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속에서 울화가 확 치솟습니다.  출근하면서 작동시켜놓았던 자동청소기 '룸바’가 거실 한 운데에 멈춰져있는 걸 보고서였습니다. 열심히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다가 힘이 딸린 모양입니다. 제 집까지 스스로 찾아가서 힘을 축적해야 정상인데 그만 중간에서 뻗어버린 것입니다.

남편의 퇴근은 나보다 두 시간이나 이릅니다. 두 시간이나 먼저 집에 들어 온 남편은 저 물건을 못 보았을까요. 못 볼리가 없지요. 거실 한가운데 널부러져있었으니까.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들어가려면 당연히 그 놈을 타고 넘어가야했을 거고  또한 집에 왔다하면 붙박이로  앉아있는 소파에서도 직통으로 보였거든요.

처음부터 버릇을 잘 못들였습니다. 집안일을 좀 거들게했어야했는데. 모두 내 잘못입니다.  대문 밖을 잘 안나가는 집순이답게 나는 집안일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남의 손을 일체 빌리지않고 사부작사부작대며  혼자 다 했지요. 유리를 말갛게  닦는 일, 바닥을 반짝반짝 닦는 일, 물건들을 반듯반듯 정리정돈하는 일,  보송보송한 빨래를 개는 일을  그동안은 즐기면서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릅니다. 이제는 나도 늙었고 힘 빠졌고 지쳤습니다. 남편이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집안일은 일체 안 하는 걸로 버릇이 완전히 들어버린 남편입니다.

정말로  성질납니다. 누구말마따나 내 손모가지가 거치지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집구석이.  한바탕 해댔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 같았으면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히 했겠지요. 너 죽고 나 살자, 하면서요. 그러나 나는 찬물 한 잔을 마시면서 마음을 바꿉니다.  한바탕하면  속이야 시원하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할퀴고 상처주고나서 돌아서면 마음이 참 아픕니다. 좀 참을 걸 괜히 해댔다, 싶은 후회때문에 괴롭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아마 점점 늙어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나빠지는 시력, 성글어지는 머리카락, 늘어만가는 주름살.... 

큰 병 걸리지않고  지금 내 곁에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겠다고 되뇌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모든 것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지요. 새 차, 새 핸드백, 새 신발. 젊었을 때는 목숨바쳐 추구하고 추종했던 것들이 흐르는 세월앞에서는 다 부질없고 허망하고  속절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물질은 다 소용없습니다. 지금 내게 가장 귀중하게 생각되는 게 있다면 바로 남편입니다. 나 아파 누웠을 때 끝까지  굳건하게  곁을 지켜줄 사람이 있다면 아마 남편일 거니까. 물론 나도 그럴 거고요. 그래서 가능한 싸우지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사이좋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부부가 서로 의지하고 위해주고 도와가면서 인생길을 끝까지 같이하는 것만큼  숭고한 일이 또 어디있겠어요. 아름다운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여기 그 아름답고 숭고한 부부애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고향친구, 호찬이 부부입니다. 사실 나는 호찬이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고향친구라고는하나 살던 동네가 달랐기때문이었지요. 얼굴이나 이름은 알았으되 개인적으로 대화를 해 본적은 없었습니다.

어쨌든 내가 호찬이의 상황을 알게 것은 작년 1월의  한국방문 때였습니다. 누구보다 건강하고 활동적이어서 등산도  열심히 다니고 운동도 잘했던 호찬이가  의료사고를 당해(보상 한 푼 못 받은채)아예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 아래 쪽으로  마비가 되어 걸을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어 누워서만 생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오랜 기간을, 거의 20년이나 가까운 기간을. 

그제야 나는 알았습니다. 동창밴드에 올라온 아들 결혼식사진에 호찬이 모습이 보이지않았던 까닭을. 호찬이를 닮아 훤칠하고  잘 생긴 첫 아들의  결혼식이었어요. 아버지인 호찬이의 모습이 보이지않는 겁니다. 사진을 보면서 이상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더랬는데 그런 가슴아픈 사정이 있었네요. 그런 큰 경사에도 참석치 못하고 방안에 머물러있어야했을 호찬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미국같으면 휠체어에 태워서라도 참석을 시키겠지요. 한국은 정서가 다른가 봅니다.

"생활은 어떻게 꾸려나가고 있대? 호찬이가 경제활동을 못 할 거 아니야?”

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한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국가로부터 장애수당을  받고 부인이 일을해서 좀 번답니다. 그냥 닥치는대로 여기저기서. 어디나 다 그렇겠지만 특히 한국은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이 없으면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기 힘들 겁니다.  결혼한 여자는 더더욱. 기껏해야 식당일이나 노동일이겠지요.

멀쩡했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집에서 꼼짝을 못하게 된 모습을 보는 부인의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얼마나얼마나 참담하고 막막했을까요. 모르긴해도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겁니다. 더구나 자기 힘으로는 화장실도 못가는 남편을 혼자 집에 두고 돈을 벌러 나가야했을 부인이었습니다. 발길이 떨어졌을까요.

미국에 돌아와서도 호찬이 생각에 마음이 편치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어찌합니까. 내가 도와줄 방법은 아무것도 없는 걸.

그해 10월, 나는 다시 한국에 나갔습니다. 한국에는 왜 그리 자주 나가냐구요?  내 주위의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픽픽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서입니다.  젊은이, 늙은이 할 것없이 온갖 질병으로(특히 암으로) 마구 유명을 달리합니다.  어제까지만해도 같이 만나 밥 먹고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없습니다. 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어요. 오늘 내가 건강하다고 까불다가 하루아침에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동생들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하루라도 젊을 때, 다리에 힘 있을 때 나가서 봐야지.  다리에 힘 풀리면 가고 싶어도 못 가니까. 그래서 자주 나갑니다.

지난 번에 쓴대로 한국가면 제일 먼저 찾는 친구가 있습니다. 희주입니다. 나는 희주에게 호찬이의 소식을 먼저 물었습니다. 그새 어떤 기적이 일어나서 호찬이가 멀쩡하게 걸어다니고있다는 대답을 듣길 간절히 바라면서. 희주가 말했습니다. 

"나을 병이 아니니까 뭐. 그냥저냥 지내나봐..."

희주가 덧붙혔습니다.

"부인이 키도 크고  인물이 아주 출중하지. 게다가 엄청 젊기까지 해. 얼마든지 딴 생각을 품을만 한데도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남편을 극진하게 보살피고 있는 것 같아. 참 미안하고 고맙지뭐야...”

물질이 인간의 도리와 신의를 앞서가는 요즘같은 세상에, 결혼식 때 한 '검은 머리 파뿌리'의 맹세는 내 실익여부에 따라 개나 줘 버려, 가볍게 배신하는 세상에  남편에 대한 호찬이부인의 헌신은 세상의 본이 되고 귀감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한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길손'이라는 식당에서 몇몇 친구랑 모임이 있었습니다. 나는 50만원을 넣은 봉투하나를 준비해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모임이 파할 무렵, 한 친구에게 그 봉투를 건넸습니다.

"호찬이한테 좀 전해 주소. 내 이름은 말하지말고 '산타할매'가 주는 거라고하면 좋겠네..."

별로 크지 않은 금액입니다. 그렇지만 내 성의입니다. 온 세상이 시커먼 먹구름으로  덮혀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호찬이에게  작은 메세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많이 힘들고 상심되겠지만  꿋꿋이 이겨나가라고. 호찬이를 만나보고 싶었으나 그동안 연락 한 번 안 하고 있다가 불쑥  나타나는 게 예의가 아니다 싶었어요. 그래서 봉투를 준비한 겁니다. 내 이름을 밝히지말라 한 것은 호찬이의 자존심을 다치게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자기를 어떻게보고 그러냐고 기분나빠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환경에 처해있는 사람은  대부분 자존감이 낮을 거잖아요. 반면 자존심은  또 지나치리마치 꼿꼿하게 날을 세우고있는게 일반적이니까요. 

독자여러분들, 영화보시지요? 영화속에서  갑자기  사고를 당해 삶의 방향이 바뀌게된 사람들이 보통 어떻게 그려집니까? 비탄과 실의에 빠져  삶을 방기(放棄)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빈 소주병이 여기저기 나동그라져있는 어둡고 더러운 방에 봉두난발을 한 채 가족들을 괴롭히고 못 살게 구는 괴팍스러운 인물로 그려집니다. 나는 호찬이가 그런 모습에 가까울 거로 혼자 짐작했던 겁니다. 내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일방적인 생각을 했는지는 나중에  깨닫게 되었어요. 내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했는데 호찬이가 어찌 알게 된 모양입니다. 미국에 돌아와서 직장에 출근했는데 한국으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호찬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호찬이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예외입니다. 목소리가 여간 경쾌하고 밝은 게 아닌 거예요. 

“친구야, 뜻밖의 선물받고 많이 놀랐다.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전화했다."

근무중이라 긴 얘기는  할 수 없었어요. 슈퍼바이저가 두 눈에 불을 켜고 직원들 근무상태를 시시각각 확인하고 있었으니까요.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은 후 서둘러 전화를 끊으면서 나는 호찬이에게 약속했습니다. 다음에 한국나가게 되면 꼭 얼굴보러 가겠다고.

이번 한국방문 때 나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집을 모르니까 식당업을 하는 한 친구를 동반해 호찬이를 찾은 것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지난번과 같은 금액을 넣은 봉투하나를 준비했습니다. 태산같은  삶의 무게가 내가 주는 돈으로 가벼워지지야 않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만 될 것 같았습니다.

가면서  고민이 좀 되었습니다. 뭐라고 첫 마디를 꺼내야하며 뭐라고 위로를 해야하나 싶어서요. 위로를 한들 전혀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입을 다물고  멀뚱히 있다가 올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평범한 친구라면 활달하고 주책맞은  내 평소 성격을 발휘하여  맘껏 떠들고 분위기를 띄울 수 있겠는데  좋지않은 상황에  놓여있는 친구에게 그럴 수는 없습니다.내가 원래 남 위로를 잘 못하는 편입니다. 글로 쓰라면 쓰겠는데 말로 하는 건 정말로  긴장되고 어색합니다. 중앙일보 칼럼에도  한 번 쓴 적 있지만 곤경에 처하거나 힘든 일을 겪은 지인들에게 말로 위로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카드를 보내는 걸로 할 도리를 대신했지요.내 고민이 괜한 기우였다는 건 호찬이집 안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깨달았습니다.

"계숙이 니 왔나? 오랜만이다아?! 억수로 반갑대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니 한개도 안 변했네?"

호찬이가 먼저 지난 번 전화 목소리와 똑같이 밝고 활기찬 목소리로 나를 반겼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가가서 호찬이의 두 손을 움켜잡았습니다.

큰 창문으로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방이었습니다. 모든 물건이 반듯반듯 정리된 정갈한 방이었습니다. 환자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방이었었습니다. 그방 한쪽 침대에 호찬이가 누워있었습니다. 호찬이는 짧은 머리스타일에 수염도 깎은 산뜻한 얼굴이었습니다. 혈색도 좋고 매우 건강해보였습니다. 하반신을  가리고있는 이불만 아니라면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앉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일만큼. 호찬이는 쾌활했으며  거침없이 얘기도 잘 했고 농담도 잘했습니다. 그리고 하하하, 목소리 높혀 잘 웃었습니다. 덩달아 내 기분도  풍선처럼 가벼워졌습니다.

부인은 희주말대로  아주 단정하고 깨끗한 얼굴이었어요. 피부가 달빛처럼 하얗고 고왔습니다.  날씬한 몸에 키가 컸습니다. 팔다리는 물론 목이 학처럼 길었어요. 목소리와 행동도 차분하고 조용했어요. 호찬이가 옆으로 누운 상태로 말을 하느라 입가로 침이 조금 흘렀습니다. 부인이 얼른 수건을 꺼내 닦아주는데 그 몸짓이 얼마나 다정하고 부드러운지요. 마치 어린아이의 얼굴을 닦아주는 엄마의 몸짓같았습니다. 나중에  부인이랑 호찬이랑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부인이 키 작은 나를 위해  무릎을 굽혀서  자기몸을 낮추었습니다. 얼마나 사려깊은 행동입니까.

나는 깨달았습니다. 호찬이가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의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풀죽지 않고 기죽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부인의 역할이 아주아주 컸다는 것을. 세월이 많이 지났기에 그럴 수 있다고요? 몸 상태가 그대로인데 세월이 간다고 절망감이 사라지겠습니까. 시간이 흐른다고  수용과 체념이 되겠습니까.

만약 내가, 내 남편이 그런 상황에 처해있었다면 정말로 가관이 아니었을 겁니다. 깊은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신세한탄이 입에 붙어있을 겁니다. 짜증과 불만과 우울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을 겁니다. 집안분위기도 우중충하고 음습하기 짝이 없었을 겁니다.

동행했던 친구가 점심손님을 맞기 전에 장을 보러가야한다는 바람에 호찬이와 긴 시간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나는 호찬이게 약속했습니다. 다음에 또 오겠다고. 그리고 다음엔 좀 더 긴 시간을 보내자고.

밖에 나오니 찬란한 봄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있었습니다. 저 햇빛을  맞으며 대지를 걸을 수 없는 호찬이를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우울해졌습니다만 나는 마음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호찬이에겐 햇살보다 따뜻하고 보석보다 귀한 심성을 가진 부인이 옆에 있습니다. 부러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대충 짐작이 가시겠지만 사진 오른쪽이 호찬이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