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직장에 다니는 할배친구가 있다. 올 7월로 일흔 셋, 은퇴를 했어도 벌써 했을 나이.

할배가 하는 일은 병원건물 청소, 일종의 노동일이다. 주 5일, 하루 여덟시간, 풀타임으로 일한다. 집, 차 페이먼트가 다 끝났는데다 아이들도 다들 앞가림 잘해 돈 들어갈 곳도 딱히 없고 부인이 몇 십년 근속한 회사에서 나오는 연금이 엄청나다고 한다. 또한 부부한테 나오는 사회보장금도 꽤 된다는 할배다.  집에서 느긋한 노후생활을 보내도 충분한 상황인데도 쉬지않고 일하는 할배. 건강이 허락되는 한 계속 일할 거라는 할배.

할배가 말한다.

“집에 있음 뭐하노. 팔다리 움직일 수 있으니까 일 해야지. 사실 별로 힘들지도 않아. 에어컨 튼 시원한 실내를 슬슬 돌아다니며 걸레질하고 먼지 털고 화장지 가는 일인데 뭐.”

그러나 나이가 나이니 만큼 가끔은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만 두란 권유를 안 한다(내가 그만두란다고 들을 할배도 아니지만). 밥 못 얻어 먹을까 봐서다.

청소일치고 보수가 꽤 괜찮은 모양인지 할배는 한인사회 여기저기에 기부금도 많이 내고 한국의 고아원에 후원금도 매달 보내고 우리들에게 밥도 자주 산다. 일을 그만 두게 되고 수입이 줄어들면 아무래도 씀씀이가 예전만 못해질 것 아닌가. 밥 사는 횟수가 적어질 것 아닌가.

위에 쓴 할배와 같은 나이인 한 할매는 35년을 다니던 직장을 몇년 전 그만두었다. 그 할매는 은퇴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정말로 옆에서 내가 보기에도 '해방된 민족'이요, 하루하루가 '신나는 달밤'이다. 매일 운동하러 다니고, 일 주일에 한두번은 꼭 친구들 만나 밥 먹고, 영어공부하러 다니고 얼굴 마사지, 몸 마사지 다니고 정말이지 일 주일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란다. 은퇴한지 몇년인데도 무료하고 따분한 줄 모른단다.
은퇴하면 수입이 줄어들게 되니 곧 굶어죽을 것 같아서, 그리고 넘쳐나는 시간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많이 망설였는데 그게 아니더란다.

"직장에 매여있지 않은 게,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쓴다는 게  이렇게 좋은 줄 알았다면 진즉 은퇴할 걸 그랬어..."

직장생활하는 사람들 중 신바람나서 일하러 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모르긴 해도 죽지 못해, 마지못해, 먹고 살아야하니까, 의료보험때문에, 기타 다른 이유로 억지로 출근하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나도 그 중 하나다. 정말로 회사 가기 싫다. 사무실직장에서 일하게 됐다고 좋아하던 초심은 어디로 갔을까. 일하는데 스트레스는 거의 없는 편인데도 다음날 출근할 생각만 하면 한숨이 저절로 난다.

10년을 하루같이 똑같은 일, 똑같은 사람, 똑같은 분위기가 따분하고 싫어서. 적당한 긴장감이나 도전이 있어야 생기도 나고 의욕이 분출되는데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똑같이 해야하니 말이다.  매일 아침, 나는 생각한다. 그만 때려치워 버릴까. 오늘 당장 가서 사표를 던져버릴까.

지금 당장 그만둔다 해도 생계에 지장은 크게 없는 편이니(쪼들리긴하겠지만 생활비야 쓰기 나름이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다. 그러나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이유는 폐인될까 봐.

집귀신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문 밖 출입을 잘 안하는 데다 아무 취미가 없는 나. 독서가 유일한 취미였던 나. 최근엔 독서보다 인터넷으로 영화보는데 푹 빠진 나. 휴일엔 날이 가는지 해가 뜨는지 하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나마 직장이라도 다니니 아침에 세수라도 하고 머리라도 빗지 직장가는 일마저 없으면 집에서 하루종일 인터넷만하며 빈자루처럼 퍼져버릴 것이다. 폐인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게 두려워서 선뜻 그만두지 못하고 지겨워라, 지겨워 노래를 부르면서도 꾸역꾸역 다니는 것이다.

최근 '늦게 은퇴할수록 오래 산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1년 늦게 은퇴하면 사망률이 11%나 떨어진다는 것이다. 오리건주립대학이 1992년에서 2010년 사이 은퇴한 미국인 2956명의 퇴직 및 사망시점을 조사한 결과 은퇴를 일찍 사람들의 사망시기가 빨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퓨리서치센터'가 올 6월 발표한 자료에서는 2007년 이후 미국인의 은퇴 연령이 계속 높아져서 2016년 5월에는 900만 명이 65세 후에도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컨설팅 업체 '윌 리스타왓슨'에 따르면 미국내 근로자 5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6%가량이 65세 이후에도 일할 계획에 있다고 대답했다. 이에 보고서는 미국인들의 은퇴시기가 갈수록 늦어지는 이유는 재정마련과 건강보험 때문일 거라고 분석했다.

얼마나 다행일까. 아침에 눈 뜨면 나갈 직장이 있으니. 맘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그만 둘 수 있으니. 생활비나 모기지 때문에, 건강보험 때문에 매여있는 직장이 아니니. 그렇지만 지겹다. 지겨워서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