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나처럼 볼품 없는 외모를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

직장에 가려고 옷을 차려 입을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다. 1미터 50센티가 겨우 될까말까한 작은 키에 짧은 다리, 거기다 남자처럼 넓은 어깨와 통나무 허리.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그 어느 구석 제대로 하나 갖추어진 게 없다. 그나마 그 중에서 다리 하나는 그런대로 봐 줄만 했었는데(짧긴 하지만 쭉 곧아서) 하도 운동을 많이 해서인지 근육이 붙어 그마저 보기싫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남들은 내가 이런 저주받은 몸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쪽같이 모르고 있다. 결점은 최대한 가리고 장점은 많이 나타내는(장점은 아예 없는 편이지만)옷으로 잘 갖추어 입기 때문이다.

차리고 밖에 나가면 옷 잘 입는다는 찬사도 가끔 듣곤 하는데 내 자신이 생각해도 옷에 대한 센스는 좀 있는 편인 것 같다. 휴우, 다행스럽기도 해라. 이 몸매와 외모에 옷에 대한 감각까지 없었으면 어쩔뻔 했노. 진짜 안도의 숨이 저절로 쉬어진다.

그런데 내가 입는 옷의 반 이상은 거의 다 남들이 입던 옷들 즉, 헌옷들이다.

그 중에는 지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옷들도 있고 중고품 가게에서 구입한 것들도 있으며 '벼룩 시장'에서 사들인 헌옷도 꽤 된다. 또한 세탁소 하는 사람들로부터 얻은 옷들도 있다. 특히 세탁소하는 사람들로부터 얻은 옷들이 유난히 많은 것은 내 주위에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까닭이다.

세탁소에서 맡은 옷들은 일정한 기간이 지나도록 찾아가지 않으면 주인마음대로 처분할 수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옷들을 다 얻은 것이다.

나랑 친한 O씨의 세탁소는 우리집에서 한참 떨어진 락클린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다.

거기까지 운전해 가려면 얻어오는 옷값보다 기름값이 더 들 때가 많지만 옷이 모아졌다는 전화를 받으면 먼길을 마다하고 거기까지 부리나케 올라간다. 그리고는 차 트렁크 가득 옷을 얻어 오는 것이다.

O씨는 옷을 줄 때마다 '먹고 살만 하면서 갖은 궁상은 혼자 다 떤다'고 내게 핀잔을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O씨는 모른다. 방안 가득 늘어진 옷더미에서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찾아내었을 때, 그리고 그 옷이 뜻하지 않게도 내 한 달 월급을 다 털어도 못 사는 비싼 유명 메이커였을 때의 기쁨을 말이다. 그 기쁨은 금노다지를 캐는 것과 견줄 바가 아니게 크다.

이렇듯 얻어다 입기도 잘 하지만 나는 또 남에게 주기도 잘 준다. 입다가 싫증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옷들은 가차없이 남들에게 주어버린다. 다행히 내 주위에는 남이 입던 옷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없는 편이라 서로 열심히들 바꾸어 입는다.

이렇듯 옷들을 돌려입으니 웃지못할 일도 가끔은 벌어진다. 내가 K씨에게 준 옷을 한참 지나서 보면 L씨가 입고 있기도 하고 Y씨가 K씨에게 준 옷이 내 옷장에 걸려 있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는 한국에서 새로 사온 까만색 블라우스 한 벌을 K씨에게 준 일이 있었다.

예뻐서 사긴했지만 키 작은 내가 소화하기에는 좀 무리일 것 같아서. 예상대로 그 옷은 K씨에게 맞춤복처럼 기막히게 잘 어울렸다. 순간 아까운 생각이 나서 도로 달라고 할까하다가 차마 말은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K씨는 이 옷을 두어번밖에 못입고 S씨에게 주고 말았단다. K씨가 입을 걸 보고는 S씨가 탐을 낸 것이다.

몇 년 뒤, 그 옷은 L씨가 옷장정리한다며 내게 넘겨 준 한 보따리의 헌옷더미에서 발견되었다. 돌고 돌아서 결국은 나 한테까지 도로 온 것이다.

그 옷은 지금 내가 잘 입고 다닌다. 누가 예쁘다고 한마디 해오면 아,이 옷이요? 사연이 많은 옷이지요, 하고 너스레를 떨어가며.

최근 미장원하는 L씨의 남편이 세탁소를 새로 열었다. L씨에게 미리 단단히 다짐을 해둔 것은 물론이다.

"손님들 안 찾아가는 옷들 중에 괜찮은 것 있으면 꼭 챙겨놓는 것 잊지 마슈?"

혹자는 남이 입던 옷을, 아무리 빨았다지만 남의 살이 닿아서 체취가 어딘가에 조금은 남아 있을 옷을 입는 게 진짜 아무렇지도 않느냐고 묻는다.

"아는 사람들 옷이야 그렇다치고 생판 모르는 사람이 입던 옷을 어떻게 입어? 죽은 사람 옷일지도 모르쟎아. 또 그 옷 주인이 어떤 피부병을 가지고 있을지 생각해 봤어? 거 생각만 해도 찝찝하네."

중고가게에서 냄새가 펄펄 나는 헌옷을 사면서도 한 번도 찝찝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내가 무딘편인가.

불경기를 맞아 한푼이라는 아껴보려는 사람들로 미국내 헌옷시장이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고 있다는 기사를 최근 신문에서 읽었다. 전국 2만 5천개의 헌옷매장이 지난 10년간 매년 5%씩 급성장하고 있단다.

누가 뭐라고 하던 나의 헌옷 애용도 앞으로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