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시리즈’, 다들 재미있게 읽고 계신가요? 뭐가 확실히 있는 것 같지요? 직접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 같지요?

몇 차례에 걸쳐 글을 쓰면서 책인가 신문에서 본 한 구절이 생각났었습니다. 나이 들면 세상사의 희비에 휘둘리지않는다는 글입니다. 나이가 들게되면 그 어떤 일이 눈 앞에 다가와도 크게 놀라거나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속상해하지 않는대요. 긴 세월을 살면서 온갖 사건,사고를 겪다보니 웬만한 일은 대수롭지않게 넘길 수 있는 내성이 생겨서 그렇답니다. 나 또한 그럴 줄 알았지요. 55년동안 내가 겪은 풍상도 만만치 않거든요. 특히 몇 년전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두 인간한테서 배신당한 후부터는 웬만한 일은 그냥 덤덤히 넘어갈 수 있게됐어요. 담대해지고 무뎌진 겁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무당 이야기를 쓰면서는 자꾸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그냥 넘어가거나 무시해지지가 않고 머리에 남아서 몇날 며칠 골똘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겪고 들었을 땐, 그런가보다 금방 잊어버렸던일이었는데 글로 정리하다보니까 귀신이라는 것의 실존유무도 궁금해지고요. 글을 쓰면서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니 몸소 겪고 귀로 들었던 그쪽 세계 이야기가 제법 됩디다.또한 주위에 도 더러 있고요.  이 세상에는 참 신기하고 기묘하고 기이한 현상들이 알게 모르게 꽤 많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나처럼 글로 엮어내는 재주가 없으니 그냥 가까운 사람들하고만 공유하고말았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들을 모두 글로 풀어놓자면 앞으로도 열 번은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댓글에 밝혔듯이 이제는 밝고 재밌는 이야기만 쓰려합니다.

한동안 불면증에서 해방되었다가 요즘 다시 잠 못자서 고생한다니까 헬렌이라는(미시유에스에이를 통해 만난)친구가 지청구합니다.

"언니, 구신 이야길 자꾸 쓰니까 그렇지, 언니. 그런 이야기들속의 어두운 기운이 알게 모르게 언니를 지배하는겨. 이제 그만 써요!”

오케이. 알았시요. 이제 그만 쓸께. 그렇지만 미리 한 독자들과의 약속은 지켜야겠지요. 두 번 더 쓴다했으니까 두 번은 쓰고난 후 끝내야지요.자, 이제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올해 1월에 한국에 나간 것은 태숙이라는 친구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작년에 친구가 그랬어요.

“우리 딸내미, 꽃 피고 새 우는 내년 봄 무렵에 결혼할 거다. 참석해 줄 거지?”

물론 나는 흔쾌히 승낙했지요. 만사 제치고 가겠노라고. 그랬는데 갑자기 연락이 온 거예요. 1월로 날짜를 바꾸었다고.이런 낭패가 있나. 남은 휴가도 없고(작년 가을, 갑자기 든 한기때문에 병원다니고 어쩌고 하느라 다 써버려서)독자여러분도 알지요, 한국의 겨울, 특히 1월의 추위가 얼마나 지독한지. 어릴 때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한겨울에도 변변한 양말짝 하나 얻어 신지 못하면서 자란 나는 추위에 아주 취약합니다. 그래서 못 나간다고 통보를 했지요. 그러나 가만 생각하니 이건 아니다 싶은 겁니다. 친구가 우리 친정부모한테 얼마나 극진하게 했는지가 떠올랐던 거였어요. 하나뿐인 딸인 내가 미국으로 들어간 후 나 대신 친구가 딸 노릇을 했답니다. 각종 경조사에 먼 길 마다하지않고 달려가 손님접대 다 하고요.그래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부랴부랴 비행기 표 끊어 결혼식에 참석했고 못 보던 친구들도 덤으로 만났고 먼 데서 와 줬다고 차비까지 챙겨줘서 잘 받았습니다.

고맙기도 하지. 결혼식 마친 후 손님접대도 바쁠 텐데 친구는 내가 머무는 동생집을 찾아왔습니다. 나랑 같이 하룻밤 자고 싶다면서. 내가 물었지요. 갑자기 날짜를 바꾸게 된 경위를요.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 ‘보는 사람’ 이 우리가 정해놓은 날짜가 안 좋다면서 1 월로 바꾸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핀잔을 주었지요. 

“아이고, 바꾸어봤자 그 날이 그 날이지. 점쟁이 말 한 마디에 미리 정해진 날짜까지 바꿔? 참 대단하구나...”

친구가 손사래를 쳤어요.

"아니다. 가급적이면 그 사람들 말을 듣는 게 좋지. 이 세상에는  인간말고 뭔가가 있는 것 같아. 아주아주 신기한 일을 겪은 후부터는 부정을 할 수가 없겠더라..."

그 '신기한 일'을 겪은 건 지금으로부터 몇 십년 전이라고 했습니다. 따로 살고 있는 아버지가 꿈에 자꾸 나타나더랍니다. 아버지가 대문밖에 서서 친구를 부르더랍니다. 당시 친구집 대문이 사람이 밖에 서면 몸 윗 부분과 다리 부분이 보이는 함석재질로 된 것이었다고 해요. 아버지는 들어오지 않고 머리 부분과 다리를 보인 채 대문 밖에 서서  "태숙아. 아버지 춥다, 아버지 춥다"라는 말을 연속 하더래요. 잠을 깨니 꿈. 꿈치고는 너무나 생생하고 이상하더랍니다. 그날로 아버지를 찾아가고 싶었지만 당시 임신 중이라 몸이 무거웠었던 친구는 남편을  보냈답니다. 퇴근길에 아버지집에 들러보라고. 남의 집에 세들어사는 아버지라 전화가 없으니  찾아가는 것밖엔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옛날입니다.

이틀이나 연달아 아버지 집에 갔다온 남편이 그러더래요. 아버지가 안 계시더라고. 아버지가 지방으로 일을 자주 나갔기에 이번에도 일 때문에 다른 데 가 계시겠거니, 친구는 애써 안도했답니다. 그런데도 아버진 계속 꿈에 나타났고 연락할 길이 없는 친구는 속만 탔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게됩니다. 교통사고로 숨진 중년남자가 있는데 와서 가족인지 확인해달라는 연락. 눈물을 흩뿌리며 달려간 무연고자 시체실. 아버지가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계시더랍니다. 돌아가신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고 했답니다. 아버지가 주민등록증이나 기타 증명서를 지니고 있지 않았기에 지문으로 신원을 찾아내느라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것입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귀신의 존재를 믿게 됐어. 그런 쪽 사람들 말을 좀 신뢰하게 됐고. 맹신은 아니지만 안 좋다는 건 가능하면 피하는 게 좋지.  결혼식 날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는 찜찜해서 도저히 강행할 수가 없더라..."

나는 그 ‘보는 사람’ 이 안 좋다는 결혼을 했던 케이스입니다. 미씨 칼럼에 두어번 소개한 친구 희주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아주아주 오래전의 어느 겨울, 희주는 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화장을 하고 있었다합니다. 때마침 이웃집 봉화할매가 마실을 왔더래요. 꽃단장을 하는 희주를 보고 할매가 어딜 가느냐고 물었을 것은 당연지사. 희주가 대답했대요. 계숙이 결혼식에 간다고. 그랬더니 할매가 펄쩍 뛸 것같이 놀라면서 소리치더랍니다.

"아이고, 아이고. 그 결혼하면 안 된다! 이혼하게 될 거다! 말려야 한다. 말려야 한다!"

남의 기쁜 잔칫날 모래뿌리는 소리도 유분수지. 희주랑 희주엄마가 할매보고 막 뭐라고 했대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러나 할매는 아랑곳않고 마구 소리치더래요.

"계숙이는 '코쟁이'하고 결혼할 팔자다! 이번 결혼은 절대 하면 안 된다! 반드시 깨지고 말거다!"

참 입도 무거운 내 친구, 희주입니다.  한 번도 내색을 않고 있다가 내가 미국인 남자와 재혼한 후 한국에 신혼여행 겸 나갔을 때, 그때서야 이 얘기를 털어놓는 겁니다. 예전, 봉화할매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정말로 신기하게도 맞아떨어졌다고. 그 할매가 영험했다고.봉화할매라면 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전문적인 무당은 아니고 그냥 약간의 신기가 있다는 할매였습니다. 그 약간만의 신기를 가지고 내 미래를 백프로 알아맞추었다니 참 신기하네요. 그러고보니 그 할매랑 관계된 기억이 있습니다.

어릴 때 우리집은 동네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을이랑 약간 떨어진 외딴집이었어요.내가 열 두어살 무렵의 어느날 밤입니다. 엄마 아버지랑 동생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혼자 깨어있는데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내가 잠을 잘 못잔 것 같네)누가 우리집 대문을 마구 흔드는 소리가 났어요. 가로등도 없이 캄캄한, 그야말로 칠흑같은 어둠이 겹겹이 천지를 둘러 싼 몇 시인지도 모르는 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참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혼자 나가서 대문을 열었던 겁니다. 문을 열자마자 봉화할매가 쑤욱 들이닥쳤습니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얼굴에는 땀투성이를 한 채. 놀라운 것은 양손에 지푸라기를 잔뜩 들고 있었다는 겁니다.봉화할매는 내게 찬물 한 그릇을 청했습니다. 물을 갖다주자 정신없이 들이켰습니다. 그리고 대문 밖을 향해 소리치는 겁니다.

"자꾸 따라오지 말고 썩 돌아가거라! 돌아가거라! 제발 내 뒤를 따라오지 말라곳!!"

참 간도 크지, 나는 고개를 빼고 대문 밖을 기웃거려봤습니다. 그러나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뿐, 그 누구의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할매는 물 한 대접을 더 마신 후 양손에 든 지푸라기를 계속 비비면서 나갔습니다. 계속 자기를 따라오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나는 할매가 사라져간 대문밖을 몇번이고 확인했습니다. 물론 내 눈엔 그 어떤 것도 보이지않았습니다.

그날 그 할매를 따라갔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할매는 어떻게 내가 이혼할 것을 알았으며 외국인과 결혼할 것을 알았을까요. 시골 깡촌에 살면서 외국인을 한 번도 본 적도 없었을 할매가 말입니다. 재밌는 것은 할매가 말리는 그 결혼을 했기에 내가 미국에 올 수 있었고 '코쟁이'랑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그 결혼을 안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당시만 해도 국제결혼은 굉장히 드문 일, 그래도 내가 지금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할매한테 물어보고 싶지만 참 애석합니다. 봉화할매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