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 중앙일보 칼럼을 읽고 팬레터를 보내오던 한 할배가 있었어요. 그 할배가 편지에서 말했습니다. 이계숙 씨는 세상만사를 글로 다 승화해버리니까 속이 늘 후련하겠어요. 그렇습니다. 맘 터놓고 대화할 대상이 없는 이민 생활,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글로 풀어내서 나는 가슴에 쌓이는 게 없는 편입니다. 지난 번 집터 이야기들도 그렇지요. 아무 이유없이 오싹한 집에 관한 소재는 지인들과 대화거리로 맞지 않습니다. 내 주위에는 모두 나이가 지긋해서 앉았다하면 한국 정치 얘기만 하는 사람들 아니면 먹고 살기 바빠서 정신없이 뛰는 사람들 뿐입니다. 그들은 한가하게 그런 귀신 이야기를 나눌 만한 시간적, 정서적인 여유가 없지요. 또한 누구나 다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혼자 가지고 있던 ‘사건’들이었는데 글로 쓰고 나니 얼마나 개운하던지요.

그런데 글이 길어져서 못다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지난 번 첫 번째, 두 번째 이야기의 후속도 있습니다. 못다한 이야기 중 하나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가끔 내 글에 등장하던 솜씨 좋은 지인. 머리도 잘하고 음식도 잘하고 바느질도 잘하는 팔방미인의. 나는 모든 면에서 젬병이라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요. 이를 테면 그녀로부터 음식을 사먹고 파마를 하고 바느질거리를 갖다 맡기고.

그녀는 아주 낡은 집에 세를 살았습니다. 한때 식당도 크게 운영하면서 잘 나갔었는데 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살던 집을 팔아 나누고 급하게 세를 얻어 나온 거지요. 그 집이 그렇게 음침하고 으시시했습니다. 무서운 집의 공통점이 하늘이 잘 안 보일 만큼 육중한 고목이 앞 뒤로 포진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집도 족히 백년은 넘었을 큰 옥나무의 이파리가 온집안을 다 덮을 듯 했어요. 이상하게 그집만 가면 머리도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요. 맛있게 잘 먹은 음식이 탈이 나는 것입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늘 한기가 들면서 등이 섬뜩하고. 그래서 가기가 싫은 겁니다. 나중엔 볼일이 있어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문 앞에서 잠깐 해결하고 돌아오고.

몇년 후, 그녀가 그집에서 이사를 나왔습니다. 혼자 사는 외로움에 견디다 못해 셀터에서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다 길렀는데 집 주인이 그 사실을 알고 집을 비우라고 종용한 것입니다. 다행히 그녀는 그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다 다시 집을 얻었습니다. 세는 몇 백불 더 비싸다지만 창문이 많아 환해서 좋더군요.

어느날, 새 집에 놀러갔는데 그녀가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어요. 예전 그 집에서 매일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렸다는 사실을. 또한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에 가봐도 이유를 알 수 없다하고 항상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요. 몸이 천근만근이라 아침에 일어나는 게 큰일 일 정도였답니다.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있어도 어디서 찬바람이 들어오는 것처럼 늘 한기가 들고. 강아지가 허공을 보면서 끊임없이 짖어대고. 아는 사람에게 말했더니 집터가 안 좋은 것같다며 집 구석구석마다 소금을 뿌려놓으라고 했답니다. 그 말에 따라 소금을 뿌렸는데도 이상한 증세가 가시지 않았는데 새 집으로 이사오고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없어졌답니다. 이혼하면서 하도 속을 끓이고 신경을 많이 써서 몸에 그런 증상이 생긴 줄 알고 약만 주야장천 먹었는데 알고봤더니 집이 문제였다고.

예, 집이 문제인 경우가 있습니다. 독자님들께서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오래전에 썼던 내 친구 호찬이 집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축구도 잘하고 등산도 잘하던 호찬이. 어느날 갑자기 큰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상태로 오랜 세월 누워만 있게 되었는데요. 24시간 누워서 유튜브로 온갖 프로그램을 섭렵하다 보니 풍수지리에 능통하게 됐답니다. 호찬이가 그랬습니다. 자기 집이 문제라서 그런 사고를 당한 것같다고. 호찬이 말에 의하면 풍수지리에서 최악의 경우가 현관문과 화장실이 직통으로 마주하는 집이랍니다. 호찬이의 집이 그렇게 생겼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화장실 문이 보였어요. 그.리.고! 지금은 시체 안치소가 되어버린 예전 우리 부모집도! 호찬이의 말을 듣고 얼마나 무섭던지요. 그 집에서 아버지가 일흔에, 엄마가 예순도 안 된 나이에, 그리고 동생이 서른 셋에 죽었습니다.

그런 경우, 집 구조를 통째로 바쑬 수는 없는 법. 흉액을 방지하는 방법이 있답니다. 화장실 문에 소리나는 종을 걸어 놓거나 큰 잎사귀의 화분을 화장실 문 앞에 놓아서(걸리적거리긴 하겠지만)나쁜 기운을 중화시키라고 합니다.

현관 들어서자 마자 큰 거울이 있는 집도 대문과 화장실이 맞통하는 집 만큼 안 좋다고 하던데 내가 아는 한 집이 그렇습니다. 현관문 앞이 벽인데 그 벽전체가 붙박이 거울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집 식구들 지독히도 싸웁디다. 부부가, 아빠와 딸이, 자매들끼리, 경찰이 들이닥칠 정도로 싸워대요. 딸들이 독립하자 막내 아들과 엄마가 또 싸워대는데 어떤 땐 칼부림까지 납니다. 저러다가 큰일 나지 싶었을 정도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집안 분위기가 늘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고 벽에 거울이 영구적으로 붙어있는 상태라 어찌할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괜히 거울이 어쩌고 언급했다간 긁어 부스럼이 될까봐 입 다물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집 여자도 그 사실을 어디서 들었나봐요. 거울 앞에다가 잎이 큰 화분을 갖다놨다고 하더군요.

지난 회 이야기가 길어져서 첫 번째 사례의 부부에 대해 다 못썼습니다. 외로움 때문인지 집터가 안 좋은 걸 느껴서 무서워서인지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러들였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도 무섭다며 초대에 응하지 않자 그 집을 팔고 다른 주로 떠났습니다. 방이 일곱개인가 여덟개인가로 많아서 나중에 은퇴하면 양로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그 집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두 번째 할매도 그집에서 걸핏하면 넘어져서 갈비뼈가 부러지고 미끄러져서 허리를 다치고 팔이 부러지는 등 병원신세를 지더니 어느날 그 집을 팔고 아들네로 떠났습니다. 백인 부부가 그 집을 샀다고 하던데 지난 5,6년 동안 매일 그 집앞을 지나쳤었지만 한 번도 얼굴을 못봤습니다. 날짜 맞춰 쓰레기통이 내어져 있는 것보면 누가 살긴 사는 것같은데 밤에 불도 안 켜져있고 앞뜰도 생전 관리를 안 합니다. 잔디와 화초들이 웃자라서 완전 폐허상태. 그래서 그 집앞을 지나칠 때마다 오싹하고 무서워서 걸음을 빨리하게 됩니다.

집. 우리의 재산목록 1호인 집. 한국이나 미국이나 내 집만 소유했다해도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었다고 말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집에서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고 휴식을 취할 수 없다면 그만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팔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말입니다. 이럴 때는 환경을 바꾸면 됩니다. 위에 말했듯 이상한 기분이 드는 집의 공통점이 앞 뒤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나무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인데 뽑아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가지를 좀 쳐내고요. 켜켜히 쌓여있는 잡동사니들을 치우고 집안을 산뜻하게 정리정돈하고요. 또한 밤에는 전기세 생각하지 말고 전등을 켜서 구석구석 집을 환하게 만들기만 해도 분위기가 좀 바뀔 겁니다. 아니면 이것저것 다 미신이다하고 담대하게 대처하든지.

언제 한 번 말했지만 우리집에는 거울이 많습니다. 전신거울, 벽거울 등 5,60개는 족히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집에 걸린 많은 거울도 풍수지리학에는 안 좋은 걸로 나와있습니다만 개의치 않습니다. 나만 좋으면 되니까. 나는 우리집이 제일 좋고 편안합니다. 가끔 밤에 잠 안 와서 집안을 서성거리다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섬��할 때가 있는데요. 그런 경우, 절대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산발한 머리, 퀭한 눈, 해골같이 홀쭉한 볼 등, 못생긴 내 얼굴에 놀라는 거지. 초자연적인 이야기에 흥미가 있지만 두려워하지는 않거든요. 물론 휘둘리지도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 봄을 맞아 울긋불긋 꽃의 향연이 펼쳐진 우리집 앞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