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사는 한 여성의 이메일을 받았다. 자기 소개부터 언제부터 내 글을 읽게됐는지, 왜 내 글을 좋아하는지까지 꽤 길게 쓴 편지였는데 중간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만약 작가님이 저랑 가까이 사시면 제가 만나러 가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새크라멘토라고, LA에서  80마일로 달려와도 6시간 이상은 걸리는 거리라고 답장하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내 형제와 부모 외엔 그 누구라도 시간 내 만날 생각을 하지 않던 나였다. 이 바쁜 세상에 피붙이도 아닌 사람을 만날 생각을 한다는 게 보통 정성가지고 되는 것인가.  그만큼 내 글을 좋아한다는 것아닌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말이다.

며칠전에는 남가주 플러튼에 산다는 한 여성이 쪽지를 보내왔다. 내 글에 늘 걷는 내용이 있더라면서 만약 집이 가까우면 같이 걷고 싶다고 했다. 봄이 되니 집에 있기 답답해서 밖에 나가고 싶은데 같이 할 사람이 없다면서. 나는 위와 같은 내용의 답장을 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햇수가 오래되면서, 특히 내용이 미주알고주알 내 신변잡기에 대한 게 주를 이루다보니 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친근한느낌을 가지나보다. 친숙한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사연을 담은 편지를 꽤 보내오는데 위에 소개한 두 여성처럼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날 만나고 싶어하는 독자들 대부분이  비행기를 타지않고는, 아주 큰 마음을 먹지않고는 도저히 올 수 없는 먼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아, 뉴욕, 아이다호, 플로리다 등. 내 동네 근처에 살면 내일이라도 당장 들릴 수도(40분 근처 거리에 사는 한 여성은  나랑 두어번 연락을 주고 받은 며칠 후 금방 놀러온 일도 있긴 했지만)있을 텐데 말이지. 자기 태어난 고향에서는 핍박받고 멸시 당했다는 예수처럼 이 근처에는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어쨌거나 내가 북가주, 그것도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한참 떨어진 구석데기에 산다고 밝히면 편지를 보내온 독자들은 무척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한다. 그러면서 신신당부한다. 숙식제공 다 할테니, 관광은 책임질테니 놀러오라고. 아니면 혹시라도 자기들 쪽으로 올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누차 밝혔다시피 나는 여행이라면 질색을 하기때문이다. 직장과 집만 왔다갔다하기에 차 마일리지가  1년에  3천마일밖에 안 올라가는 ‘집귀신’이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독자들에게 우리집에 놀러오라고 말해준다. 우리집이 ‘레이크 타호’ 가는 길목인 ‘50번’ 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인디언 말로 큰 물을 의미한다는 레이크 타호는 오리건의 ‘크레이터 호’ 다음으로 미국에서 두 번째 크고 깊은 호수라고한다. 해발이 높아 여름에도 서늘하며 특히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기에 스키타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곳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일생에 한번은 레이크 타호를 구경하러 갈 것이다. 그러니까  50번 고속도로를 지나갈 일이 생길 것이다. 그때 반드시 우리집에 들르라고 당부한다. 세 가지를 약속하면서.

하나는 내가 가장 잘 하는 월남국수를 맛볼 수 있을 거라는 것. 월남국수집 오픈하면 문전성시를 이룰 것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주위사람들에게 인기인 ‘이계숙표 월남국수’.

둘은 글에 수십번 쓴대로 우리집이 얼마나 정리정돈 잘 되어 있고 깨끗한지 확인할 수 있을 거라는 것. ‘백문이불여일견' 이라고 직접 와서 눈으로 보면 정리정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갈 수 있을 거라고.

마지막 셋은 역시 글에 누차 쓴대로 내가 얼마나 키 작고 못생기고 볼품없는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라는 것.
단순히 글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작가님’, ‘선생님’ 소리를 듣는데 나는 그런 호칭과는 절대로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준다. 겸손이 아니고 진짜다.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답답하고 어색한 이 기분을 단 한 사람에게라도 벗어내고 싶으니까.

위의 세 가지를 언급하면서 우리집 근처를 지나 갈 일 있으면 꼭 들리라고 당부한다. 독자들도 대답한다. 아암요. 여부가 있겠어요. 그쪽으로 갈 일 생기면 꼭꼭꼭 연락할께요...

이 글을 쓰면서 우리집이 여러모로 참 쓸만하다는생각을 했다. 다운타운까지  5분 거리에다 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어 누구나 쉽게 올 수 있는 위치의 우리집이. 아무리 나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해도 우리집이 고속도로랑 멀리 떨어져있거나 찾기 힘든 위치에 있다면  손쉽게 '오세요' 소리를 할 수 있겠나.
그래서 지인들과의 모임이 항상 우리집에서만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내가 요리도 못하고 요리하는 걸 싫어하니까 직접 자기들이 음식을해서 이고 지고 들고 오면서까지 우리집을 찾는다. 넓고 좋은 다른 이의 집도 많은데 모일 일이 생기면 내 의견은 물을 것도 없이 무조건 우리집으로만 우리집으로만 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온갖 상점들도 우리집 근처에 포진하고 있다. 코스트코를 비롯 홈디포, 타겟, 마샬, 로스, 월마트,펫스마트 등등  2,3분 거리 안에 웬만한 스토어는 다 있다.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는 것이다.
오, 가장 큰 장점은 한국마켓이 바로 옆에 있다는 거다. 이 지역에서 가장 대형마트인 ‘코리아나 플라자'가 우리집에서 차로 2분 거리다. 요리하다가 양념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길 때, 늦은 밤에 입이 출출할 때 입은 차림 그대로 쪼르르 달려 갈 수 있다. 얼마나 큰 플러스인가!

십 몇년 전, 이 지역의 한인 집 중 가장 크고 좋고  비싸다는 집을 구경한 일이 있다. 영화배우 에디 머피가 이웃해 산다는 신흥 부촌이었다. 보통집들처럼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고 깊은 숲속에  5리 가다 하나, 10리 가다 하나씩 외따로 지어진 집이었다.
근처에 인적이라고는 전혀 없어 무섭겠다 싶었는데 철통같은 보완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아예 봉쇄하는 그 집은 바로 궁전, 그 자체였다.  8천 스퀘어피트에 달하는 집 구석구석을 구경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으니까.
청소하는 사람, 음식하는 사람, 정원관리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우리같은 사람은 그저 줘도 관리비를 감당할 수 없을 꿈같은 집이었다. 남의 좋은 집 앞에서는 심술이 나서 배 아픈 증상이 생기는 나였지만 그 집의 규모와 위용에 놀라서 배 아픈 줄도 모를 정도였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에 대한 생각이 소박해진다. 예전에는 크고 멋진 집, 누가 봐도 와,하고 감탄할 수 있는 집에 살고 싶은 욕심이 하늘을 찔렀었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그저 햇볕 잘 들어 오고 상점들이 가까이 있어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손쉽게 아무때나 장바구니 들고 나갈 수 있는 집이면 최고다 싶다.
하나 더 보태자면 누구나 오다가다 들러 가볍게 차 한 잔 할 수 있고 냉장고뒤져 밥 한끼 뚝딱 만들어 같이 할 수 있을만큼 좋은 위치에 있는 집이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그런 집이 바로 우리집이다. 독자님들,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