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쓴대로 올 1월,  한국에 나갔던 것은 친구, 태숙이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8일 예정으로 나갔지만 가는 데 하루, 오는 데 하루 걸리니까 정작 한국에서 머문 날은  엿새입니다.  내가 원래 궁둥이가 가볍기도 하지만 '생선하고 손님은 사흘만 지나면  냄새난다'는 아버지의 평소 생활철학을 받들어 어딜 가든 오래 있지 않습니다. 하루 아니면 이틀, 길어야 사흘, 머문 듯 만 듯 하다가 바람처럼 떠나옵니다.

지난 방문에서도 큰동생네서 사흘, 서울 호텔에서 하루, 부산 친구집에서 하루, 그리고 내 글에 몇 번 등장했던 친구, 희주집에서 하루를 머물 것을 계획하고 갔지요. 그런데 큰 동생네서 지낼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몇 십년만의 한파가 들이닥쳤다더니 큰동생네 집의 수도관이 몽땅 얼어버린 겁니다. 화장실 변기물은 물론 먹을 물도 없는 난감한 상황. 그래서 할 수 없이 작은 동생집으로 가야했습니다.

큰동생부부는 미안해하고 아쉬워했지만 오히려  잘 되었다 싶었습니다. 지난번 글에 쓴대로 큰 동생네 가족이 살고있는 집은 원래 엄마집, 엄마 초상치던 날 저녁 그렇게 무서움에 떨고 난 뒤부터는 그집에 가는 게  썩 내키지가 않는 겁니다.  그날밤처럼  크게 무섭지는 않는데 뭔가가 안 편합니다. 정리정돈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큰올케때문에 집안이  깨끗하지않은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설명할 수 없는 무엇때문에 그 집에는 가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얼씨구나하고 작은동생네로 바로 갔지요.

이튿날, 무당친구가 나를 보러 내려왔습니다. 서울에서 경상도 구석까지. 태숙이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날 만나기위해서였습니다. 서울에서 결혼식장인 대구로 바로 갈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러나 친구는 늘 그랬듯이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멀어도 개의치않고 나를 보러 온 것입니다. 한국에 나갈 때마다 친구는 산 넘고 물 건너 나를 만나러 옵니다.  내가 서울에 머물 때는 서울역까지,(반대방향 지역에 살지만 서울지리라곤 서울역밖에 모르는  날 위해)내가 고향집에 머물고 있으면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몇 시간 걸려서.

예전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먼 길마다하지 않고 찾아준 친구가 참 고맙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친구를 만나 또 하나 느낀 게 있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굉장히 열과 성의를 다한다는 점입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요.

직장때문에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큰동생이 와서 모두 나가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 먹는자리에서 친구가 동생에게 차를 가져왔는지 확인을 하더니 얼토당토않은 부탁을 합니다. 내일 새벽  네 시에 자기랑 산에 좀 같이 가잡니다. 기도를 드려야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  새벽에 기도하러 산에 가야한다는 친구.

친구가 데려다 달라고 하는 산은 명산이긴 합니다.  사명대사가 기거하며 도를 닦았다는 큰 사찰이 있는. 사시사철 계곡의 물이 마르지않는. 그러나 깊고도 깊고 높고도 높은 산이기에 시내랑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차로  1시간은 넘게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 먼 곳을  추워죽겠는 새벽에 어떻게 갑니까. 나는 동생이 거절을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순순히 승낙을 합니다. 오히려   십분 전 네 시에  전화로 깨워주겠다고까지 합니다.  자기는 새벽잠이 없다면서.

참 어이가 없습니다. 동생이나 친구나. 나는 혀를 차면서 친구에게 거듭 물었습니다. 꼭 가야하냐고요. 중국을 거쳐 백두산으로도 몇번 기도하러 갔다 온 걸 알고는 있었지만(카스에 사진을 올렸기에 알았지요) 엄동설한 새벽에 기도하러 산에  간다니 믿을 수가 없어서요. 좀 유난이다 싶어서요. 가야 한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명산을 옆에 두고  게으름을 피우면 자신이 모시는 할아버지 신이 화를 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오, 여기서 잠깐 희주가 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네요. 

무당친구랑 태숙이랑 나랑 희주랑은 두루두루 아는 친구들입니다.  모두 나를 통해서 알게 된 사이입니다. 물론 무당친구가 어찌어찌하여 신을 받았다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갔을 때 무당친구랑 희주랑 셋이서 잠깐 만났지요. 희주는 친구가 무당되고나서 처음 보는 것입니다.  셋이서 만날 기회가 흔치않았는데 거의 십년만에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무당친구를 보는 희주의 표정이 묘했습니다.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하다가 끝내는 입을  다뭅니다. 손에 쥐어주지 않으면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을 못하는 나와는 달리  희주는 눈치도 빠르고 촉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그래서 나는 즉각 알았습니다. 희주가 뭘 감지했다는 것을. 무당친구가 서울로 올라가고 희주집에서 하룻밤 자게 됐을 때야  희주가 말했어요. 

"ㅇㅇ가 할배신을 모시는 것 같네. 할배 목소리를 내는 것 보니...”

엄마야. 그러고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희주 말이! 진짜로 그런 것 같습니다. 첫 회에 썼지요. 친구 목소리가 걸걸하게 변했더라고.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렇게 되었다길래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희주는 보는 눈이 달랐네요.

"담배 피운다고 목소리가 그렇게까지는 변하지않지. 할배신을 모시니까 그렇지..."

친구가 무당된 걸 받아들이기 싫어서  아무것도 묻지않았던 나는, 그리고 원래 그런 쪽으로 관심조차 없던 나는 동자신인지, 할매신인지,  할배신인지, 아줌마신인지, 신에도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신은 다 똑같은 줄 알았어요. 나중에 무당친구랑 통화할 기회가 있어서 물었습니다. 니가 모시는 신이 할배신이냐고. 친구가 대답합니다. 할배신이 맞답니다.

얘기는 그날 저녁으로부터 다시 이어집니다. 큰동생네와 헤어지고  내가 머물고 있는 작은동생네 집으로 갔습니다. 이층 조카방에서 친구와 둘이 되었습니다. 고모네에서와 같이 무섭지않았냐구요? 아니요, 전혀. 고모네와는 실내 분위기부터가 다르니까요. 반지하라서, 그리고 보일러를  돌리지 않아 (그때가 4월이라)꿉꿉하고 음습하던 고모네집과는 다른 아늑하고 밝은 동생네집이었습니다. 일단은 보일러를 돌려서 (겨울이니 당연하겠지만)방안이 따뜻해요.  천장에는 고모네같이 창백한 형광등이 아닌 노오란 빛의 백열등이 달려있으며  방에 별다른 짐이 없습니다. 꽤 넓은 방이었는데 책상, 책장, 침대, 그리고 두어가지 옷이 걸린 옷걸이가 전부네요. 물론 고모네같이 큰 화장대 거울도 없었고 시간이 바뀔 때마다 뎅그렁거리던 괘종시계도 없었어요.

온갖 살림살이들, 그러니까 옷가지들과 액자와 족자와 책들과 인형, 수석, 핸드백, 꽃병, 도자기, 굿 제단에 올렸던 음식 등이 벽과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어  어수선하고 정신 사납던 고모네와는 비교가 되지를 않아요. 고모네 집에서처럼 뒤숭숭하지가 않았어요. 처음부터 마음이 차분했습니다. 그래서 맘 편하게 친구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참, 친구의 머리. 독자여러분,  친구 머리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번에도 검고 긴 머리때문에 무섭지 않았나, 알고 싶지요?  ‘무당 시리즈’ 를  다 읽은 고향 친구하나가 그래요. 흑단같이 검은 머리채가 말갈기처럼 출렁, 하고 등 뒤로 내려왔다는 장면이 눈 앞에 떠올라 한동안 잠을 설쳤다고요. 한 독자도 같은 내용의 댓글을 썼더군요. 친구의 머리는 여전히 허리까지 내려 올 만큼 길었습니다. 얼굴을 씻고 방에 들어온 친구는  지난 번처럼 큰 집게핀과 실핀을 뽑아내고 머리를 풀어제쳤는데요. 그런데 흑단같은 머리채가 아닙니다. 약간  바랜듯한  갈색을 띄고 있습니다. 염색을 했다합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숱도 약간 준 것 같다했더니 친구가 말했습니다. 층층으로 좀 솎아냈다고. 머리숱이 하도 많아 고개가 아파서 그랬답니다.

침대를 제쳐두고 따뜻한 방바닥에 누운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지난 번에 같이 친구는 얘기하고 나는 듣고. 거의 친구가 무속인으로 살면서 겪은 얘기들)를 하다가 잠이 들었고 새벽, 전화오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큰동생이 차 시동을 건 채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합니다. 친구는 용수철처럼 발딱 일어나 욕실로 가더니 머리를 감고 들어옵니다. 목욕재계를 했으면 좋겠지만 여의치않으니 머리라도 감았다는 것입니다. 친구는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못 한채  파카를 입고 목도리를 둘둘 감은 중무장한  차림으로 방을 나갔습니다.

한번 잠이 깨면 두 번 다시 잠 들지 못하는 나는 친구가 기도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 친구가  진짜 무당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나름 손님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했으나, 그리고 해가 갈수록 모습이나 말투나 행동이 점점 더 무당같아지는 걸 느끼고 있었으나, 그래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만 내게는 오히려 그 모습이 생소하고 거리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친구의  원래 성격은 절대로 그런 쪽하고는 거리가 멀었기에 (영화나 기타 미디어에서의 무속인들은 거세고 담대하고 대차고 강합니다. 친구는 오히려 그 반대의 성격입니다. 착하고 순하고 어질고. 약간 물러터지고  맹한 구석도 있어 내 뒷 목을 잡게 한 적도 한 적도 많습니다) 점을 치고 부적을 쓰고 굿을 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어쩌다가 신이 내리긴 했지만 피할 도리가 없으니 그 쪽 길을 걷게 된 거지 본업이 무당인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늘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솔직히 그녀의 점괘나 굿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추운 날씨에 머리까지 감고 기도하러 가는 친구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친구가 아주 영험한 무당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엉터리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니까요.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자부심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 일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남의 운명을 읽는 데 대한 확신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손님들을 맞지는 않을 겁니다.

무당친구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