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몰랐던  큰 신세계가 열렸네.  이제 금방 하루라도 없으면 못 살게 될 걸?!”

스마트폰에 중독된 사람들이 큰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현대사회에 나만은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으리라고,  끝까지 독야청청하리라고 고집을 피웠던 게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던 내가 남편의 강권에의해 할 수 없이 고집을 꺾게되었을 때  주위에서  하나같이 입을 모아 했던 말이었다. 이제 하루라도 없으면 허전해서 미치게 될 거라고. 노름보다, 술보다, 담배보다 더 강하게 중독될 거라고.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장담했었다. 물건에게든 사람에게든  별로 집착이 없는 성격이니 절대 그런 일은 거라고. 

3년이 되었다. 그들 말처럼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다. 나만은 다를 줄 알았는데 다르기는 개코가 달라. 매일 스마트폰과 '합체'해 산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쇼핑하러 나갈 때도 내 손에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처음에는, 그러니까 첫 몇 개월간은 있으나마나였다. 전화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지라 전화할 데도 없었고 올 데도 없었다. 어디다 던져두었는지 모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일년 열 두달가도 손 한번 댈 데 없던 집전화와는 달리 며칠에 한 번씩  건전지를 충전해야만하는 것도 얼마나  성가시고 번거롭던지.  충전시킬 때마다 남편한테 짜증을 부렸다. 괜히 쓸데없는  걸 사 안겨줘서 사람 귀찮게 한다고. 

그러다가 ‘카톡’ 이라는 것을 시작하게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몇십년 소식을 모르던 고향친구들과 연락이 오가게 된 것이다.  

그동안 소원했던 한풀이라도 하듯  날이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한국이나 여기에 무슨 사건사고가 나면 안부묻는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카톡이 오간다. 작년, 뷰(BUTTE) 카운티에 큰 산불이 났을 때는 내가 사는 지역과 불 난 곳이 차로 예닐곱 시간이나 떨어져 있다는 걸 알 리 없는 동생들과 한국친구들의  걱정을 담은 카톡을 받느라, 그리고 답장하느라  얼마나 바빴던지.

카톡으로인해  한국과 미국이라는  거리감이 거의 느껴지지가 않는다. 가만히 앉아서 실시간으로 그쪽과 이쪽  사정을 꿰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하루라도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지 않으면 허전해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집전화와 이메일만으로도  아무 불편함없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 스마트폰의 신속함과 편리함에  완전히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단단히 중독되고 만것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하더니 바로 내가 그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출근은 아홉시다. 여섯시 정도에 일어나면  출근시간 전의  아침시간이 널널했다. 글 쓰고 운동하고  남편 저녁밥 만들고 빨래하고 웬만한 집안일은 다 해놓아도 시간이 남았다.  

지난 달, 새 프로그램 트레이닝 받느라 일 주일을 여덟시에 출근해야 했다. 세상에, 고작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몸도 마음도 바빴을 뿐 아니라  그동안의 생활리듬이 다 헝클어지는 거였다. 

하루는 또 왜 그리 긴지. 시계를 열두 번도 더 봤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은 이렇지만 한달만 계속하면 금방 익숙해지고 말겠지. 아닌게아니라 사흘째 접어드니까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일 주일이 지나고 다시 아홉시에 출근하려니 뭐가 또 이상해졌다. 

지금은 완전히 예전의 내 페이스를 찾았지만 김유신 장군의 말(馬)처럼,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행동하는 로봇처럼 판에 박힌 일상을 좇던 내게 색다른 경험을 준  일 주일이었다.

활발하고 거침없는편인 내 성격을 보고 사람들은 짐작한다. 새 것에 대한 흥미가 강할 것 같다고. 그래서 뭐든 잘 도전할 거 같다고. 아프리카 탐험이라도 거뜬히 해 치울 것 같다고. 무슨 말씀을. 나같이 내 원(圓) 안에서만 뱅뱅 돌며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원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섭다.  새로운 걸 접하는 게 무섭다. 뭐든지 오래돼 익숙해지고 편해진 게 좋다.  집근처에 새 길이 개통돼도 죽으나 사나 예전 길로만 다니고 미장원도, 세탁소도, 마켓도 미국와서 첫 걸음을 디뎠던 데만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용한다. 일처리가 좀 미진할지라도 불평 안 한다. 딴 데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동네에 시설 좋은 새 미장원, 새 세탁소, 새 마켓이 문 열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구경 삼아서도  한 번 가보지 않는다. 

최근  '국민학교' 동창들의 밴드에 가입했다. 이름도 잊어버리고 얼굴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친구들이 거기 다 있었다. 친구들의 글에 댓글을 몇 개 달았더니 난리가 났다. 친구들 이름 뒤에 '씨'자를 붙였더니 거북하고 거리감든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같이 학교다닐 때는 욕도 하고 싸움도 하던 친구들이지만  몇 십년만에 대하게 된 머리 허연 아줌마들, 아저씨들을 철수야, 영희야 도저히 함부로 부를 수가 없어서였는데. 

일흔 넘은 할배들하고는 반말하고 '막 먹어서' 버르장머리 없다고 소문난 내가 동갑인 친구들 이름을 부르기 어렵다니 내가 생각해도 놀랍다. 아마 그들과는 아직  어려운관계라서 그럴 것이다. 곧 편하고 익숙해질 거고 그러고나면 철수야, 영희야 쉽게 부를 수 있겠지.

누가 그랬다. 눈만 마주치면 싸움나는 아내와 헤어지고 맘에 꼭 드는 여자 만나 다시 한번 행복하게 살아보는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행여 그런 기회가 생기더라도 사양하겠다고.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십니까, 취미는 무언가요, 하면서 모르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는 게, 예의 갖추어야 하고 비위 맞추어야하고 긴장해야 하는 게 이제 싫단다. 힘에 부칠 거란 생각이 든단다.

옆에서 양푼으로 밥 먹고 있는 아내가, 헝클어진 머리로 입 크게 벌려 하품하는 아내가 한심하고 밉살스러울 때도 있지만 어쨌든 그녀는 편하고 익숙한 사람이니까. 

그렇다. 새로운 것에 편해지고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