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보게 된 고모집은 반 지하였습니다. 반 지하지만 세 개의 방과 거실, 화장실, 부엌이 제법 크고 쓸만하더군요. 급하게 머물 곳을 찾다가 찾은 곳이라고 합니다. 첨엔 잠깐만 기거하다 나가야지하고 임시로 얻은 거처였는데 지하철역도 가깝고 동네도 조용해서 그냥 눌러앉게 되었다고 해요.

지난 회에 쓴대로 고모와 고모부는 평생 따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고모가 직장을 은퇴한 후(고모가 영어를 잘합니다. 미군부대 식당에서 매니저일을 했습니다.) 고모부가 살고 있는 곳으로(고모보다 직장을 몇 년 일찍 은퇴한 고모부는 시골로 내려가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합치기로하고 서울살림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쉽지않았다고 합니다.  부부가 따로 산다고 입을 대는 남의 눈을 봐서라도 억지로라도 그곳에 정 부치고 살아보려 했으나 산과 풀과 들판과 하늘 뿐인 시골생활이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고모와는 맞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 년도 안 되어서 보따리를 싸가지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는데 그때 급하게 얻었던 거처가 바로 위에 썼던 반 지하집입니다.

 
고모가 손금만 보고 자신의 신상을 거의 알아맞추자  신통방통했던지 '복채'까지 주고 할배가 떠나고 난 후 우리는 나가서 저녁을 먹었지요. 그리고 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때가 밤 10시 쯤이었습니다.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거의 만나지 못했던 고모와 무당친구는 이야기하느라 바빴고 나는 양치하고 얼굴을 씻은 후 고모의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스웨터와 고무줄바지였어요. 덩치가 큰 고모의 옷은 나한테 헐렁헐렁해서 아주 편했어요. 근데 마음은 편치않았습니다. 지난 회에 말한대로 집안에 가득가득 들어찬 물건들 등 어수선한 분위기때문이었습니다. 꽤 큰 집안이었는데도 빈틈 한 군데가 없었어요. 바늘 꽂을 자리 하나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고 벽에 걸리고 쌓여있는 살림살이들...

그동안 내가 쓴  칼럼을 다 읽은 독자들은 알 겁니다, 내가 물건 쌓여있는 걸 얼마나 못 견뎌하는지. 정리정돈에 얼마나 목숨을 거는지. 하다 못해 냉장고도 텅텅 비어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였습니다.  간단하고 간결한  생활을 고집하는 나는 고모집이 너무나 불편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고 안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무당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고모집에서 자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 호텔로 갔을 겁니다. 더욱 더 나를 괴롭혔던 것은 거실 한 구석에 쌓여있는  과일이랑 북어랑 과자(유과 등 한과)막걸리였습니다. 웬 것들이냐고요? 세상에만상에,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해를 못 할 겁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무당친구가 바로 전날 굿을 했다고합니다. 굿하는 제단에 바쳐졌던 것들이라고 해요. 그런데 왜 그것들이 고모네에 와 있냐고요?  친구가 고모한테 택배로 보냈으니까요. 북어와 과일 외에 떡도 많이 보냈는데 떡은 냉장고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을 자리가 없으니  그냥 거실 한 쪽에다 쌓아둔 것입니다. 친구는 이번 뿐만 아니라 굿을 할 때마다 제물들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고모는 그 과일과 떡과 과자들을 맛있게 먹는다고 합니다. 보기만 해도 께름칙하고 찜찜한 것들을 어떻게 먹어요.  부정타면 어떡하려고.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내게 고매하신 권사님인 고모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음식 버리면 죄 받는다. 내가 안 갖다먹으면 다 버릴 음식인데..."

아닌게 아니라 친구는  그동안 그것들이 처치곤란이었다 했습니다.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하는 친구에겐 막걸리가 더더욱. 그런데 잘 먹어주는 사람이 생겨서 무척 좋답니다. 그래서 굿이 끝나면 거기서 나온 모든 음식들을 고모한테 보낸다는 것입니다.

참 낭패스러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집이 지하라서 그런지 들어설 때 뭔가 음습한 느낌이 있었는데 굿 제물까지 쌓여있는 집안이라니. 오늘 내가 이 집에를 잘못 왔구나. 할배가 나갈 때  나도 그냥 가버릴 걸.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긴 시간을 보낼 욕심에 괜히 자고 간다했다고 나는 후회로 가슴을 쳤습니다.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내가 그러고 있거나 말거나 고모와 친구는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혼자 방으로 들어가긴 그렇고 나도 옆에 앉았습니다.

잠깐이나마의 고모 시골생활 이야기, 무당친구의 자녀 얘기, 시부모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미국 생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해서 좀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밤 11시가  넘었어요. 고모는 작은방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방을 쓰라는 고모의 배려지요. 안방도 역시 꽉 들어찬 물건으로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 어쨌든 안방에 무당친구와 둘이 되었습니다. 나는 일단 누웠어요. 한국에 도착한지 며칠이 지났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잔 난 쓰러질듯 피곤했거든요. 누우니까 천정에 달린 형광등 불빛이 직통으로 눈을 찔러서 아프고 괴로웠어요. 그래서 형광등 불을 끄고 화장대 위에 놓여 있는 작은 탁상용 불을 켰습니다.

얼굴을 씻고 들어온 무당친구는 고모의 화장품을  몇 개 바르더니 주섬주섬 머리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제서야 나는 알았어요. 친구가 그때까지  긴 머리를 뒤로 틀어 올리고 있었다는 걸.  긴 머리 보기 싫다고 산뜻하게 잘라버리라 하니까 굿할 때는 반드시 쪽을 쪄야한다나요? 커다란 핀과 예닐곱개의 실핀을 뽑아내자 숫말의 갈기같은 머리채가 출렁, 하고 허리까지 내려와요. 검고도 검은 머리채였습니다. 흑단같은 머리채는 거의 방바닥에까지 닿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으나 친구에게 그 머리채를 어떻게 하라고 말 할 수 없었지요. 하루종일 그 숱 많은 머리뭉치를 올리고 있었으니 얼마나 무거웠으며 답답했겠어요. 하필이면 친구는 화장대를 등지고 앉아있었습니다. 긴 머리채가 화장대 거울에 비치는데 딱 공포영화의 한 장면같이 굉장히 괴기스러웠습니다. 그걸 보는 내 몸이 저절로 움추려들었습니다. 내가 움추려드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는 신내림받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지지난 회에 썼을 겁니다.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그에 대해 묻지않았다고. 친구가 무당된 걸 인정하는 게 싫어서 말이죠. 근데 친구가 먼저 입을 여는 것입니다. 신굿을 받았던 얘기에 이어 처음 작두를 탔던 얘기도 했습니다. 친구를 시험하러 왔다가 호통을 당하고 줄행랑 친 손님 얘기도.

밝고 환한 분위기에서 들었다면 엄청 흥미로웠을 얘기, 그러나 나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으스스한 기분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차마 친구에게 내 기분을 얘기할 수는 없었어요. 왜냐면 나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거든요.  친구는 만날 때마다 그동안 있었던 온갖 얘기를 다 털어놓았었고 나는 몇시간이고 군말않고  다 들어주었더랬습니다. 여지껏 그래왔는데  듣기 무서우니 그만 두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가 상처를 받을 것 같아서.

한참 얘기를 하고있는데 (난 눕고 친구는 화장대를 등지고 앉아서)갑자기 거실로부터 댕댕댕,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길가에 내다놔도 아무도 안 주워갈  고물 괘종시계가(고모가 처녀 때 첫월급을 타서 산 시계랍니다. 그렇게 오래됐어도 고장이 안 나니 버릴 수가 없다고 이사갈 때마다 끌고다녔어요.) 자정을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온갖 살림살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방안, 희미한 불빛 옆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무당과 함께 듣는 열 두 번의 괘종소리, 정말로 무서웠습니다. 나는 이 공포의 시간이 얼른 지나갔으면 싶은 생각에 친구에세 재촉했습니다.

"야야, 이야기는 내일 듣기로 하고 그만 자자, 밤이 너무 깊었네..."

그때였습니다! 그때까지 꽉 닫혀있던 방문이 혼자 스르르 열린 것은!(아이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등에 소름이 쫙 돋네!) 그리고 그 열린 문으로 찬바람이 화악 들어오는 거예요. 그 찬바람은 친구의 긴 머리카락을 몇 줄기 흩날리게 했고 누워있는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뭐랄까, 회전하는 선풍기가 내 쪽으로 향했을 나는 바람같은 그런.

나는 누운 자세에서 얼어붙었습니다. 꼭 닫혀있던 방문이 저절로 열리다니! 그리고 누가 일부러 일으키는 것 같은 찬바람! 머리끝이 쭈뼛 섰습니다. 더 무서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어요. 친구가 고개를 문쪽으로 돌리는 것 같더니  낮고 음산한 목소리로 말하는 겁니다.

"어서 오세요..."

열린 문쪽을 향해서. 완전히 소등된 컴컴한 거실이 있었을 뿐 그쪽으로는 아무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정말로 소름끼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퍼뜩 든 생각, 앞으로 더 무서운 광경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기 전에 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 생각이 드는 동시에 나는 불에 덴 듯 일어나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요!)문을 닫았습니다. 쾅, 소리가 나게 힘껏. 그리고는 내 자리로 돌아와서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제발 꿈이었으면 싶은 생각밖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친구쪽으로부터는 아무소리도 나지않았어요.  나는 이불을 좀 내려서 친구의 거동을 살폈습니다.  친구는 화장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긴 머리를  빗고 있는 친구. 거울속에서 내 눈과 친구의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친구가  나를 보고  씨익, 웃었습니다.  친구의 웃음에  머리끝이 다시 쭈뼛 서는데  동시에 또 스르르 문이 혼자 열렸습니다.이번에는 고개를 문 쪽으로 돌리지도 않고 (누가 온지 벌써 알고 있다는 듯 ) 친구가  아까처럼 낮고 음산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날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잘 나지않습니다. 또 벌떡 일어나서 문을 쾅 닫고는  다시는 열리지 못하게   물건들을  손에 집히는대로 잔뜩 쌓아놓던 기억밖에. 잠에 곯아떨어졌는지 너무 무서워서 기절을 해버렸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눈을 뜨니 새벽이었습니다. 날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어요. 친구는 옆에서 곤히 자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여전히 풀어헤친 채였습니다. 부엌에서 물소리와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부지런한 고모가 벌써 일어난 것 같았습니다. 나는 뛰어나갔습니다.

"안방문이 고장났나봐요. 어젯밤, 두 번이나 저절로 열리던데요"

고모가 그럴리 없다는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그 탄탄하게 물리는 문이 왜 저절로 열려? 여지껏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고모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스윽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누가 문을 밀고 들어온 건 아니고?"

고모 말대로 누가 문을 밀고  들어왔던 것일까요. 친구는 무엇을 봤길래 어서오세요, 하고 인사를 했을까요. 내가 잠에 곯아 떨어졌던   기절을 했던  깨어있지 않던 그 사이에 친구는 무엇을 했을까요. 물론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봤지요. 친구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