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 댓글로 알려드린대로 이번 회엔 고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무당친구와 자면서 겪었던 무서운 일은 다음으로 미루고. 맛있는 음식일수록  아꼈다가 나중에 먹으면 더 맛있지 않습니까. 고로.

고모는 옛날사람답지 않게 키가 큽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175가 넘지않을까 짐작됩니다. 키가 크니 목도 길고 팔다리도 깁니다. 얼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스무살 초반에 미스 경남인가 어딘가에 출전한 적도 있는데 집안의 반대로 포기했다고 해요.

키 크고 다리가 기니 옷을 입어놓으면 아주 맵시가 납니다. 그중 한복을 입으면 더욱 인물이 삽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게  한복을 입으면 멋있긴 멋있는데 약간 이상하고 묘한 분위기가 난단 말입니다. 음, 뭐랄까, 무당이나 기생같은 그런 분위기. 머리스타일 때문일까요? 고모는 평생 파마라는 것 해 본적 없는 것 같습니다. 늘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를 고수하면서 평소엔 고무줄로 쫑쫑 묶고 다니다가 결혼식이나 회갑연같은 특별한 자리엔 반드시 한복을 입으면서 옥비녀로 쪽을 쪘어요. 한복에 쪽이라, 딱 기생이나 무당의 복색입니다. 그래서 그런 쪽의 요상한 분위기가 났을까요.

고모는 재주가 아주 많은 사람입니다. 만담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 모두다 배꼽을 잡습니다.  노래도 빼어나게  잘했는데(예전 한 방송국의 '주부 가요 열창'에 출전한 적도 있습니다. 선곡을 잘 못해 본선에 뽑히지 못했지만) 그중 특히 타령이나 민요를 업으로 하는 사람처럼 잘 했어요. 그래서 예전엔 환갑잔치같은 데서 초대가수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는데요. 한복을 빼입고 머리를 쪽진 여자가 구성지게 타령을 하면 잔치의 주인공보다 고모가 더욱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격도 좋아서 주위엔 늘 사람들이 들끊었어요. 언니 동생 형님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써놓고보니 고모의 인생은 늘 주목받고 인기받는 '신나는 달밤'같은  나날이었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역경과 고난과 고생과 아픔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고모의 일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뭐냐, 고모의 남편, 즉 고모부는 완전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겁니다. 독자여러분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부부는 반대로 만나야 잘 사는다는 말을 나는 믿지않습니다. 반대로 만났다, 반대로 만났다 어쩌면 그렇게 반대인지. 흑과 백이라고 보면 되어요. 생김새와 성격부터. 고모부는 말랐고 몸집도 작고 조용하고 침착한 학자같은 사람. 고모는 화려한 연예인타입에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고모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많다보니 뭐가 항상 분주하고 바쁘고 시끄럽고 수선스럽고. 그러니 둘이 맞겠습니까.  

둘이 결혼을 한 것은 고모부네가 아주 잘 나가는 동네의 유지.  고모의  훤칠한 인물.어쨌든 결혼을 했는데 첫날부터  지독한 시집살이를 했다합니다. 동네 갑부답게 시아버지는 첩이 열 댓명, 그에 대한 분함과 짜증을 며느리인 고모한테 푸는 시어머니.  무섭고 매운 시집살이에 고모는 매일 눈물바람을 하는 나날이었다합니다.

어찌어찌하다가 서울로 올라가서 살게되었는데  서울살이 역시 녹록치 않습니다.  내 평생 고모네 집처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집은 첨 본다 싶을 만큼, 손가락을 셀 수도 없이 수많은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중 가장 많았던 게 돈 문제.사람들에 둘러 쌓인 고모답게 계를 많이 했어요.  탈 차례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 계가 깨집니다. 그런데도 쉬지않고 계를 합니다.  돈을 빌려주기도 잘 합니다.  수십억(요즘 돈으로)을 떼입니다. 맘이 좋다보니 누가 아쉬운 소리를 하면 거절을 못 합니다. 자기 돈이 없으면  남의 돈을 빌려다가까지  주고는 했는데  십중 구가 떼먹고 도망간 사람들. 한 번은  딱 일 주일만 쓰고 값겠다는 지인의 말을 믿고 전셋돈을 빌려줍니다. 갚긴 뭘 갚아. 온 식구가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어요. 다행히 아는 사람들은 많아서 한동안 남의 집을 전전한 적도 있습니다. 위에 적은 일 때문에 이혼위기까지 간 게 수십번도 더 됩니다. 고모를 거울삼아 나는 이날 이때껏 계라는 걸 해본 적 없습니다. 돈 거래를 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강도도 엄청 많이 당했어요. 고모의 옷차림이 화려하다 보니 돈 많은 사람인 줄 알고  강도들이 줄을 잇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곗돈을 타서 가져오는 길에 강도가 집에까지 따라왔습니다. 망할 놈들, 돈만 뺏어가지 사람은 왜 상하게 해? 고모부 코 뼈가 부러지고  집안이 피바다가 됐습니다. 

남들은 평생 한두번 겪을까 말까한 일들이 고모네에는 사흘들이로 일어납니다. 오죽하면 전화번호를 다 바꾸었을까요. 고모네  전화번호 끝자리 네 자리가 '1129'였는데 112는 범죄신고, 119는 화재신고 번호아닙니까. 재난신고 번호가 다 들어있어서 그렇게 재난이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하고요.

집안이 하루도 조용할 날 없으니 고모부는 그동안 믿고 있던 기독교에 더욱 빠지고 고모부 따라 설렁설렁 교회를 다니던 고모는 왜 이리 내 인생이 힘들까, 왜 고난이 떠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운명을 한 번 따져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답니다. 그래서 관상, 손금, 사주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건데 지난 회에도 얘기했지만 고모부와 이 때문에 충돌이 아주 잦았어요. 그래서 양보해서 손금만 보기로 했답니다.

고모는 열심히 책을 보고 공부를 합니다. 몇 년 공부한 후 자신의 손금을 봤더니 참 대단하더랍니다. 아주아주 세더랍니다. 절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면 안 되는 팔자더랍니다.  기생, 무당 팔자더랍니다. 고모는 나한테 이런 얘기를 안 하지요. 자기 친구들이랑 자기 언니 동생들에게 하는 얘기를 줏어 들은 겁니다.

"내가 기생이 됐으면 장안의 남정네들을 다 발 밑에 두고 살았을 거고  무당이 됐으면 아주 끝내주는 신통력을 발휘해서 돈을 쌓고 살았을 거다..."

미리 정해졌던 성향은 어쩔 수 없는 걸까요. 고모는 몸에 다는 장신구를 엄청 좋아합니다. 나이 들면서 더 많이 답니다. 고모부가 붙혀 준 별명이 '인디언 추장'일 정도로. 정말 추장같아 보입니다.귀걸이는 기본이고  목걸이도 몇 개씩, 팔찌도 몇 개씩, 반지도 열 손가락 다.거기다가  각색의 동물형상 부로치도. 옷도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리거나 반짝이가 붙은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화려해보여도 예사로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집시같달까?

집도 그렇습니다. 독자여러분, 고물상에 가본 적 있으세요? 고모의 집은 좀 깨끗한 고물상이라 상상하면 됩니다. 각종 인형,온갖 모양의 장식물,화분,꽃병,액자,그릇, 옷, 구두, 족자, 책들로 넘쳐납니다. 수납장이 부족하니 옷이며 신발이 모두 밖에 나와 있습니다. 별로 좁지않은 집인데도 물건때문에 사람이 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고모부가 물건때문에 사람이 밖으로 나가게 생겼다고 불평했을까요. 고모부는 최소한의 살림살이를 선호하는 성격입니다. 간결하고 단순한.

그래서일까요. 고모부는  직장을 핑계대고 따로 살았습니다. 고모는 서울에, 고모부는 충청도에. 고모부는 주말에만 올라왔습니다. 가족들과 교회에 가기위해서였습니다. 그 부부는 서울에 올라온 이후 잠깐 빼고는 평생 따로 살았습니다.

'무당 아니면 기생 팔자'란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고모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심플한 게 더 세련되고 멋있다는 내 성화에도 왜 그리 요란하게 주렁주렁 달고 차고 꼈는지, 왜 그리 집안을 늘 무당집처럼 어수선하게 해놓고 사는지. 타고난 성향이 그런쪽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본인도 어쩌지 못했을 것입니다. 타고난 팔자를 거스르고  한 남자와 가정을 이루고 살려니, 더우기 예수 믿는 쪽으로 빠지니까  그렇게 사는 데 온갖  풍상을 겪어야 했던 거였답니다.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힘든 삶을 살아야했던 거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고모는 결심했답니다. 이왕 거슬렀던 운명, 아주 철저히 거슬러보기로요. 그래서 예수를 단단하게 믿기로 결심했답니다. 예전에는 고모부의 성화에 마지못해 교회에 따라나갔는데 믿어보기로 작정하고는 집에서 1시간 걸리는 새벽기도를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답니다. 그렇게 고모는 독실한 예수쟁이가 됐습니다. 그렇게 존경받는 권사님이 됐습니다.

예수쟁이가 됐어도  고모는 여전히 손금을 봅니다. 고모의 말이 손금은 절대 미신이 아니랍니다. 잘 읽어내면 앞으로 당할 횡액을 조심할 수도 있기에 무작정 배척할 수 없는 한 계통의 학문이랍니다. 고모가 나한테 그랬습니다.  60 언저리에 큰 수술을 할 수 있다고.  과연 고모의 말이 맞을까요.

고모한테 여기 사는 한 할배를 데려간 적 있어요.  시골에서 농사를  크게 짓습니다. 돈 안 아쉬운 할배입니다. 근데 한인도 거의 없는 한적한 시골에서 하늘 보고 땅 보고 농사만 지으니 우울증이 심합니다. 재미없어 못살겠다고 늘 하소연합니다. 한국가서 살까 늘 고민합니다.

3년 전, 남편의 성화로 스마트폰을 가짐으로  한국에서도 할배와 연락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무당 친구와 만나고 있는데 그 할배한테 연락이 왔어요. 자기도 한국에 나와있다면서. 고모한테 가보고 싶다는 겁니다. 고모가 내 손금을 기막히게 보더라는 얘기를  몇 번  했거든요. 한국 가서 살면 괜찮을지 어떨지 손금을 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당친구랑 그 할배랑  만나서 고모집에 찾아갔습니다. 가면서 우리 셋은 미리 입을 맞추었습니다. 고모를 속여보기로.

과연 고모가 진짜 손금을 잘 보는 사람인지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고모는 내 남편이 큰 돈 잃은 것, 그리고 내 주위에 사람이 넘쳐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난 그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순전히 내 손금만 보고요. 그러나 그런 것쯤은  엉렁뚱땅 맞출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누구나 살면서 큰 돈 한두번은  잃습니다. 안 잃은 사람 찾는 게 차라리 쉬울 정도지요. 그리고 내 옆에 사람들 들끓는 것도 고모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한국있을 때부터 남한테 잘 퍼주는 성격이었습니다. 고모도 그걸 잘 압니다. 잘 주고  잘 베푸는 편이니 옆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당연지사.

할배와 인사를 나누고 커피 잔을 앞에 놓고 자리를 잡자 나는 고모한테  말했습니다. 짐짓 할배를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이 할배가 미국 간 지 40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하는 일마다 실패랍니다.  현재는 내일 먹을 양식걱정을 해야 할 처지라는데요. 나이 드니 더욱 살림이 곤궁해지고 힘들어서 이제 한국에 나와 살아보실까 하는데 고모가 보기엔 어떻겠어요?"

 고모가 할배의 손바닥을 들여다봅니다. 할배와 무당친구가 고모의 입을 주시합니다.

"아닌 것 같은데...."

고모의 말인즉슨 절대로 할배의 살림이  곤궁하지 않다는 겁니다. 돈이 넘친다는 겁니다. 그런데 외롭답니다. 아주아주 외롭답니다. 금은보화가 깔린 넓은 집 위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형상이랍니다.우와, 백프로입니다. 백프로 맞았습니다. 나는 고모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게됐습니다.

할배를 보내고 그날 저녁, 고모집에서 무당친구랑 잤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오싹한 일을 겪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