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제일 가고 싶지않은 곳이 병원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래서 두드러기가 났을 때  남편을 비롯한 주위사람들이 성화를 해댔어도 병원엘 가지 않았다.

시간지나면 낫겠지. 몸엔 자생능력이 있으니 며칠만 고생하면 괜찮아질 거야...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두드러기는 며칠이 지나도 낫지않았다. 발진은 얼굴을 제외한(다행히도!) 모든 곳으로 번졌고 가려움은 더 심해졌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하도 긁어대서 나중엔 피부에 진물까지 날정도가 됐다.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아, 이것 큰일났구나 싶었다. 할 수없이 의사를 찾아갔다.

은퇴를 앞둔 내 백인여자 주치의는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심드렁했다. 체온 재고 혈압 재고 몸무게 재고. 

벌겋고 우둘두툴하고 진물이 흐르는, 보기에도  흉칙한 내 몸을 돋보기안경 너머로 건성건성 보는 것 같더니 뭐 색다른 음식 먹은 것 없냐고  물었다. 나는 ‘돼지고기’ 라고 대답한 후 부연설명을 했다.

"발진나기 이틀 전에 양념한 돼지고기를 먹었어요. 그렇지만 여러명이 모여서 맛있게 냠냠 먹었는데  모두 아무 일 없어요. 나 빼놓고는 모두 멀쩡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돼지고기를 셀 수 없이 많이 먹었지만 한 번도 이런 일이 발생한 적 없었어요... "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럼 돼지고기 알레르기는 아닌 것 같고..."

혹시, 하고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화학약품에 의해 피부에 탈이 날 수도 있냐고. 유리로 된 샤워룸에 ‘블럿치’와 가루비누를  듬뿍 뿌리고 그 속에 발가벗고(19금이다!)들어가  마구 수세미질을  했었다. 그 며칠후부터 발진이 나기 시작했는데 독한 블럿치가 몸에 닿아 탈이 난 게 아닐까.

그렇지만 그것도 아닌 것이  그런 방법으로  청소했던 게 지금까지 수십 번, 수백 번은 더 되었다. 샤워와 청소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방법이라 스스로 뿌듯하게 여기며.

의사의  대답은 역시 미진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 후에도 두 번이나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도 정확하게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연고만 처방해주던 의사가 나중엔 자기도 겁이 났던가보았다.  세 번째엔 먹는 약을 주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 약들을 일주일 넘게 충실히 먹고 발라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조금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앞이 아득했다. 환자 둘은 낫기까지 2년이나 걸렸다는 의사말이 자꾸 떠올랐다. 재수없으면 내가 그  세 번째 환자가 될 수도 있단 말 아닌가!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어떤 경우엔 전문가보다 인터넷에서 찾은 상식이 더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내 증상은 식중독 아니면 홍역, 그리고 대상포진에 가까왔다. 그렇지만 완전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무릎치게 공감하는 내용이 있었으니 바로 ‘신체의 면역력’에 관한 거였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체력이 저하돼 기운이 없을 때는 면역력도 현저하게 약해진단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먹은 음식이라도 면역력이 떨어져 있을 때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탈이 날 수가 있다는 얘기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들어 몸이 많이 약해진 걸 느끼고 있다. 그동안  워낙  함부로 굴렸어야지. 매일 직장의 점심시간 1시간을 걷지,(110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의 불볕저위나 혹한의 추위에도 걷는 걸 멈추지 않았었다), 그것도 성이 안 차 주말엔 또 5마일씩 뛰지, 잠은 여전히(평생 불면으로 고생중) 못 자지, 라면과 밥 외엔 영양가 있는 다른 음식을(남편 음식은 성의있게 만들어 주지만 나 먹자고는 뭘 만드는 게 싫어서) 일체 안 먹지. 아파도 약 안 먹고 그냥 생으로 버티지(이번에도 참을 수 없는 가려움때문에 병원갔지 그렇잖았으면 또 안 갔을 거다).

그리고 지난 몇 달동안은 어떤 인간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그 극심한 스트레스가 내 몸을 얼마나 망가트렸을까...

일 주일에도 몇 번씩 주고 받는 편지를 통해 내 일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간호사인 W씨는 ‘몸이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한다’고 안타까와한다. 망가진 후 후회하지 말고 제발 몸을 돌보라고 틈만 나면 당부한다. 

그렇다. 나는 더 이상 팔팔한 나이가 아니다. 노구(老軀) 가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일 때인데. 몸이 지르는 비명에 답 할 때인데.

두드러기는 점차 나아가고 있고 나는 소꼬리를 고으고 있다. W씨 말대로 주인 잘 못만나 평생 혹사만 당한 내 몸을 좀 위하고 보(補) 하려고.

두드러기때문에 고생만 한 줄알았더니  얻은 것도 있었다. 내 몸을 함부로 대하고 굴리면 안 된다는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