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방에서의 일을 쓰기 전에 작년 이야기부터하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작년 10월의 한국방문도 물론 1주일이었습니다. 휴가가 널널하게 많으니 기간을 더 잡아도 되지만 무조건 1주일입니다. 엉덩이 가볍기가 스폰지같은 나는 1주일이면 볼일 다 보고 만날 사람 충분하게 만날 수 있으니까요.

작년 방문에서도 나흘은 고향에, 서울에서 이틀을 지냈는데  늘 그랬듯이 무당친구가 나를 보러왔습니다. 아침무렵, 내가 머무는 호텔로. 호텔식당에서 둘이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호텔 밖으로 나갔습니다. 친구도 나도 생소한 지역이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했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문 연 미용실이 없어요. 서너 블럭 정도 걸어서야 이층에 위치한 한 미용실의 창문이 열려있는 걸 발견하고 올라갔습니다.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꽤 넓은 실내에 손님이 하나도 없었어요. 주인인 듯한 세련된 차림의 중년여성과 헤어스타일리스트라는 30대 초반의 남자와  잡일을 전담하는 듯한 소녀밖에. 

소녀에 의해 머리를 감고 말린 후 의자에 앉자 남자가 와서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는 뒤에 놓인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구요.

머리를 다 자르고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이었을까. 갑자기 주인여자랑 소녀가 왔다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거울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화분을 들어서 다른 위치로 옮기고 천장부터 바닥까지 내려와 있던 커튼을 한쪽으로 밀고 벽에 걸려있던 그림을 떼어내고. 조용히 있던 사람들이  불현듯  왜 저럴까, 궁금해서 얼른 몸을 일으켜서 보니 무당친구가 한 쪽에 서서 그들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낮았기에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계속 뭐라고뭐라고 지시를 내리고있는 겁니다.

"무슨 일이야?"

나는 친구에게 다가가며 물었습니다. 친구대신 주인여자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앞으로 손님이 많이 들어올 수 있게 해주신다고 해서요. 오픈한 지 육 개월이 지났는데도 우리 미용실을 찾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오늘 은인을 만났지 뭐예요...”

내가 어이없어하며 양쪽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가게안에 좋은 기(氣)가 돌아야 손님들이 많이 오지. 좋은 기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거야. 지금 물건들이며 액자가 놓여있는자리가 아주 흉지(凶地)야, 흉지.  물건들이 저런 식으로 자리를 잡고있으면  좋은 기가 나올 수가 없지..."

나는 얼른 소녀에게 미용비를 건네주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가자!"

주인여자가 아쉬운 얼굴로 몇 마디 더 조언을 구하는 것 같았으나 나는 친구의 손을 이끌고 미용실 문을 나왔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친구를 힐난했습니다. 

"쓸데없는 짓하는 것 아니야? 네 말대로 했는데도 손님들이 안 오게 되면 어쩌려고?"

무당시리즈에 쓴 바있지만 나는 친구가 무속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행동이나 말투나 목소리나 얼굴모습이 그 쪽 세계 사람들같이 변해가는 걸 보면서도 내 정답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무속인이 되어버린  사실이  혼란스럽고 거북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단 한번도 나에 대해  점사를 봐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으며 친구가 그쪽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끝까지 들어는 주었으되  아무것도 물어본 적이 없었어요.

친구능력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깊은 산속에서 몇십년 도를 닦은 것도 아닌, 그런 쪽으로 죽도록 책을 보고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한 것도 아닌, 어제까지만해도 평범한 가정주부에 지나지 않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신이 내림으로 인간들의 길흉사를 꿰뚫는 신통력을 가지게 됐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할배보고 점을 보라고 할 때에도 큰 기대를 하지않았습니다. 순전히 재미로, 장난으로 한 번 해보라고 한 거지요. 그랬는데 점사를 할 때 평소 모습과는 딴판인  친구의 모습을 보았고 ‘신이 실리면 저렇게 변하는구나' 싶어 아주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였습니다. 친구가 영험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친구는 무당으로서의 제 값어치를 톡톡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쪽집게무당’이었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한국을 떠나오기 하루 전의 호텔방으로 돌아갑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친구가 많은 이야기를 했지요. 위에도 썼다시피 그동안은 그저 듣기만 했습니다만 이번에는 내가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무당시리즈를 쓰면서 독자님들이 궁금해하던 것들이 많았던 것을 기억했거든요. 사실 나는 전혀 궁금하지 않던 것들이었는데 독자님들이 궁금해하니까 좀 알고싶어졌어요.어떻게 신이내리던가? 안 받으려고 거부하지는 않았는가? 남편과 아이들의 반응은? 시집식구들의 반응은? 작두도 타는가?돈은 좀 버는가 등등이었는데 친구는 순순히 다 얘기해주었습니다. 

신을 받아야만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무당집에서였답니다. 친구는 일찍부터 무당집에 자주 점을 보러 다녔답니다.  그냥 신점이나 보고 속상한 일 있으면 점쟁이에게 속풀이나하는  수준이었대요. 그런데 성형수술을 한 후에는 가는 곳마다 '신을 받아야만하는 팔자'라고 못을 박더랍니다. 물론 첨엔 안 받으려고 애썼답니다. 그런데  거부하게 되면 남편이랑 아들들의 명이 짧아진다고 하더래요. 친구의 시집쪽 남자들 중에 60을 넘긴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모두 명이 짧은데 남편이랑 아들들도 그렇게 된다고 엄포들을 놓더랍니다. 그러니 친구가 얼마나 겁이 났겠어요. 그래서 남편이랑 아들들의 목숨을 보전코저 신 받을 결심을 하였답니다. 물론 남편이랑 자녀들은 펄펄 뛰면서 반대를 했다지요. 한 번 결심을 한 이상 다시 돌이킬 수 없기에 계속 진행을 했는데 그게 돈이 또 엄청 든다네요. 명산을 찾아서 풍악을 울리며 신이 내리기를 기원해야했는데 친구같은 경우는 신이 잘 내리지 않아 이 산, 저 산, 몇 군데를 찾아다녀야했답니다. 거기에 드는 인력이랑 악기랑 이동비용이랑 옷이랑 제단에 바칠 음식 등에 거의 1억원 가까운 돈이 소요되었답니다.

신을 받고는 작은 방을 하나 얻어서 점집을 시작했는데 남편과 아이들한테는 식당에서 일한다 말하고 시간 맞추어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했기에 한동안 속일 수 있었답니다. 나중에 발각이 나서 한바탕 소동을 치른 후에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지긴했지만. 

예전엔 신당을 모신 집이랑 살림집이 따로 있었는데 지금 이사간 곳엔  살림집이 같이 있습니다. 거기서 먹고자고 같이 생활하는 것 보니 이제 가족들도 큰 거부감이 없는 것 같은데 큰 아들만은  끝까지 친구가 하는 일을 인정하지 않으려했답니다. 독립해있던 아들은 집에 다니러와도 절대로 신당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호주에 가서 생활하던 큰 아들이 올봄, 호주아가씨와 결혼한다며 한국에 나왔답니다. 그런데 아들이  두말 않고 아가씨를 신당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제단앞에 인사를 시키더래요. 아들도 이제 어머니가 어쩔 수없이 그쪽 세계를 걸어야한다는 것을 느낀것일까요. 체념한것일까요.

돈은 그럭저럭 번답니다. 새로운 장소로 이사한 후 에는 아직 알려지지않아서 손님들이 예전처럼 많지는 않으나 밥은 먹는답니다. 버는 것만큼 쓰는 데도 많다네요. 몇달에 한 번씩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해야하고요. 굿할 때 매번 같은 옷을 입는 게 아니라서 옷도 자주 장만해야하고 등등.

기억에 남는 손님은요. 갑자기 다리가 마비되어 병원,침술원, 점집 등 안 다닌 데 없는 남편을 둔 부인이 어느날 찾아왔더랍니다. 친구가 남편의 사주를 받아드는 순간 "걱정말아라. 6개월 안에 내가 고쳐줄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래요.  물론 그 남자는 친구말대로 몇 달 후 다리가 멀쩡해져서  뛰고 날아다녔다합니다. 물론 부인은 틈틈히 친구를 찾아 점을  보면서 전적으로 친구를 믿고 의지하게 되었고요. 친구가 하루는 부인에게  ‘당신남편한테 좁은 길을 조심하라고 해라'는 말을 해줬는데  남편이 그 말을 귓등으로 들었대요. 그러다가  시장통의 아주 좁은 길에서 오토바이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고는 친구가 전화기를 꺼내더니 작두타는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형형색색의 도포차림으로 날이 시퍼런 작두를 타고있는 친구의 사진. 신기합니다. 생경스럽습니다. 약간 무섭기도합니다. 그때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내 전화가 울렸습니다.  친구 미영이입니다. 천안에 사는 미영이가 쑥떡을 잔뜩 맞춰가지고 올라왔답니다. 호텔로비에 막 도착했답니다. 아이고, 세상에! 그 무거운 것을 들고 천안에서 서울까지!? 내가 쑥떡좋아하는 걸 알고 작년에도 아이스박스에 얼음까지 채워서 한가득 호텔까지 들고 오더니 이번에 또 해온 것입니다. 나는 가운차림 그대로 뛰어나갔습니다. 미영이를 에스코트해 호텔방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무당친구가 와 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둘은  모르는 사이입니다. 고향친구이기는 했으나 사는 동네가 달라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호텔방에 들어가서 미영이와 무당친구는 서로 인사를 했고 탁자를 마주 놓고 앉았습니다. 날씨, 미세먼지등 이런저런 재미없는 얘기를 하기에 내가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야, ㅇㅇ야. 이런 기회도 흔치않은데 미영이 점사나 좀 봐 줘라"

친구는 눈을 홀기며 안 하겠다고 했지만 나와 미영이가 강력하게 권하니까  마음을 바꾸는 것 같았어요. 눈을 감고 잠시 정신을 모으는 모습을 해요. 그러더니 눈을  번쩍 뜨면서 대뜸 말했습니다. 돈 가지고 엎치락뒷치락 엄청했네! 미영이의 눈이  놀라움으로 둥그래집니다. 친구의 말이 맞았으니까요. 미영이는 사업가이며 여장부입니다. 통이 큽니다. 이런저런 곳에 투자도 잘하고 주식도 합니다. 그러니  돈 때문에 얼마나 엎치락뒷치락했겠어요.

친구가 말합니다.

“ 빌려 준 돈도 많고 떼이기도 엄청 떼였구먼...”

미영이가 실토를 합니다. 그동안 수억 떼였다고. 맘이 약해 돈 빌려달라는 청을 거절 못하는 까닭이랍니다. 친구가 또 말합니다. 

“지금 세 군데에 돈을 투자한 것 같은데 한 군데는 안 돼. 절대 안 돼. 돈 잡아먹는 하마야. 일찌감치 접어요. 그리고 나머지 한 군데도 그리 썩 전망이 밝지는 않아요....”

우와, 내가 옆에서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어쩌면 눈 앞에서 본 듯 잘 알아맞출까요.  미영이의 현재상황은 친구가 말한대로 그대로입니다. 한국도착한 첫날, 밤이 늦어서 고향으로 바로 가지않고 천안의 미영이네서 하룻밤 잤습니다. 그때 미영이가 그랬습니다. 세 군데에다 투자해 놨는데 한 군데는 이익도 없으면서  너무 얽히고 섥혀 골치가 아파 죽겠다고. 조만간 정리를 해야겠다고.  또한 다른 한 군데도 예상 만큼 돈이 안 되어서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라고. 무당친구는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을까요. 맹세코 나는 친구에게 미영이를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다음입니다.

"미영이는 연예계로 나갔어야 잘 풀렸을 건데 아깝네.  연예인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그렇지않아서 인생에 굴곡이 많구먼..."

세상에, 그것도 맞추네요! 맞습니다. 미영이는 딱 연예계에서 일했으면 크게 성공했겠다 싶은 아이입니다. 일단 외모가 엄청 뛰어나요. 키는 별로 크지않은데 얼굴이 보통 예쁜 게 아닙니다. 얼굴도 예쁜데다 차림새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보통여자는 감히 엄두도 못 낼 튀는 차림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낯을 가리지않는 활발한 성격에다 무엇보다 노래를 기차게 잘합니다. 저런 노래실력을 가지고 왜 가수로 나가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들만큼. 그러나 그날 미영이는 평소때와 같지않게 화장도, 옷차림도 수수했습니다. 나 주려고 떡집에 들러서 떡해 온 차림새 아닙니까. 전혀 멋을 부리지않았어요. 근데 친구는 어떻게 미영이가 연예인팔자라는 걸 알았을까요. 친구는 이어 말했습니다. 미영이가 겉으로는 씩씩하고  명랑하게 늘 하하하, 웃는데 외롭답니다. 당연히 외롭지요. 미영이나 나나 자식이 없으니까.

친구가 미영이에게 묻습니다. 혹시 동생이 하나 있지않냐고? 동생때문에 속이  많이 상하지 않냐고? 미영이가 대답합니다. 딸부잣집의 막내인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어릴 때 귀하게 자란 것과는 달리 평생 뭐가 잘 안 풀려서 늘 사는 게 편치않다고. 그 남동생이 불쌍하고 가엾어서 늘 가슴이 아프다고...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친구가  급하게 자기 핸드백을 뒤지더니 담배갑을 꺼냅니다. 그리고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더니 쉬지도 않고 뻑뻑 다 피우는 겁니다. 코로 입으로 연기를 마구 내뿜으면서.생각지도 못하게 미영이의 신상을 훤히 꿰고 있는 친구의 신통력에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있던 나는 호텔방 안이 금연구역이라는 걸 친구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친구가 두 번째 담배를  입에 무는 걸 보고서야  나는 황급히 소리를 질렀지요.

"야아, 저기 금연 사인 안 보이냐? 여기서 담배 피우면 큰일난다! 20만원 벌금이야!"

친구가 말했습니다. 

"내가 피우는 게 아니라 미영이동생이 피우는 거다. 너무너무 답답하고 괴로워서  미영이동생이 지금 피우고 있는 거다..."

내가 미영이게 물었습니다. 네 동생 담배 많이 피우냐고. 미영이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하며 대답했습니다. 

“내 동생, 아주 골초야...”

*친구를 선전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닙니다.  따라서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요청에 일체 답변하지 않을 것을 공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