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다녀왔습니다. 뭐 특별한 일이 있어 갔다 온 건 아니고  미국생활이 너무 지겨워서 그냥. 친구들과 동생들이 보고싶어서 그냥.한국에 가면 반드시 만나는 친구가 서넛 있습니다. 내 글에  몇 번 등장한 적 있는 희주입니다. 희주는 결혼하고서도 다른지역으로 떠나지않고 고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셀폰이 없었을 때에도 희주와는 항상 끈이 이어져있었어요. 같은 장소, 같은 모습으로 항상 거기에 있었으니까요.또한 무당친구입니다. 무당친구 시리즈에도 썼다시피 친구는 먼길 마다않고 늘 나를 만나러왔습니다. 내가 어디에 머물고 있던지 상관없이 산 넘고 물 건너서.

이번 방문에서는 내가 친구를 만나러 가야했습니다. 나의 한국방문 기간은 일 주일, 지난 달 말부터 이달 초에 걸쳐져 있었는데  고향에서 나흘, 서울에서 이틀 머물렀습니다. 서울로 올라간 날이 5월초였는데  친구의 말인즉슨 ‘초하룻날’이라 손님들이 많아서 신당(神堂)을 지키고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친구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친구집을 찾아가 볼 생각이었습니다. 도봉산 아래에 위치해있던 신당을 방학동으로 옮겼다기에 호기심이 생긴 겁니다. 낡고 허름하던 예전 기와집에서 깨끗한 양옥집 이층에  살림집을 겸해 새 자리를 마련했다는데 도대체 어떤 곳일까, 보고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 혼자서는 찾아갈 엄두를 낼 수  없었어요. 원래 지독한 ‘길치’에다 한국을 떠난지 30년 째,  어디가 어딘지  천지사방 분간을 못합니다. 죽어도 혼자서는 찾아가지 못하는 주제입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려고 인터넷으로 거리를 측정해보니 너무 먼 거리라그런지 택시요금이 안 나와요. 버스와 지하철은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는데.

할 수 없이 한 할배한테(독자님들, 기억하고 계시지요? 고모한테 손금 본 할배?)연락했습니다. 마침 할배가 한국에 나가있었어요. 할배는 날이가면 갈수록  미국에서는 재미없어 못 살겠다며, 그리고 여생을 같이 보낼 여자를 만나겠다며 한국에  자주 나가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친지들로부터 이런저런  여자를 소개받는 모양인데 뭐가 잘 안 되는지 아직도 홀애비신세입니다(이 자리를 빌어 공개요청합니다. 혹시 독자님들 주위에 60대 중반정도의 참한 여성이 있으면 중매 좀 서세요)

할배는 기관지염 때문에 기침을 하면서도 나를  친구집에 데려주려 나왔어요.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지하철을 두번이나 갈아타고 거의 2시간이나 걸려서 친구집을 찾아갔습니다.

친구가 살고있다는 이층집에 ‘청송암’이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있습니다. 친구의 점집 상호가 청송암이었던 것입니다. 무당에게 세를  준 집주인은 얼마나 담대한 사람일까, 좀 궁금했습니다. 무당집을 위층에 두고  밤에 무섭지않을까요. 꿈자리가 사납지 않을까요. 주인의 얼굴을 좀 보고싶었지만 아래층 마당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시멘트로 된 계단을 올라가자  친구의 집이 나왔습니다. 문이 열려있어  인기척 내지않고 그냥 현관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친구는 신당에 손님과 함께 있는 중인 모양이었습니다. 마루에 앉아서 대충 둘러보았는데 방 세개, 목욕탕, 그리고 부엌이 있는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향냄새와 초 타는 냄새, 그리고 반쯤 열려진 신당 문 틈으로 울긋불긋한 장식물과 부처상, 촛대 등 점사에 필요한 물품들이 없었더라면 보통가정집이라고해도 믿을 만큼.

한  십 분쯤 기다렸을까? 신당 문이 활짝 열리며 손님이 걸어나오고 친구도 뒤따라나왔습니다.  손님은  예상외로 젊은 여자였어요.  20대 후반쯤 되었을까. 늙스구레한 여성이려니 짐작하고 있었는데. 손님을 배웅하고 온 친구에게물었습니다. 저렇게 젊은 여자가 무슨 일로 점을 보냐고.  푸르고 빛나는 꿈으로 가슴 부풀 나이에  무슨 답답하고 힘든 일이 많기에 점을 보냐고. 친구가 말했어요. 

"그러게.  최근에와서 젊은 여성들이 부쩍 많아졌는데 그중 유치원교사들이 많아..."

유치원교사가 많은 이유가 딱히 있냐니까 친구가 말했어요. '열립’이라서 그렇다고. 열립이라면 한 줄로 쭉 서 있다는 말입니다. 유치원교사들이 어린아이들과 열립하는 건 예삿일이겠지요.  그런데 그 열립이 어때서요. 이유를 물어보려는데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사십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습니다. 초하루라 바쁘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어요. 그녀는 자주 오는 손님같았습니다. 바로 신당으로 들어가지않고 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는 틈을 타서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것.

독자여러분. 

친구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짐작하셨지요? 바로 독자여러분도 궁금해마지 않았던 것,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고모네집에서  무당친구와같이 자던 날 밤, 방문이 두 번이나 혼자 스르르 열렸다고 했잖아요. 친구가 열린 문쪽을 보면서 '어서오세요'라고 고개숙여 인사를 했었고요. 도대체  친구는 누구한테, 누가 들어왔길래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을까요. 다음날 물어봤지만 친구는 대답을 안 했어요. 나도 더 이상 묻지않았고.

그 일이 있고 두 번 더 친구를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도저히 다시 물어볼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상한 대답을 들을까봐. 그래서 친구가 무서워질까봐. 그런데 무당친구 시리즈를 미시유에스에이 올리면서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내가 친구에게 다시 물어볼 용기를 낸 것은. 독자님들의 궁금점을 풀어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대답은 싱겁기 짝이 없었습니다. 기억이 안 난다는 겁니다. 그런 일이 있었냐고 오히려 되물어요. 내가 친구의 기억을 상기시켰어요.

"나는 누워있었고 너는 거울을 등지고 앉아서 머리를 빗고 있었잖아. 그때 갑자기 문이 스르르르 열렸고 니가 그쪽을 보고 어서 오세요, 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었지. 그것도 두번이나! 그런데 어찌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이야?!" 

 내가  답답해서  목소리를 높이는데도 친구는  고개를 흔듭니다. 전혀 생각이 안 난답니다. 다시 잘 생각해보라고  내가 다그치자 친구는 경직된 얼굴로 말했습니다.

"어서오세요, 하고 내가 인사를 했으면 뭔가가 들어왔겠지. 그래서 인사를 했을 거야”

그러면서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혔습니다.

"너희 고모집, 딱 귀신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 아니더냐?”

맞아요. 글에 썼지요? 반지하라 낮에도 어두운데다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있어서 어수선하고 답답하고 음침하고 음습한 분위기더라고요. 게다가 굿하고 남은 제물까지 구석에 쌓여있어서 더욱 기분이 좋지않더라고요. 그런  으스스한 곳에 무당까지 가 있었으니 귀신이 안 나타난 게 이상한 일이지. 그러니까 독자여러분, 가능하면 집안은 깨끗이 치우고 살아야해요. 친구가 다시 말했습니다.

"점사를 보거나 굿을 할 때는 내 맨정신이 아니란다. 내가 모시는 신이 내 몸에 실려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지. 신이 떠나고 난 뒤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행동을 했는지 전혀 기억을 할 수가 없단다..."

친구는 그날 밤 고모네서 뭐를 보긴 봤나봐요.  내 눈에는 보이지않던 그 무엇을.  단지 기억을 못 할 뿐이지. 썩 만족하지는 않으나 궁금증은 그런대로 풀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돌아오기는 뭐가 좀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예까지 왔으니 할배의 점사를 좀 봐달라고(사실은 할배랑 미리 약속을 했거든요 맞든 틀리든 재미로 한 번 보자고요.)언제 참한 여자가 생길지 좀 알아봐달라고요. 친구가 순순히 허락을 합니다. 

우리는  앉아있는 손님의 양해를 구하고 신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색(色)이란 색은 다 모아놓은 곳이 바로 신당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불상,  온갖 형상의 인형, 탱화, 촛대, 향로, 깃발, 인조꽃, 과일, 떡, 한복, 신발(생뚱맞게 왜 신발이 거기 모셔져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신발 두 켤레가 제단위에 놓여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신발?)부채, 등(燈) ,징 등 휘황찬란하고 울긋불긋하고 현란하고 요란스러운 것들이 벽과 제단을 가득 채운 신당안에서  손금할배와 친구는 작은 상을 놓고 마주앉았습니다. 나는 그 뒤에 약간 비껴 앉았습니다. 친구는 댕, 하고 징을 한 번 치더니 할배의 나이와 이름을  종이에 적습니다. 그리고는 곧 술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미국가서 만나야 해요. 한국에서는 백날가야 소용없어. 음, 올 가을에 여자가 나타나겠구만. 근데 임시야. 오래 안 가요. 인연이 아니야. 조바심내지 말고 기다려요.  3년 있어야 해요. 3년 있으면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키는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근조근, 조용한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전화기를 꺼냈습니다. 처음 보는  신당의 제단이 신기해서 사진을 한 장 찍을 요량이었습니다. 그리고 찰칵, 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친구가 방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른 것은.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천둥치듯 고함을 질렀기에 나나 손금할배는 얼 빠진 듯  멍하게 친구의 얼굴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어요. 처음, 나는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른 줄알았습니다. 신당안에서 불경하게 사진 찍는다고. 알고보니 할배였습니다. 친구가 연이어 소리를 또 지르는 겁니다.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말을 해요, 말을! 꿀 먹은 벙어리같이 잠자코 있지만  말고!"

할배가 얼떨결에 대답합니다.

"알았어요. 이제부터 예스, 노 할께요"

다시 점사가 시작되었는데 친구의 고함은 몇 분 뒤 또 한번 천장을 쩌렁쩌렁 울립니다. 할배가 자기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이겁니다. 외면을 했다, 이겁니다. 와아,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친구를 쳐다보았습니다. 평소때와는 백팔십도 다른 친구의 모습입니다. 요조숙녀처럼 얌전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친구의 입에서 어쩌면 그렇게 큰 호령이 나오는지. 무섭습니다. 친구의 말대로 신이 실리니까 완전히 다른사람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신점을 보고  점심을 먹고  친구의 집을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할배에게 말했습니다. 

"올 가을이라고 그랬지요? 올 가을에 여자 하나를 만난다고 했지요? 맞는지 빗나가는지 어디  두고 봅시다"

다음날 오후, 내가 묵는 호텔로  무당친구가 놀러왔습니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반드시 해야할 일 아니면 좀처럼 바깥에 나가지 않는 나입니다. 그래도 한국까지 왔는데 어찌 호텔에만 있겠어요.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을 가려고 옷까지 챙겨 입었으나  갑자기 귀찮은 생각이 들어 그냥 주저앉아버렸습니다. 텔레비전이나 보며 하루 죽치고 있어야지했는데 친구가 찾아온 것입니다. 손님들은 다 어떡하고 왔냐니까 친구가 말했습니다.

“괜찮아. 바쁜 건 어제로서 끝났고  오늘 예약손님 서넛은 나중에 오라고 얘기해 놨어...”

친구가  가방에서 세면도구를 꺼냅니다. 나랑 같이자고 다음날 아침에 가겠다는 겁니다. 심심한데 잘 됐다 싶었습니다. 그동안의 밀린 이야기나 하자싶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또다시 신기하고 묘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