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날 보고 스타일이 멋있다고 한다.

옷 입는 감각이 있는데다 몸매가 바쳐주기(!) 때문에 뭘 입어도 맵시가 난다고 한다. 실제로 신경 좀 써서 차리고 나가면 많은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듣기는 한다.

그러나, 그러나 사람들은 모른다.
실제의 내 몸매가 얼마나 형편없고 보잘 것 없는가를. 일단 나는 키가 작다. 다리가 짧으며 어깨도 넓다. 또한 뼈대가 굵어서 자칫 옷을 잘못입으면 마징가 제트가 따로 없다. 갑옷으로 무장한 것 같이 우람해 보이는 것이다. 애써 장점을 찾자면 똥배가 없다는 것.

예전엔 비록 짧긴 하지만 다리가 쪽 곧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십몇년에 걸친 운동으로 근육이 붙어 울퉁불퉁하게 변해버렸다.

이런 저주받은 체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스타일 좋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몸의 결점을 교묘하게 가리는 옷을 잘 골라 입기 때문이다. 나는 내 체형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바로 거울 덕분이다.

우리 집에는 거울이 많다.

전신을 비출 수 있는 대형 거울만도 일곱 개이고 액자를 대신해 벽에 걸린 크고 작은 거울, 그리고 목욕탕 거울을 합치면 마흔 개가 넘는다. 만약 지진이라도 나면 우리 집은 그날로 절단날 거라고 남편은 안 해도 될 걱정을 하지만 나는 지금도 쇼핑 가면 거울 섹션은 빠트리지 않고 들른다. 그리고 맘에 꼭 드는 거울이 있으면 일단 사고 본다. 이제는 더 이상 둘 곳도, 걸 때도 없지만.

우리 집에 와 본 사람들은 실제 스퀘어 피트보다 훨씬 넓은 것 같다고 감탄들을 하는데 이 역시 거울 덕이다. 거울은 실내를 더 크고 넓게, 그리고 밝게 하는 착시효과가 있다. 모델 하우스에 거울이 많은 건 다 그런 이유에서다.

집에 거울이 많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햇볕 좋은 대낮에 거울을 들여다 봤다간 우울증 걸리기 딱 알맞으니까.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하는 거미줄 같은 주름살마저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형광등 불빛이나 흐린 날은 잘 안 보이던 온갖 결점들이 선명하게 드러난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보면 정말이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리고 새벽까지 잠 안 와서 거실을 서성거리다가 거울에 비친 나에 기함하기도 여러번이다. 밖에 켜진 가로등의 어슴프레한 불빛이 반사된 거울 속의 내 모습은 귀신이 따로 없다. 풀어헤친 머리에 잠못 자서 퀭한 눈의 핼쓱한 여자. 아이고, 꿈에 다시 볼까 무섭다.

얼마 전에는 K씨로부터 배꼽을 잡을 만큼 우스운 이야기를 들었다. 거울에 대한 이야기이다.

K씨는 최근 집을 팔았다.

운 좋게도 한 달도 안되어 내놓았던 집을 판 것이다. 집은 팔렸지만 마음에 쏙 드는 집이 없어 우선 렌트를 몇 달 살기로 결정했다는 K씨.

렌트한 집으로 이사 간 첫 날, 샤워를 마치고 나오다가 K씨는 엄마야, 하고 그 자리서 주저앉을 뻔 했단다. 무심히 쳐다본 목욕탕의 대형 거울 속에 웬 고릴라가 한 마리 서 있더라는 것이다. 그 고릴라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고는 밤잠을 설쳤다는 K씨. 물론 크게 자책하고 낙심한 마음에서다. 예전 집에는 대형 거울이 없었단다. 따라서 자신의 전신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으니 그냥저냥 쓸만한가 보다, 먹을 것 실컷 먹으며 안심하고 살았다는 K씨다.

"내 자신이 그렇게 뚱뚱한 걸 예전엔 미처 몰랐었어. 그날 후 부터는 샤워하고 나오면서 일부러 거울쪽을 외면해. 거울에 비친 내 몸매를 확인할 때마다 괴로워서 미치니까. 어쨌든 이번에 나의 게으름을 크게 반성했네. 지금부터라도 운동을 하든 밥을 굶든 살빼기 작전에 돌입해야겠어....."

예뻐지고 싶다면, 살을 빼고 싶다면 거울 앞에 자주 서서 끊임없이 자극받아야 한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계모처럼 거울과 친해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 가꾸기'에 도전하고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