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동네(오클랜드)에 사는 두 독자와 ‘펜팔’을 하고 있다.

간호사인 중년여성  W 씨, 그리고 ‘두잘생’이라는 칠순의 할배. 그 동네에 사는 제일 잘생긴 남자가 내 친구라했더니 그럼 자기는 ‘두 번째로 잘생긴 사람’이라나. 그래서 호칭이 ‘두잘생’이 되었다.

중앙일보 칼럼을 시작할 때부터 내 독자였다는 두 사람.  꽤 오랜기간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지금까지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없다. 그냥 편지로만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은 했지만 굳이 만날 필요를 못 느꼈다. 그리고 기회가 없었다. 그들이 이쪽으로 올라올 기회, 내가 그쪽으로 내려갈 기회.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의 날’ 행사를 하는데 어쩐일로 이곳 한인회에서 버스를 대절해 참여한다고 한다. 정원이 52명이라며 가겠냐고 한인회장이 묻는다. 두말 할 것도 없이 가겠다고 했다. 어디 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집귀신’인 내가 웬일이었을까? 안 가면 죽일 거라고 한인회장이 협박한 것도 이유였지만 내 속셈은 따로 있었다. 원님 덕에 나팔분다고 행사장에 두 독자들을 오라고 해서 얼굴을 한 번 볼 속셈. 그들이 사는 오클랜드랑 샌프란시스코가 바로 지척이니 크게 힘들 것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두 사람에게 연락했다.

"이계숙이가 행차합니다.  '견우와 직녀' 처럼 우리 만납시다. 혹시 날 못 알아볼 수도 있으니 검정옷에 검정부츠에 연보라색 숄을 두른 멋진 여자만 찾으세요"

그래서 상봉이 이루어졌냐고? 아이고, 내 복에 무슨.

목요일부터 갑자기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양쪽 팔과 허벅지부터였는데 금요일엔 더 심해졌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한국의 날 행사날인 토요일 아침엔 팥알만한 빨간 발진이 온몸을 덮었다.

시집가는 날 등창난다는 법칙이 이번에도 또 적용된 것이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꼭 입술이 부르튼다든가 감기가 된통 걸린다든가 하는 빌어먹을 법칙이.  

두 독자들과의 첫 만남이니만큼 잘 보이려고 얼굴 맛사지까지 매일했건만 이 꼴로 가긴 어딜 가. 나는 눈물로  두 사람들에게 불참을 알렸다. 

"같은 하늘 아래 사니까 언젠가는 얼굴 볼 날이 있겠지요..."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가려움이라는 고통을.

내가 이 동네서 유명인사는 유명인사인가 보았다. 샌프란시코로 떠나는 날 아침 우리집에 와서 날 픽업하기로 했던 지인에게만  살짝 알렸을 뿐인데  금방 온동네에 소문이 다 났다. 이계숙이가 피부병나서 죽게생겼다고. 며칠도 안 돼 여기저기서 갖다 준 약이랑 비누가 한 보따리가 되었다. 

위에 쓴  W씨가 간호사라는 직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가지 약을 ‘아마존’에서 주문해 보내주었고 이어 K씨는 자기도 가려움증으로 고생한 바, 한 입욕제와 비누가 제일 잘 듣더라며 두 박스나 갖다 주었다.

또한  N씨는 일요일 아침 교회가는 바쁜 중에도 들러서 약을 사다주었다.

한국의 내 친구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희주는 가려운 덴 한약이 ‘직방’이라며 보내준다 했고  영선이는 연고를 보내주겠단다. 재남이도  온갖 걱정을 다하며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그 후 보름, 발진은 거의 진정됐다. 울긋불긋한 상흔을 남기고.

얼굴이야 '헉' 소리나게 이렇게 못생겼지만 내 살결은 굉장히 희고 고왔다. 문학에서 표현하는 ‘우윳빛’ 그 자체였었다. 얼굴하고 속살하고 어찌 그리 다르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옛날얘기가 돼버렸다. 이 울긋불긋한 자국이 평생 갈 것 같다.

두드러기, 정말로 두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않은 지독한 병이었다. 차라리 감기를 열 번 앓는게 낫겠단 생각이 들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