 최근 주차장 한켠에 새 건물을 지었는데 다름아닌 시체 안치소라는 것입니다. 집이 위치했던 그 자리에 딱.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집터에다 시체 안치소를 만들 줄 알았으면 안 팔았을 거라고 동생은 후회합니다. 하필이면 시체 안치소일까요. 귀신이 살던 흉하기 짝이 없는 터라는 것을 병원 측에서도 알았던 것일까요.

작년에 한국갔을 때. 비번이라며 찾아온 종국이와 함께 어릴 때 우리 자라던 마을에 갔었습니다. 2백 호 넘던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집들이 거의 비어서 유령이라도 나올 것처럼 황폐해졌어요.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못할 만큼 변해있었습니다. 우리 어릴 때의 흔적은 다 사라져버렸지만 경치는 여전해서 동네와 가까운 산 중턱에 카페가 몇 군데 생겼습니다. 카페 한 곳에 들러서 커피를 마신 후 개 한 마리 나다니지 않는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길을 기웃거려 봤습니다. 그때 어디서 징 치는 소리가 댕댕댕 들려왔습니다. 종국이가 말했습니다. 계숙이 니 기억하나? 우리 어릴 때 동네에서 제일 크고 좋은 집이던 P네? 저 소리, P집에서 들리는 소리다. 오늘 때 맞춰 굿을 하나보네. 저 집, 되게 무섭대이. 귀신 나오는 집이다.

예나 지금이나 잘 나다니지 않아 동네 사람들을 잘 모르지만 P집은 압니다. 모두 배고프고 힘들던 시절에 삼시 세 끼 쌀밥만 먹던 부잣집이었거든요. 방앗관과 술도가를 운영하던.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집 아들 딸들이 하나 둘씩 차례차례 죽어요. 병사와 사고. P도 이름 모를 병으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죽었어요. 그래서인지 몇 년 후에 P부모가 집을 팔고 나갔는데 그 집을 산 사람이 종국이네라고 합니다.

동네에서 가장 크고 좋은 집을 산 기쁨도 잠시. 그 집에 들어가자 마자 흉사가 잇따르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낙상해 허리를 다치고 멀쩡하던 어머니가 자리에 눕고 종국이 형이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답니다. 여동생도 시름시름 앓고요. 당시 종국이는 군에 가 있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사고소식에 제대를 몇 달 앞 둔 군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더랍니다. 겨우 제대를 하고 집에 갔는데 대문에 딱 들어서는 순간 집이 문제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집에 머무는 듯한 섬뜩한 느낌. 수백 그루의 대나무가 집 뒤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스스스스하는 소리가 소름이 끼치더랍니다. 그래서 부모를 설득해 그 집에서 나왔는데 그 뒤로도 두 집이 이사를 들어갔다가 온갖 병을 얻거나 사고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결국 귀신붙은 집으로 소문이 나서 십년 넘게 비어있었는데 몇 년전에 어느 무속인이 보더니‘ 여기가 딱 내 터다’며 구입해서는 무당집을 차렸다는 것입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 집에 가보자고 종국이를 재촉했습니다만 꿈에도 보기 싫은 곳이라고 종국이가 질색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보지는 못했고 멀리서만 봤는데 아닌게 아니라 무섭게 생겼더군요. 종국이 말처럼 날카로운 칼처럼 생긴 시퍼런 잎들이 무성한 대나무들이 집 뒤와 옆 전체에 퍼져있었습니다. 검은 이끼가 잔뜩 끼이고 잡초가 웃자라 있는 기와지붕은 세월의 더께가 앉아 무겁게 보였고요.

그런 무서운 집터는 한국에만 있을까요. 아니요. 미국에도 있습니다. 지난 30년동안 수많은 집을 방문할 기회(십년 넘게 기자생활을 했기에 더더욱)가 있었는데요. 내가 가본 집 중 네 곳이 그랬습니다. 들어갈 때부터 기분이 안 좋고 거기 있는 동안도 누가 뒤에 서 있는 듯 섬��하고 두 번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집이요.

하나. 대도시에 살다가 이 동네로 이사온 한 부부 집이었습니다. 이직때문에 급해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산 집이라고 해요. 동네에서 외따로 떨어진 작은 산속에 위치해 있었는데요. 작은 산이라 하나 나무들이 얼마나 울창한지 집 전체가 그늘 졌습니다. 하루종일 집 안이 캄캄해요. 오래 비어있었던 탓에 시가보다 싸게 산 집이라는데 안은 엄청 넓었습니다. 아이 하나와 세 식구가 살기엔 너무 크다 싶을 정도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돼 나를 알게 된 부부는 친해보려고 엄청 애를 썼어요. 갖은 산해진미를 마련해놓고 자주 나를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집에 가는 게 내키지 않는 겁니다. 집안에 발을 들여놓는 게 괜히 주저되고요. 집이 크다보니 빈 방이 많았는데 방문이 열려 있어도 무섭고 닫혀있어도 무섭고요. 닫혀있는 방안에는 뭐가 있을까, 온갖 상상이 되면서 얼마나 가슴이 오그라들던지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나중엔 초대에 응하지 않았는데 부부는 외로움에 못견뎌서인지 마켓에서 만난 사람들, 식당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른 후. 그 초대에 응했던 사람들을 몇몇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하는 겁니다. 그 집에 가는 게 너무너무 싫었다고. 보이지 않는 검은 그림자가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같이 숨이 답답하고 뭐가 꽉 눌리는 기분이 들고 오싹하고. 집안 전체에서 뿜어져나오는 냉기가 상당하더랍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좋지 않은 냉기가.

둘. 우리 동네에 사는 한 할매집이었습니다. 아주 인색하고 욕심 많은 할매였는데(2020년 4월 1일에 쓴 ‘돈이 아주아주 많은 이웃 할매가’를 참조하세요)주위에 많이 베푸는 나를 자주 보면서 동화되었는지 나와 내 지인들을 초대했습니다. 스테이크를 구워주겠다고요. 추운 겨울 저녁, 다섯 명이 할매집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는 집같이 안팎이 캄캄합니다. 안에서 보이는 희미한 불빛도 없이요. 날짜를 잘못 알았나 당황하면서 초인종을 여러번 울리자 마침내 느릿느릿 문이 열리며 할매가 나왔는데 뒤꼍에서 고기를 굽느라 아무 소리를 못들었대요. 불이나 좀 켜놓고 있지요하고 내가 짜증을 부리자 아무도 없는데 전기세 아까와서라고 응수합니다.

방 네 개의 넓은 집에 주먹만한 강아지랑 둘이 사는 할매입니다. 불을 제대로 켜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어찌 그리 집안 분위기가 괴괴하던지요. 화장실을 가기 위해 혼자 식탁에서 나왔다가 섬��해서 얼른 도로 들어갔습니다.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게 정말이지 무서웠습니다. 그 집은 유난히 복도가 길었는데 그 복도 끝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스물스물 기어나올 것만 같고요.

돌아 오는 길. 차 안에서 네 명이 똑같은 말을 합니다. 모르고 얼떨결에 한 번은 초대에 응하지 두 번 다시는 안 가고 싶은 집이라고요. 할매가 아낀다고 불을 제대로 켜지 않았기도 했지만 집안 구석구석에 뭐가 웅크리고 있는 것같고 하여튼 소름끼치는 집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나만이 아닌, 아닌 다른 사람도 같이 느끼는 스산한 느낌의 집이 있구나하는 것을요.

셋. 아이없이 부부만 사는 집이었는데 남편이 중국인이었습니다. 남편이 한국민속을 좋아한다고 해요. 집안 곳곳에 한복 인형과 부처상이 놓여있고 징이니 장구니 하는 한국악기가 많았어요. 하회탈같은 장식품들이 벽마다 수없이 걸려있었고요.집안 곳곳에 놓인 책장에는 수천권의 책들이 꽂혀있었습니다.집 크기에 비해 물건들이 너무 빽빽하게 많았어요.

오래된 집이라 천정도 낮은데 수천권의 책에다가 온갖 울긋불긋한 장식품들에다 그 집에만 가면 숨이 막혔습니다. 그리고 앞뜰 뒷뜰에 비비 틀리며 자란 나무들이 많았는데 그 나무들이 만든 그늘 때문에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사물을 분간 못할 만큼 집안이 어두웠습니다. 그 부인과 친해서 자주 그집에 갔었는데 가자마자 얼른 돌아나오고 싶을 만큼 기분이 안 좋았어요. 여름이나 겨울이나 집안에 찬 기운이 도는 것 같고 특히 음침한 느낌이 드는 화장실에 가는 일은 고역이었습니다. 위에서 누가 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목덜미가 늘 서늘했습니다. 나중에 부부는 이혼했습니다. 부인은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마지막 집. 지인의 아들이 바이올린 렛슨을 받는 집이라고 해서 한 번 따라갔었습니다. 드라이브 웨이에서 바라보니 꼭 공포영화에 나오는 집같았습니다. 산뜻하고 밝은 느낌이라고 전혀 없이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듯이 낡고 바랬고. 선생은 혼자사는 사십 중반의 여자. 흑단같은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창백한 얼굴에 젓가락같이 마른 병약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들이 렛슨을 받는 동안 친구와 나는 뒷뜰에서 기다리기로 했는데요. 여자 혼자 살며 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뒷뜰은 마구 자란 화초와 잡초들이 뒤엉켜서 정글같이 엉망이었어요. 배수가 안 되는지 땅 전체에 이끼들이 시퍼렇게 뒤덮혔고 구석에는 수백년은 되었을 듯한 큰 고목이 있었는데 무성한 가지와 잎 때문에 뒷뜰 전체가 아주 어두웠고 습했니다. 그 나무에 차 타이어를 밧줄에 매어 갓난아기 크기의 헝겊인형을 앉혀 놓았습니다. 타이어가 천천히 흔들거리고 있었는데 무심코 다가가던 우리는 혼비백산하고 물러나왔습니다. 비바람에 낡아서 인형의 얼굴 표정이 아주 기괴하게 변해있었거든요. 친구도 많이 놀랐나 봅니다. 얼른 밖으로 나가자고 나를 재촉했습니다.

친구 아들도 느꼈나 봅니다. 서너번 레슨을 받던 친구 아들은 그 집이 무섭다며 죽어도 안 가려해서 그만 두었답니다. 나중에 그 집이 신문에 크게 났습니다. 한밤중에 불이 났는데 주인 여자가 대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타 죽었다고.

한국에서 30년 넘게 부동산업을 하는 친구가 그럽디다. 발을 디디는 순간, 아, 안 되겠구나하는 느낌이 생기는 집이 있다고. 유난히 음습하고 음산하고 어두운 느낌의 집. 그런 집은 아무리 싸게 내놓아도 잘 팔리지 않고 팔렸다해도 주인들이 오래 안 살고 다시 매물로 내놓는답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주인을 못찾고 비워놓았다가 폐가가 되고 마는 집이 더러 있대요.

이 세상에는 보지 않고는 겪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 경험을 나누는 사람들을 면박주고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내가 보지 않았다고 해서 겪지 않았다고 해서 다 허구는 아니니까요.




- 지난 해 성탄절 무렵, 한 독자님이 손수 만들었다는 이 하트를 참기름 듬뿍 발라 구워낸 김과 함께보내주셨습니다. 김은 주위분들과 냠냠 맛있게 나누어 먹고 하트는 출입문에 달았습니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그 독자님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금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