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잘 알 겁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내가 매일 걷기 운동을 하는 사실을.
회사 건물 바로 뒤, 몇 발자국 안 가서 걷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산책로가 있어요. 자전거나 조깅하기에도 아주 좋은.
산책로는 작은 야산 가운데를  관통해  벌판을 지나 새크라멘토 강변 옆으로 길게 뻗어져있습니다. 새크라멘토 다운타운까지 이어져 있다합니다.  야산을 지나는 산책로에는 빽빽히 우거진 풀과 나무와 바위와 작은 개울이 있어요. 또한 사시사철 물이 고여있는 늪도 양옆으로 있습니다. 도심 한 켠에 이런 천연의 장소가 있다는 게 참 놀랍지요.

숲과 나무가 우거져있는지라 여러 동물들도 삽니다. 작은 동물들입니다. 토끼와 다람쥐, 그리고 언젠가는 작은 사슴( 노루?)본 적이 있습니다.
늪이 있다보니 파충류도 많이 서식합니다. 개구리와 두꺼비와 도마뱀 등. 물론 온갖 종류의 뱀들도 살아요. 산책로를 걷다보면 구불구불한 상태로  길게 늘어져 있거나  또아리 틀고 있는 뱀을  마주치기도 합니다.

뱀 좋아하는 사람있을까요. 특별한 취향과 취미를 가진 이들이 애완용으로 키우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할 겁니다. 또한  땅군들은 생업을 위해서 뱀을 취급해야하니까 좋아할 수도 있겠고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싫어하고  무서워하고 혐오하는 게 뱀일 겁니다. 맞아요. 나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뱀입니다.  지렁이나 지네 등 긴 건 다 싫은데 그 중에서도 뱀은 정말로 싫습니다. 생각만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무슨 팔자일까요. 그렇게 싫어하는 뱀을 자주 봅니다. 위에 말했지만 걸으면서 뱀을 만나는 것입니다. 해마다 서너번씩 빠지지 않고 보지요. 올해 역시 한 달전 쯤, 아스팔트로 만들어진 산책로에 처억 늘어져서 햇볕바라기를 하는 뱀을 목격하고 놀란 적 있습니다.

뱀을 볼 때마다 놀라서 까무러칩니다. 소름이 쫙 끼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온 몸으로 밀려옵니다. 순간적으로 얼음처럼 뻣뻣이 굳었다가 곧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갑니다. 언젠가 한 번은 뱀을 발견하고 뒷걸음질 치다가 다리가 꼬여 옆으로 넘어졌었습니다. 그바람에 선글라스가 땅에 떨어져서 부서졌습니다. 지인으로부터 생일선물로 받은 선글라스! 아까운 선글라스!

그래도 내가 걷는 것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 무엇보다 혼자 생각하고 사색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에. 산책로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뱀이 무서우면서도 위의 두 가지 이유로 걷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뱀이 동면하는 계절인 겨울을 기다립니다. 겨울에는 뱀 걱정없이 활개치며 맘 놓고 걸을 수 있으니까.

이야기는 지난 주 화요일로 돌아갑니다.
그날도 점심시간에 걷기 위해 라커룸으로 갔습니다. 운동기구도 갖춰져있지 않으면서 회사에 왜 라커룸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게 거기 있습니다. 비닐 커튼이 쳐진 샤워룸도 옆에 같이 있습니다.
라커룸 한 칸에 선글라스와 양산과 운동화와 타올과 5파운드짜리 아령을 넣어두고 매일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 운동화는 그냥 바닥에다 놓아두었네요. 흙이 묻은 운동화를 선글라스와 같이 두는 게 찜찜해서입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양산과 선글라스를 꺼낸 후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신으려고 무심코 집어드는데 뭐가 바닥에 있습니다. 엄마야! 이게 무엇입니까. 작은 뱀 한마리가 운동화 밑에서 튀어나오는 겁니다. 나는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습니다. 타일로 만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지요.

라커룸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하필 아무도 없었던 듯했어요. 내가 벼락같은 비명을 질렀지만 그 누구도 와 보지않네요. 어쨌거나 뱀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젤 싫어하고 무서워하고 혐오하는 뱀.  아기뱀이었습니다. 굵기와 길이를 표현하자면 볼펜만할까요. 태어난지 몇 달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작은 뱀이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생물체들의 새끼는 귀엽다지만 뱀은 아닙니다. 새끼라도 징그럽고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무슨 이유로 이 뱀이 라커룸까지 진출(?)하게 된 걸까요?

산책로가 회사 뒷문이랑 바로 지척이다보니 심심찮게 뱀들이 출물한다고 합니다.  청소부가 뱀이 배큠 안에 들어가 있는 줄 모르고   스윗치를 눌렀다가 산산히 조각난 뱀의 사체를 거두었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고 실제로 회사 파킹장에서 독사를 본 적도 있습니다. 바로 내가 그 독사를 본 장본인입니다. 

6, 7년 전, 15분의 휴식시간에 파킹장을 어슬렁거리며 산책하는데 슬리퍼를 신은 내 양다리 사이로 슝~ 하고 뭐가 빠르게 지나갔지요.  그 광경을 근처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동료들이 보았습니다. 동료들은 내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지나 풀숲으로 숨은 뱀을 가서 살펴보고  독사라는 걸 알아냈습니다.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지요. 파킹랏이 봉쇄되었고 에니멀 컨드롤에서 사람들이 나와 그 뱀을 생포해갔습니다. 

그 독사 사건은 두고두고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되었습니다. 정말로 내 다리에 닿을 듯, 스칠 듯  아슬아슬하게 지나갔거든요. 내가 엉겁결에 그 뱀을 밟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되었나. 그 후부터는 회사 바깥 곳곳에 '독사 조심'이란 팻말이 붙었습니다.

얘기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어떻게  뱀이 안에까지 들어오게 됐을까요. 워낙 작은 새끼다보니 문 틈으로 들어왔거나 아니면 샤워룸 수채구멍으로 들어왔다는 얘기가 성립됩니다.  하여튼 나는 엉덩이가 아픈 줄도 모르고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마침 가까운 데서 멕시코인 여자 청소부가 유리를 닦고있었어요. 나는 그녀에게 라커룸에 뱀새끼가 있다는 걸 알렸습니다.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얼른 라커룸으로 갑니다. 나도 뒤따라 갑니다. 그녀는 몸을 굽혀서  아직까지도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뱀을 살펴보더니 별 거 아니라는 듯 피식 웃었습니다.

"독사 아니야. 그냥 둬. 지가 알아서 도망 가겠지"

독뱀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른이든 새끼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뱀이라는 자체가 두렵습니다. 그 두려운 존재랑 같이 라커룸을 나눠 써야 할판입니다.  쫒아내 주든지 어떻게 조치를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별 일 아닌 걸 갖고 수선떤다는 듯 그냥 바람처럼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별 수 없었습니다. 뱀 때문에 십년을 하루같이 해오던 일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뱀을 그냥 두고 걸으러 나갔습니다. 걸으면서 나는 간절히 바랐습니다. 제발 좀 도망가거라...
간절히 바라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돌아오니 뱀이 같은 자리에 그냥 웅크리고 있습니다. 하긴 타일로 사방팔방 막아진  라커룸인데 어디로 가겠어요. 뒷문으로 나가는 방법밖에 없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험난합니다. 화장실을 지나야 하고 긴 복도를 지나야 밖으로 나가는  뒷문이 있거든요. 아기뱀이 그 통로를 알아낼리 없습니다. 오, 뒷문을 통하지 않고도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수채구멍인데  설사 그 수채구멍으로 뱀이 들어왔다해도 다시 거길 통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어요. 여간 영특하지않고는 알아내지 못 할 겁니다.

다음 날.
뱀이 없어졌기를 기대하며 라커룸에 갔지요. 내 바람과는 달리 뱀은 아직도 거기 있었습니다. 내 운동화 밑에. 라커룸 바닥에 있는 유일한 물건이, 몸을 감출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 내 운동화밖에 없었거든요.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그러니까 사흘째도 뱀은 도망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라커룸 문을 열기가 겁이 납니다. 정말로 죽을 지경입니다. 누가 좀 나서서 뱀을 처리해 주길 바라봅니다만 그 라커룸을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오직 나밖에. 움직이지를 않아서 날이 갈수록 풍선처럼 몸들이 부풀어 오르는 게 보여지지만 단 한 사람도  산책로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요.  점심시간엔 너도나도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정신들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나가서 누굴 불러올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닙니다만 독뱀도 아닌 새끼뱀 한 마리를 가지고 야단법석 떤다고 핀잔을 받을까봐서요. 위의 청소부가 그랬던 것 처럼요.

어떡하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도 먹을 것도 없는 사방이 꽉 막힌 곳입니다. 까닥하다간 탈수되어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뿐 어떻게 해볼 용기가 나지않았습니다.

나흘 째인 금요일, 역시나 뱀은 운동화 밑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뱀이 기진맥진한 것 같았어요. 운동화를 들어올려도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쏜살같이 도망가지 못하고 슬슬 기어서 구석으로 몸을 피합니다.  그대로  두면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회사는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소등을 합니다. 어둠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게 될 뱀.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굶주림과 목마름이 걱정됩니다.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못한 뱀입니다. 곧 죽을지도 몰라요. 아무리 혐오스런 파충류지만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게 살아있는 것에 대한 예의, 뱀에 대한 예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손 닦는 종이를 왕창 뜯었습니다.  그리고 눈 질끈 감고  몇 겹의 종이로 싸서  뱀을 집어 올렸습니다. 힘이 빠진 뱀은 저항하지 못하고 내 손 안으로  딸려들어오는 것 같았지만, 으아! 금방 꿈틀꿈틀 요동을 쳤습니다. 그래서 하마터면 떨어트릴 뻔 했습니다.  화장실을 나가 복도를 걸어나갈 때까지 뱀은 계속 내 손 안에서 몸부림을 칩니다. 축축하고 미끄덩거리고 물컹물컹한 그 물체의 느낌. 그 느낌은 정말로 끔찍했습니다. 정말로 억만금을 준다해도 다시 경험하고 싶지않을 만큼. 몇 겹의 종이가 뱀과 내 손 사이에서 방패막이가 되고 있긴 했지만 뱀의 움직임까지 막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거기서 중단하면 뱀은 꼼짝없이 죽어야만 합니다. 고통 중 가장 극한 고통이 아사라고 하던데 아무리 말 못하는 미물이라도 그렇게 극한 고통을 겪으며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겁니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내 눈 앞에서 죽어가는 걸 뻔히 보면서 모른체 할 수는 없는 겁니다.  하늘에 머리를 둔 사람이라면.

어쨌든 그날 나는 뱀을 살렸습니다. 금방이라도 던져버리고 싶은 걸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뒷문까지 나가 풀밭에다 뱀을 놓아준 것입니다. 내 손안에서 미친 듯 몸부림치던 뱀은 풀밭에 몸이 닿자마자 쏜살같이 도망쳤습니다. 나는 뱀이 사라진 풀숲을 향해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바보 뱀아. 다시는 그런 멍청한 짓 하지 말아라.

그날 하루종일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준 제비처럼 그 뱀이 내게 뭐라도 가져다줄 것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가져다주면 어때요. 한 생명을 살린 게 어딘데요. 나는 뱀에 대해 예의를 다 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예의를.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고 소중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