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모여 저녁먹는 자리에 L할배가 나와 있다.  오랜만이라 반갑게 인사하고 자리를 잡아 앉았다.주문한 음식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일단은 밑반찬과 맥주로 목을 좀 축여야지. 

맥주를 따르는 일은 나이 어리고 동작이 제일 빠른 내 몫이다. 하나하나 맥주를 다 따라주고 마지막으로 구석에 앉은  L할배에게 잔을 쥐어 준다. 물론  L할배는  극구 사양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왜  마다하는지 잘 알고있지만 나는 짐짓 모르는 척하고 일부러 더 권해 본다.  

“운전 때문에 그래요? 한 잔 정도는 괜찮아요. 시원하게  쭉 한 잔 마시소”

옆에서 누가 말한다. 

“야야, 장로님이야, 장로님. 장로님한테 술 권하면 지옥 가는 것 모르냐!?”

잔을 거두면서 내가 궁시렁, 한 마디했다.

“장로님은 목 마름도 못 느끼는 사람인가...”

지금 목회활동을 잠시 쉬고 있는  P목사와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역시도 그랬다. 날이 더우니 자리에 앉자마자 너도나도 시원한 맥주부터 찾았는데  P목사는 아니다.  끝까지 물만 마시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들의 절제력이 놀랍기도 하고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다. 100도가 넘는 더운 날 저녁에, 하루종일 일에 지친 힘든 날 저녁에 맥주 한 잔을 마셨기로서니 뭐 그리 큰 죄가 되는 일일까. 뭐 그리 대단한 계명에 위배되는 일일까. 

동향에 나랑 성격도 비슷해 죽이 잘 맞았던 한 할배가 있다.  가끔 만나 와인이나 맥주를 하며 세상돌아가던 얘기를 나누던. 

그런 그가 얼마전에  장로가 되더니 일절 술을 멀리 한다. 술을  안 하니  재미가 없다. 곤드레만드레 취할 때까지만 안 마시면 되지 않냐. 딱 한잔만 해라. 옆에서 아무리 ‘꼬셔도’ 위의  L할배처럼 안 넘어간다. 장로로서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단다.  나는 악담을 한다.

“흥, 그 결심이 언제까지 갈지 두고 봅시다 “

K씨는  몰몬교 교인이다. 그 역시 자기 종교에서 금하는 음식은 손도 대지 않는 사람이다. 술은 물론이고 커피나 콜라 등 카페인이나 각성제가 든 음료조차도 안 마신다. 여럿 모여 커피를 마실 때도 그는 맨입으로 앉아 있거나 어린애같이 우유나 쥬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잔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나다.  커피가 몸을 차게 한다고해서 요즘은 좀 멀리하고는 있지만 커피향 없이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재미가 없다. 

나라는 사람은 교회는 나가다 말다하고 성경책은 집안 어느 구석에다 던져두었는지도 모르고 있는 ‘나이롱’ 신자다. 더구나  얼마전부터는 더욱 더 하나님이란 존재여부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는 내 의문점에 대해 아무도, 정말이지 그 아무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주위만 들러봐도 나름 독실한 ‘예수쟁이들’ 천지인데 이 의문점 하나 시원하게 납득시켜주는 사람이 없다니. 

내가  가장 간절하게 알고저 하는 건 왜 아무 죄없는 어린 아이들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비명에 죽어야 하는지다. 더구나 '죄의 죄'자도 인지하지 못하는 아기가 극한 고통을 받고 죽은 경우.

일전, 뜨거운 여름날, 어린이 집 차안에서 갖혀 죽었던 아이, 얼마나 고통에 몸부림쳤던지 팔이 다 부러졌다고 하던 아이, 그 아이의 죽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설명이 안 된다. 그런 경우마다 기독교인들은 입을 맞춘 듯 똑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일찍 데려갔다고. 젠장, 그렇게 필요했으면 아예 처음부터 태어나게 하지말고 옆에 끼고 있지!

누구는 금수저 입에 물고 태어나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다 가는데, 그 죽음마저 만인이 슬퍼해주는데,  어떤 이는 아프리카 오지의 의식주 조차 제공되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온갖 질병과 배고픔에 시달려야 하는 이유가 뭘까. 평생 고생만 한 엄마가 암으로 고통받다 세상을 뜬 후 이 동네서 가장 유능하고 믿음 좋다는 목사에게 편지를 보냈었다. 누구는 한 번도 겪지 못할 고난과 슬픔과 아픔으로 점철된 엄마랑 태어나서 손 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시어머니,  그들의 일생이 그렇게 판이하게 다른 이유가 뭐냐고. 그 목사는 자기 교회 주보 한 장을 달랑 보내오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유영철같은 살인마들도 회개하고 예수믿으면 천국간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맞는 말인가. 그럼  뭐하려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나. 오늘부터 세상의 죄란 죄는 다 짓다가 죽을때 되어서 회개하면  되지. 그리고 그 살인마가 회개하고 천국을 가면 그로부터 죽임을  당한 피해자의 억울함과 원통함은 누가 풀어주는데.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다.

목사들에게, 모태신앙에 평생 예수를 믿었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그냥 ‘하나님의 뜻’으로 뭉뚱그리고 마는데  당혹스런 질문은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란다.

또한 참혹한 사건, 사고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눈물콧물짜며  '고마우신 하나님의 은혜로인해 생존할 수 있었다’ 라고  감사의 말을 하는 걸 들을 때마다 그럼 희생된 이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단 말인가, 하는 강한 반발이  생기면서  일명 ‘믿는 자’들에 대한 거부감이 불꽃처럼 활활 일어난다.

그렇지만 종교적인 신념이 투철하여 인간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향략이나 즐거움을 초인적인 힘으로 참아내거나 포기하며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위에 쓴 L할배, P 목사, 그리고 K씨 같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참 존경스런 마음이 든다. 우러러 보인다. 경외심마저 든다.

또한 괜한 심술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괜히 빈정거려 본다.

“그렇게 열심히, 성경에서 금한 것들을 그렇게 열심히 지키며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만약 신봉해마지 않았던 하나님도 없고 기대해마지 않았던 천국도  없다면,  철석같이 믿었던 성경 내용이 다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쩔 거요? 하나님의 말씀만 좇았던 그동안의 희생이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닌가요? 아무 보상이 없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허무하고 아까울까요?”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있어. 하나님과 천국은 분명히 있다니까”

글쎄. 그들이 봤냐, 내가 봤냐. 있다는 사람한테는 있을 거고 나같은 사람한테는  없는 거겠지. 

그렇지만  나한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미래의 불확실한 천국보다는 지상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향 좋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지금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