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방에 있는데 거실의 남편이 황급히 나를 불렀다.

뭔 큰일이나 났나 싶어 부리나케 나가봤더니 텔레비젼 화면을 가리킨다. 거기엔 수술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종아리에 임의로 이물질을 넣는 수술장면.

그러니까 젓가락처럼 마른 다리에 실리콘 같은 물질을 넣어 근육이 있어 보이게 하는 시술이란다.

것 봐,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남편이 말했다.

"내가 그랬지? 근육질 다리가 더 건강하고 아름다와 보인다고"

매일이다시피 조깅을 하다보니 다리가, 특히 종아리가 점점 굵어졌다. 그렇잖아도 짤막한 다리에 근육이 붙으니 눈뜨고는 볼수 없게 되었다. 소도 때려잡을 수 있을 만큼 우람해지고 울퉁불퉁해진 것이다. 이게 보통 고민이 되는 게 아니었다.

명색이 내가 여잔데 이런 무쇠같은 다리로 남부끄러워 어떻게 나다닐 수 있겠나….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마징가 제트같이 튼실해지는 다리때문에 조깅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남편은 거짓말 안 보태고 한 길 정도를 펄쩍 뛰었다.

"그 근육이 하루이틀 운동해서 붙는 게 아니거든. 자기관리를 열심히 했다는 훈장같은 건데 그걸 왜 결점이라 생각하지? 새다리 같이 비쩍 마른 다리보다 훨씬 보기가 좋구만……"

참 재미있는 것이 미국 사람들 중 남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이 무쇠다리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꽤 많으니까. 어쩌다 직장에 짧은 치마를 입고 가는 날은 반드시 다리 멋있다는 칭찬을 듣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땐 진짜 그런가 해서 기분이 좋다. 그러다가 막상 거울 앞에 서서 코끼리같은 다리를 확인하면 다시 한숨이 나오고 마는 것이다.

미국와서 느끼는 것이 동양인과 서양인이 보는 미의 관점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요즘 세대는 많이 변했다지만 아직도 한국인이 보는 미인의 기준은 갸늘프고 여리여리한 데 있는 것 같다. 소설이나 영화의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창백한 얼굴에 코스모스처럼 약하고 갸느린 몸매의 소유자들 아닌가.

한국의 성형수술에 관한 광고를 봐도 그렇다.

광대뼈 나온 얼굴이나 사각형 얼굴을 계란형으로 만들어 준다. 낮은 코를 클레오페트라같이 높혀 준다. 외커풀을 쌍커풀로 만들어 준다. 찢어진 눈을 화등잔같이 크게 해준다. 검은 피부를 하얗게 탈색해 준다 등등.

미인은 어떻게 생겨야 한다는 일정한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추어 환골탈태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 광고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젠장, 나 같은 사람은 집 한채를 팔아도 모자라겠네…. '

미씨 사이트 ‘연예방’에 자주 올라오는 글이 있다. 탤런트 누구누구 중 누가 더 예뻐요?

그러면 누구는 항상 입을 헤 벌리고 있어 별로니, 누구는 얌체상이라서 싫니, 누구는 다 화장발이니하는 갑론을박의 댓글이 금방 수십개 붙는다. 그러다가 자기랑 의견이 맞지 않으면 피터지게 싸우기도 한다.

개인이 선호하는 미인의 기준이 각각 다를진데, 그러니까 미를 보는 관점은 주관적일진데 그런 글들이 끊이지 않고 올라오고 거기에 또 목숨걸고 의견을 표출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나는 그림같이 예쁜 얼굴보다는 개성있는, 그러니까 남들이 약간 못생겼다고 하는 얼굴이 더 마음에 든다. 이를테면 얼굴형도 계란형보다는 사각인 게  좋고 쌍커풀있는 큰 눈보다는 얇은 눈이 더 좋고 큰 입술이 더 좋다. 엔젤리나 졸리같은 얼굴이 내생에 태어나면 갖고 싶은 얼굴인 것이다. 그런데 내 지인은 너무 '센 얼굴'이라며 고개를 흔든다. 그러면서 말한다.

"미인은 뭐라해도 김태희, 김희선이지..."

나는 지금껏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뚜렷한 주관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세월이 가니까, 나이가 드니까 이게 변한다. 그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던 ‘종아리 축소 수술 광고’에 눈이 가는 걸 보면.

남편이 어떤 말로 날 현혹하든 말든 나는 가는 종아리가 갖고 싶다. 한국인의 미의 관점에 맞는 미끈하고 날씬한 종아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