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천원 커피'에 설 땅 잃은 커피믹스’란 제목의 한국발 인터넷 기사를 읽었다. 천원대 저가 원두커피가 전문점뿐 아니라 편의점으로도 확산되며 인기를 끌고 있고, 스틱형 인스턴트 원두커피까지 늘어나면서 커피믹스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가보니까 정말 그랬다. 친구집에서도, 동생집에서도, 정말로 웬만한 집에서는 모두 원두 커피를 내려마시고 있었다. 몸에 안 좋다며 설탕과 프림을 일절 넣지 않은 ‘아메리칸 스타일’로. 

미국 온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아메리칸 커피 스타일에 적응을 못 하고 있다. 커피가 몸을 차게 한대서 요즘 좀 자제하고 있지만  예전엔 뜨거운 물에  탄 커피믹스 한 잔이 내 삶의 제일 큰 즐거움이었다. 물론 지금도 피치못할 자리에서 커피를 마신다면 나는 무조건 커피믹스다. 설탕 듬뿍, 프림 듬뿍 들어간 부옇고 걸쭉한 커피믹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 역시 입맛이 같다. 모두 나이많은 할매, 할배들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커피, 하면 설탕이랑 프림 다 들어간 커피믹스이지 밍밍하고 싱거운 아메리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커피믹스를 기피하고 있다니 재밌는 일이다.

지난 해 한국 방문으로 다시 느낀 게 있다. 한국 사는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세련되어지고 발전되어가는데 정작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같은 자리에서 머물고 있거나 점점 ‘퇴화’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여기 한국식당 메뉴만 봐도 우리들이 얼마나 한국보다 뒤떨어졌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식당들 메뉴가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인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다.  ‘갈비’ ‘고등어 구이’ ‘잡채’등.  어느 식당엘 가도 거의 비슷하다. 전혀 변함이 없다. 기껏해야  오징어랑 삼겹살을 섞은 ‘오삼불고기’ 정도가 새로운 메뉴다.

반면 한국은 미국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수십, 수백가지의 새롭고 특별한 음식들이 앞 다투어 개발되고 금방금방 전국으로 빠르게 퍼지는 것 같다. 주말이 되면 새로운 맛을 찾는 ‘맛집 기행’차량들로 전국의 도로가 미어터진다고한다.

그렇게 한국은 맛있는 것 천지인데 왜 내 입맛은 저렴하기 짝이 없는 것일까. 5일밖엔 안 되는 짧은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동생들이 나름대로  대접한다고 나를 식당 서너 군데로 데리고 갔다.그런데 썩 맛있다고 느껴지는 음식들이 없는 것이다.

그 고장에서 제일 잘한다는 집의 ‘민물장어’도 전혀 입에 맞지 않았다. 일 인당 몇 만원이라는 소리에 놀라 몇 젓가락 집어 먹긴 했지만. 방목해서 길렀다는 오리요리 또한 별로였다. 오리가 몸에 좋으니 제발 많이 먹으라고 옆에서 강권을 했지만  내입에는 영 아니었다. 또한  전국적으로 유명하대서  잔뜩 기대하고  두 시간 가까이 운전해 갔던 ‘언양 불고기’도 이름값을 전혀 못 했다. 음식앞에서 깨작거리는 나를 보고 동생이 말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입안이 깔깔해서일거야...”

아니다.  위에 쓴대로  내 입맛이 저렴하고 촌스러워서 그렇지. 두메산골 나물 캐는 할매같이 생긴 모습대로 말이지.

사실 내가 진짜 좀 먹어보고 싶었던 것은  장어가 아니라, 오리고기가 아니라 떡볶이와 찐득한 흑설탕이 흘러나오는 호떡과 강남콩 숭숭 넣고 찐 ‘술떡’과 어릴 때의 특별식이었던 짜장면이었다.  옛날에 한국에 살 때 먹었던 바로 그 맛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먹으러 가자고 말하지 못했다.

워낙 빠듯한 일정이라  먹을 시간이 없었었기도 했지만  ‘미국촌놈’ 이라 놀리는 그들에게 또 하나의 놀림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다는 게  또다른 솔직한 이유였다. 1,2년 사이에도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바뀌어있는 새로운  시설과 문물에  놀라고, 감탄하고,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그들은 의아해했다.

“아니, 진짜로 세계 최고 선진국인 미국에서 온 사람 맞아?”

호떡과 술빵을 먹고싶다하면 분명히 그들은 또 그럴 것이다.

“요즘 세상에 그런 것들이 음식축에나 끼나?  세상에 널린 게 맛있는 건데 공짜로 줘도 안 먹을 그런 것들을 왜 찾아?”

음식은 그렇다치고  풍광 빼어난 산 속에 식당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것이 더 신경이 쓰이고 마음에 걸렸던 나였다. 조금만 경치가  멋지다 싶은 곳에는 어김없이 온갖 종류의 식당들이 울긋불긋한 간판들을 달고 빼곡히 들어차 있다. 식당에서 생성된 별별 더럽고 독한  물질들이 섞인 폐수들은 어디로 방류가 될까. 얼음처럼 차갑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바로 흘려버리는 건 아닐까. 경치만 구경하면 되지  왜 우리 한국사람들은 꼭 뭘 먹어야만 할까. 그것도 불과 물을 많이 쓰지 않는 음식들이 아니라 반드시 지지고 볶고 굽고 끓이고 고아야하는 음식들. 

기암괴석과 나무와 풀이 장관을 이루는 계곡 바로 옆에  줄지어 서 있는 카페와 식당들을 보면서 한탄이 저절로 나왔다.  저렇게 아름다운 곳에 왜 인공 건축물을 짓게 허가를 내어 주었을꼬. 계곡 옆에 식당이라니, 미국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어쨌든 자연경관 하나는 비교적 태고적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미국이다.  한국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건 그것밖에 없다.  내세울 게 그것밖에 없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그 애기를  했더니 누가 핀잔을 주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 것 몰라? 일단 먹고 배가 불러야 경치 감상을 하지”

참 재미있는 게 한국은 음식점도 유행을 탄다는 것이다. 작년에 멀쩡하게 영업을 하던 식당들이 올해엔 다른 간판을 달고 있다. 한국인들이 싫증을 잘 내어서 그런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식당들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다.

발전되고 개발되는 게 어디 음식뿐이랴. 한국은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나라였다.  파헤치고 세우고 뚫고 없애고 메우면서 지형이  매일이다시피 변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가 어딘지 짐작도 못할 만큼.

동생가족들과 옛날 집터에 가보았는데 어릴 때 물장구치고 놀던 강과 산과 들판은 흔적도 없었다. 대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한 두시간내에 도착할 수 있다는 명목아래 산을 관통하고 강을 가로지른 거대한 고속도로가 생겨나 있었다. 내 기억속의 고향 산천은 그야말로 기억속에서만 존재하는 곳이 된 것이다.

분초를 다투며 변해가는 한국, 내가 처음 발을 디딜 때나 30년이 가까운 지금이나 거의 똑같은 미국. 그쪽과 이쪽을 비교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대견함과 놀라움과 그리고 부러움이었다. 전쟁의 페허 위에 100년도 안 되는 급속한 세월안에 경제대국을 이루어낸 조국에 대한 대견함과 놀라움, 언제 우리는 한국의 편리한 생활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

오늘도 나는 기름칠 때가 되어서인지 뻑뻑한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어 현관문을 잠그면서 번호 몇 개만 가지고도  철컥 잠기고 열리던 한국의 현관문을 떠올린다. 약간의 배 아픔을 동반한 감정과 함께. 그렇다. 정직하게 말하자. 한국 생각하면 배가 좀 아프다. 심술이 난다.

내 아들 키는 늘상 그대로라 속상한데 갑자기 올려다 봐야할 정도로  훤칠해진 사촌의 아들을  보는 엄마의 심정이 이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