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가 있습니다. 확실한 나이는 모르지만 일흔 대여섯쯤 된 걸로 짐작하는.고모는 한 대형교회 권사입니다.  고모부는 장로입니다. 내가 알기로 고모는 처음에는 신앙심이 별로 깊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믿는 것을 일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고모부랑 살다보니 어떻게 독실한 ‘예수쟁이’가 됐고 권사직분까지 얻었습니다.

자, 이제 이 고모의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권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매 주일마다 교회를 나가며 감사헌금, 주정헌금, 십일조, 생일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등 셀 수 없이 많은 종목이 기재된 봉투에 돈을 넣어 갖다 바치며 하루 삼시세끼 꼬박꼬박 식사기도를 올리며 잠자리에 들 때에도 감사기도를 올리는 고모 얘기를. 

교회에 충성하는 고모였지만 관상, 손금, 사주, 택일, 역학에 관련해 관심이 많았고 해박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라고 했습니다. 고모집에 가보면 그쪽에 관련된 책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어요. 고모집에 갈 때마다 고모는 두꺼운 안경 아래로 그 쪽 방면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모부와 이때문에 늘 싸움이 잦았습니다. 물론 '그런쪽은 모두 다 잡신이다'는 고모부와 '굉장히 정확한 학문이다'는 고모의  의견이 늘 대립된 거지요.  그러나 고모는 고모부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또 그런 일로 대판 싸웠는데 앞으로 그에 관련된 책이 집에 한권이라도 눈에 뜨이면 이혼도 불사하겠다고  고모부가 강경하게 나온 거지요. 그래서 손금에 관계된 책만 보는 걸로 합의하고 나버지 책은 다 없애버렸다고 해요. 고모부의 허락하에 손금쪽 책만 더욱 더 맹렬히 공부하게 된 고모. 

그러든지 말든지. 그런 쪽으로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고모가 주위사람들 손금을  봐주는 걸 광경을 몇번 목격했었지만 나는 단 한번도 재미로라도 손금을 봐달라  한 적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내가 겪어보지 않는 건 신빙성이 없는 걸로 치부했기에.

한국에 갈 때마다  친구랑 고모를 만났습니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와 고모는 가끔 전화로 안부인사 정도로 지내다가 내가 한국에 나가면  다 같이 만나 그동안 밀린 회포를 풀곤했지요. 친구와 내가 먼저 만나서 고모집으로 가거나 고모집 근처 식당으로 고모를 나오라고해서 만나는 게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성형수술로 얼굴이 몰라보게 변했던 친구를 만났던 날도  그렇게 했어요. 친구랑 먼저 만나 식사하고 쇼핑하고 돌아다니다가 저녁 무렵 고모를  한 냉면집으로 나오게 해서 만났습니다.

"고모, 얘 얼굴 좀 보세요. 성형수술을 해서 못알아 보게 변했네요"

지나가는 사람도 돌아보게 생긴 친구의 얼굴을 변명하느라 고모를 보자마자 내가 미리 설레발을 쳤습니다. 친구의 얼굴을 보는 고모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습니다.  그러나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친구 얼굴을 찬찬히, 유심히, 자세하게 뜯어봤습니다.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그러더니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어요. 아울러 한숨과 함께 '아이고야~~~.’ 하고 깊은 한탄을 하는 겁니다.

나는 벌써 알았습니다. 고모부의 성화에 다 내다버렸다해도  관상학 책만 오랫동안 읽어 온 고모, 그래서 이상하고 무섭게 변해버린 친구의 얼굴에서 뭔가 안 좋을 걸 알아낸 거라고요. 그러나 고모는 일절 무슨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시킨 냉면이 나왔는데 고모는 날라져 온 음식은 거들떠도 보지않고 이번엔 친구의 양쪽 손바닥을 보자고 했습니다. 고모는 친구의 손바닥을 오므리게 했다가 쫙 펴보게 했다가  세우고 하고 옆을 봤다가 아무튼 샅샅이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말도 안 했습니다.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겁니다. 나는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친구가 안 좋은 얘기를 듣게 될까봐 입을 다물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친구는 집으로 돌아가고 지하철역에서 고모가 마침내 입을 열었어요.

"너 기억하니?   몇년 전에  처음으로 걔 손금 봐 준 것?”

기억하다마다요. 그때 고모가  말했어요.

"참 요상하네. 얼굴은 순하고 선하게 생겼는데 왜 이리 손금이 요상할까..."

난 고모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고모를 비웃었습니다. 왜냐면 친구의 손금이 요상할리가 없었거든요. 평범하게,  한국의  가정주부가 그렇듯 친구는 아주아주 평범하게 살고 있었어요. 딸 아들 셋에 직장다니는 남편에. 콩나물값도 아껴가며 알뜰살뜰 살림하면서.시부모 섬기면서. 고모는 그때도  그냥 ‘참 많이 요상타’ 라고만 하고 더 이상 다른 말은 안했더랬습니다. 친구도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구요. 그랬는데. 그랬는데.

"그때보니 그 아이의 손금에 연예계, 아니면 화류계에 종사할 팔자로 나오더구나..”

고모의 말에 나는 하하 웃었습니다.

"아이고, 무슨 얼토당토않는  말씀을 하세요. 고모, 손금보는 실력 순 엉터리네. 어딜 봐서 걔가 그런 쪽으로 나가겠어요? 나가려면 진즉 나갔어야지. 나이가 벌써 사십대 중반인데,  그리고  고모도 아시다시피 걔는 그런쪽으로 '끼'가 전혀 없어요. 아니, 모르지. 연예계와 화류계라했으니 지나가는 사람 1.2.3으로 영화에 나오려나? 아니면 술집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려나요?”

내 얼굴에 나타나는 어이없음을 보았을 텐데 고모는 아랑곳하지않고 덧붙였습니다.

"아니다. 분명 그런 쪽이야. 그 아이한테 그래라, 절대로 점집이나 무당집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까닥하면 무당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고,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나는  경악했습니다. 지하철인 것도 잊고 큰 소리로 나는 고모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한 말 사실이냐고?! 고모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손금이 변하는 것 모르지? 사람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손금이 좋게도, 안 좋게도  변한단다..."

몇년 전에 친구 손금에 약하게 그런 게 보였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나와있다는 겁니다. 화류계 아니면 연예계, 나아가서 무속인이 될 운명이 나와있다는 겁니다. 나이가 있으니까 화류계나 연예계는 불가능한 일 일 거고 무속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손금에도 그렇게 나와있는데 얼굴까지 그렇게 무섭게 만들어놔서 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습니다.

나는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고모가 손금책을 팠다고 해도 그렇게 구체적으로 친구의 미래를 예견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미국에 돌아와서도 고모의 말이 머릿속에 늘 남아 있었어요. 고모의 예견이 빗나가길 빌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그건 아니었으니까. 일년 열 두달가도 먼저는 전화를 하지 않는 나였지만  가끔 전화해 친구의 동태를 살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6, 7개월 후 친구에게 신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몇 달 안 돼 신굿을 받고 무당이 됐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신통방통한 일입니다. 신기하고 무섭고 놀랍습니다. 그때부터 고모의 손금읽는 능력을 믿기로 했습니다. 손금이고 사주고  관상이고 다 귀신놀음, 미신이라고 치부하던 나였지만 거짓말처럼 짚어내는 데는 놀랄 수밖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이듬해 나갔을 때 내 손금을 봐 달라고 요청 했지요. 양쪽 손을 한참 살피던 고모가 말했어요.

"니 남편이 얼마전에 큰 돈을 잃었구나!"

나는 들고 있던 물 잔을 떨어트릴 뻔 했습니다. 이 세상 아무도 모르는 일을, 남편이랑 둘만 알고 있는 일을 고모가 알아냈다는 사실에 정말로 정말로 기절할 듯 놀랐습니다. 그즈음, 남편이  우리 형편엔 엄청난 돈을 금융회사에 투자했다가  몽땅 잃었던 일이 있었거든요. 나는 다급하게 고모에게 물었습니다.

"또또 다른 건요? 혹시 우리가 또 큰 돈을 잃게 될 징조는 없나요?"

고모가 말했습니다. 더 이상은 재물손괴가 없는 것 같다고. 그리고 고모가 말했어요.

“아이고,  니 옆에 사람들이 엄청 많네. 그런데 다 쓸데없는 사람들이다. 하나 둘씩 접어라..."

세상에, 유리어항 들여다 보듯 내 신상을 꿰고 있는 고모였습니다. 고모 말대로 당시 내 주위엔 사람들이  드글드글했습니다. 별명이 '여왕벌' 일정도로. 그러나  밑에 글에도 썼지만 내가 안 챙기면, 내가 밥 안 사면, 내가 안 하면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인색함에 지치고 염증을 느끼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슬슬 발을 빼려고 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고모가 그것을 어떻게 알고? 내  놀란 얼굴을 눈치챘는지 고모가 말했습니다.

"너 결혼하려 할 때 네 아버지랑 내가 대판 싸운 것 기억나니? "

고모가 나 어릴 때 내 손금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답니다. 이혼수가 있더랍니다. 그리고 자식도 없더랍니다. 나같은 사람은 늦게 결혼을 해야 그 액운이 없어진답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나를 일찍 결혼시켰습니다. 신랑자리가 미국 영주권자라는데 혹해서 말입니다. 그때 고모는 아버지랑 말다툼까지 해가며 내 결혼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 결혼을 강행했고 고모가 예상한대로 나는 이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없습니다. 고모 말대로 늦게 결혼했으면 이혼을 하지 않았을까요?자식이 있었을까요?

손금. 미신인가, 통계학인가, 과학인가. 나는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 다음 회에는 무당친구랑 하룻밤 같이 자면서 겪었던 오싹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