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도 남편은 집에 없다.

금요일 오후에 떠난 그는 일요일 밤 늦게나 돌아 온다.

남편은 지난 주말에도, 지지난 주말에도 집을 비웠었다.

이렇게 그가 주말마다 집을 비우는 이유는 바로 금(金)을 캐는 작업때문이다.

깊은 산속 계곡의 바위 밑을 들치고 겹겹의 세월로 생성되어 숨어 있는 금을 채취하러 다니는 게 그의 취미인 것이다.

그의 금 캐는 작업은 날씨가 따뜻해지는 4월부터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는 10월 말까지 계속 된다. 그래서 나는 6개월 간은 주말과부 신세가 되어야 한다.

이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모두 한 마디 씩 한다.

"둘이 직장생활해서 벌지, 남편이 금 캐서 또 돈 벌지, 도대체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쌓아두나 그래? "

금 캐기 작업에 들어가는 그 많은 경비는 어쩌고.

그렇다고 많이 캐어 오기만 한다면 내가 말을 안한다. 번번히 헛탕이고 어쩌다가 '심봤다' 를 해봤자 손톱만한 조각 두어개로 지난 몇 년간 캔 것을 총 합쳐 봐야 겨우 몇 천불어치가 될까말까다.

그런데 그동안 들어간 경비는 거의 몇만불이 넘는다. 도구 사야지, 먹어야지, 호텔에서 자야지, 기름값 들여 운전해 가야지....

아무리 계산해 봐도 밑지는 장사가 뻔하지만 워낙 좋아라 하니 ' 에고, 돈 안드는 취미생활이 어딨노' 하고 그냥 내버려 둔다. 취미생활도 근력있을 때 해야지 나이들면 하라고 등 떠밀어도 못 하겠지...

그런데 정작 남편에 대해 걱정을 하는 이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다.

어느날 K씨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은밀하게 물었다.

"혹시 당신 남편 금 캐는 작업말고 다른 작업하러 다니는 것 아냐?"

" ? "

K씨의 말인즉 남편이 나 몰래 어디로 바람을 피우러 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매 주말마다 집을 비우는 게 아무래도 수상해. 아무리 금 캐는 일에 미쳤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단 한 주일도 빼놓지 않고 매 주 가냐고."

내가 기가 막혀 허허 웃었더니 K씨는 한수 더 떴다.

"지금은 어쩌면 아닐지 모르지만 남자를 혼자 내돌리면 언젠가는 탈이 나게 되어 있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 몰라? 가능하면 꼭 같이 따라 다녀. 아예 처음부터 딴 생각 할 기회를 철저히 봉쇄해 버리라구. "

그렇쟎아도 강아지랑 같이 남편의 금 캐는 길에 딱 한번 동행해 본 적 있다.

도대체 금을 찾는 일이 얼마나 재밌고 신나는 일이기에 그렇게 정신없이 빠져 드나 싶어서 따라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고 남이 하는 작업을 보고만 있는 일이 그렇게 무료하고 따분한 지 몰랐다. 심심함을 대비해 책이랑 신문을 한 보따리 가져갔음데도 불구하고 깊은 산속에서 한 나절을 보낸다는 것은 주리가 틀릴만큼 큰 고역이었다.

"화장실까지 쫒아다니며 감시해도 바람 피울 위인은 피웁디다.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다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고 양심에 맡길 일이지."

신뢰와 믿음이 결혼생활의 가장 기본일진대 상대를 믿지 못해 일일이 쫒아다녀야 할 정도라면 그 결혼은 일찌감치 막 내려야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아는 어떤 여자는 남편을 얼마나 믿지 못하고 질투가 심했던지 여자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나오는 미인대회 프로그램도 못보게 했단다.

텔레비젼 프로그램은 텔레비젼 프로그램일 뿐 왜 그게 질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나는 이해가 안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않아 그 결혼은 깨어지고 말았다.

강짜 심한 아내에 질린 남자가 착하고 다소곳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최근 이 지역에서는 30년 이상의 결혼생활을 접고 이혼하는 세 쌍의 부부가 한창 한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 세 쌍의 이혼사유도 다 배우자의 바람때문이란다.

특히 그 중 한 쌍은 2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착실하게 한 부부로서 사업이나 가정도 꽤 안정궤도에 올라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부인이 울고불면서 지난 20년 동안 같이 보낸 세월을 봐서라도, 아이들을 봐서라도 마음을 바꾸어 달라고 사정을 했는데도 한번 다른 여자에게 빠진 남편의 마음이 돌아 서지 않는 모양이라고 사람들이 수군댔다.

몇 년 전인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그 남편되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잠깐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주제가 애완동물이었는가 그랬다.

그가 밤늦게 집에 들어 가면(왜 늦게 들어간다고 했는 지는 잊어 버렸다.)부인도 아이들도 다 불 끄고 자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만 유일하게 깨어서 꼬리를 흔들며 그를 반갑게 맞아 준다나.

그래서 그는 ' 집에서 나를 반겨주는 이는 너 뿐이구나 ' 면서 강아지를 안고 그냥 거실에서 잔다고 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하던 그의 표정이 얼마나 쓸쓸해 보이던지.

이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쓸쓸하던 표정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났다.

그는 왜 바람이 났을까.

생활력 강하고 살림 잘하고 예쁘기까지한 부인에게서 채울 수 없던 빈자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늘, 봄 날씨 답지않게 바람이 몹시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