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착하고 심성고운 친구였습니다. 착하고 심성곱다는 말은 그냥 으레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착하고 착한 아이였습니다. 웬만한 사람은 몇 달 안 가 고개를 흔드는  유난하고 별나고 까탈스런 성격의 나를 내치지않고 몇십년을 변함없이 친구로 대해주는 것만 봐도 그녀의 어진 심성을 알 수 있지요.  

친구는 심성만 어질 뿐 아니라 생김새도 남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키도 컸고 날씬했을 뿐 아니라 가는 팔다리, 그리고 뽀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어요.  바지를 사면 반드시 줄여입어야 하는 나보다 목 하나가 쑤욱 더 큰 친구였습니다. 드럼통이라는 별명을 듣던 나와 비교될 만큼 물찬 제비같은 몸매를 자랑하던 친구. 하여튼 외모나 심성으로도 나무랄 데 없던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겐 만족이라는 게 없는가봐요. 그 친구는 처녀 땐 물론이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면서도 늘 성형수술을 노래했습니다.  외커풀에다 약간 작은 눈을 크게 고치겠다고. 그게 그렇게 맘에 안들었나봐요. 큰 불만이었나봐요.  만나기만 하면 자기 눈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그 눈이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동그란 얼굴을 더 귀엽고 사랑스럽게 만들고 있었는데 말이예요.

"쌍커풀만 있었더라면, 그리고 눈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내가 이러고 살진 않을 텐데..."
"그러고 살지 않으면 뭐 연예인이라도 나갈 생각이었냐?"
"어떻게서든지 이 얼굴을 보완해야지. 나중에, 늙어서더라도 꼭 이 눈을 고치고 말 거야. 성형수술을 하고 말 거라고!"

친구는 이를 앙다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렸지요. 안 하는 게 훨씬 낫다고.  쓸데 없는 짓 하지말라고.

나는 한국에 자주 나간 편입니다.  연로한 부모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나갈 때마다 친구를 만났지요. 2000년대 초,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한국에 나갔습니다.  장례식장에 온 친구를 만났는데  눈은 그때까지  변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냥 생긴대로 살기로 했는지, 성형수술 하는 걸 포기했는지, 여전히 하고는 싶으나 여건이 허락치 않았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한동안 한국 방문을 중단했다가  무슨 일때문에 한 번 나갔습니다.

아마 그때가 2010년이었을 겁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약속장소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친구를 보는 순간 나는 뒤집어질 듯이 놀랐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이상했습니다.  흉칙하게 변해버린 친구의 얼굴이었습니다. 손가락 두께처럼 굵게 패인 벌건 쌍거풀 자국, 서양여자보다 더 높이 솟은 코...

정말로 꿈에 볼까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예전의 얼굴은 흔적도 없었습니다. 작은 코과 작은 눈이 옹기종기  균형을 이루던 얼굴은 간데 온데 없었습니다.  

하려면 좀 가늘게나 하지! 하려면 좀 적당한 높이로나 하지!  

작은 얼굴에  굵고 긴 쌍커풀과 태산처럼 높이 솟아오른 코는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내 친구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할 정도로 괴상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한많은 여자의 얼굴이,  온갖 풍파에 시달린 팔자 센 여자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으니까. 게다가 목소리는 왜 또 천식환자처럼 쉬어버렸을까요.

그리고 두 배나 불어버린 몸집. 아이를 셋씩이나 낳고도 '아가씨 몸매' 소리를 듣던 친구가 과연 맞는지!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지만 알아보지도 못하게 변해버린 친구를 앞에 놓고 나는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얼굴과 몸집에 대해서는 차마 말을 못하고 나는 더듬더듬 물었습니다. 감기가 들었냐, 목소리는 왜 그렇게 됐는데하고. 정말로 이 여자가 내 친구가 맞나, 몇 년새 이렇게 모습이 달라질 수가 있나 연신 속으로 반문하면서.

"뭐 남편이랑 사이도 안 좋고 시부모들 미치게 속 썩이고 도저히 살 맛이 안나 어느날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는데 몇년 새 하루에  2갑이상을 피우는 골초가 돼버렸어..."

독한 담배때문에 목소리마저 걸걸하게 변해버렸다는 것입니다.  근데  참 이상해요. 담배 피우는 사람을 많이 봤지만 친구처럼 단 시간내에 목소리가 쉬어버린 사람은 볼 수 없었는데...

식당에 갔는데 종업원이며 손님들이 자꾸 친구를 흘깃거리면서 쳐다봐요.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호기심.

아니, 어떤 작자한테  맡겼기에 저렇게 엉망으로 얼굴을 망쳐 놨대?

그걸 친구도 눈치챈 것 같았습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뜻밖에 담담한 표정으로.

"내 얼굴 이상하지? 나도 이렇게 될 줄 알고 한 건 아닌데, 보다 나은 얼굴을 꿈꾸면서 수술대에 누웠는데 이렇게 돼 버렸네. 이제 우는 것도 지쳤어.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괜찮아. 거울만 안 보면 되니까..."

남편도 고개를 돌리는 얼굴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다보니 그렇게 엄청나게 살이 찌고 만 것입니다. 원래 몸무게의 배 이상을!

"해버린 거니 뭐라고 할 말은 없긴 한데 이왕 할 거면 좀 좋은 데, 유명한 데로 가서 하지..."

"그러게.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뭐..."

어느 날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가 문득 위를 보니 이층 건물에 성형욋과 간판이 보이더랍니다.  에라, 저기서  쌍거풀 수술이나 해야겠다. 뭐에 홀린 듯 들어갔답니다.  평생을 하고 싶어하던 수술, 그렇지만 늘 망설이고 망설이고 주저하기만 했던 쌍커풀 수술이었는데 그날은 꼭  뭐가 잡아당기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병원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자세한 상담도 해주지 않더랍니다.  대충  쓱  살펴보는 것 같더니 곧 수술을 하자더랍니다. 쌍거풀은 뭐 수술도 아니니까. 머리 자르는 것보다 더 간단하고 쉬운 수술이니까. 친구도 별다른 의심없이 의사가 하자는대로 눈을 맡겼답니다.

그러나 일 주일후, 실밥을 풀고보니 갑자기 땡그랗고 커다래진 눈이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가 않더랍니다. 자기가 봐도 참 희한하더래요.  친구 얼굴에 나타난 실망을 눈치챘는지  의사가 권유하더래요. 이왕이면 코를 높히라고. 그러면 큰 눈과 잘 맞아떨어져보일 거라고. 그래서 친구는 다시 수술대에 누웠답니다.

그때  그냥 '노'를  했었어야 했었습니다! 그때 코만 안 했어도, 코만 안 했어도 인상이 그렇게 사납게 변하지 않았을  거고 친구의 운명이 그렇게 급속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을!

얼마 후 친구에게 신이 내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당이 된 것입니다.

시집쪽으로 약간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전혀 그런쪽으로는 상상도 안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랑 전혀 상관없는 일로 치부했다고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친구에게 신굿을 해준 '신엄마'도 그러더랍니다. 친구의 얼굴이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면 그냥 모르고 지나가고 말았을 일이었다고. 그런데 친구 얼굴이 딱 무속인같이 변하면서 신병을 앓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신을 받았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친구는 방학동쪽에서 점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당이 된 친구를 받아들이기 싫어서 한동안 친구의 '그곳( 친구는 '법당'이라고 했지만)'을 한 번도 찾지않았습니다.  한국에 나갈 때마다 만나긴 했지만 친구가 하는 그 일에 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스마트폰을 가지면서 '카스'를 하게 됐는데 굿하는 사진, 울긋불긋한 신당 사진, 치성드리는 사진 등이 올려진  그녀의 카스를 보고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점점 없어졌습니다. 만날 때마다 더욱더 무당같아지는 그녀의 모습에 익숙해지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게까지 됐습니다.  

지난 해 한국가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내가  머물고 있는 동생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잤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첨엔 운명이려니하고 별 거부없이 받아들였는데 이젠 좀 후회가 되네. 결혼해야 할 아이들이 셋이나 되니 말이야. 특히  우리 딸을 어쩌노. 선을 볼 때마다 나 때문에 늘 깨지는데..."

무당을 엄마로 둔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일 집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친구의 한숨이 깊었습니다.

"그때 내가 성형수술만 안 했더라면, 아니, 그냥 눈 망친 걸로만 만족했더라면, 코는 안 건드렸다면, 그랬더라면 내 운명이 이런식으로 바뀌진 않았을 텐데..."

무슨 말을 하겠어요, 내가. 그냥 친구의 손을 꼭 잡아주는 수밖에.

- 다음 회엔 무당이 될 친구의 미래를  이미  십몇 년전에 예견했던 어떤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