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인으로부터 저녁초대를 받았다. 음식을 할 줄도 모르고 하기도 싫어하는 나이기에  초대는  언제든지 반갑다.  영양을 보충할 좋은 기회다. 만사를 제치고 달려갔다.

워낙 손이 큰 사람인지라  먹을 게 많을 줄  짐작해마지않았지만 역시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엄청나게 푸짐했다. 초대받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 예닐곱인데 스무사람, 서른사람이 먹고도 남을 만큼 음식이 한가득이다. 

누가 먼저 먹을새라 나는 식탁으로 달려들었다.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목구멍까지 차도록 숨도 안 쉬고 먹었다. 한참 후, 어느정도 배가 불러 숨을 돌리고 있는데 남은 음식을 좀 싸가겠냐고 묻는다.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노'다. 실컷 먹었으면 되었지 뭘 구질구질하게 싸들고 다니나. 손에 뭐 들고 다니는 것도 귀찮고 집에 가져가 봐도 냉장고 한 귀퉁이에서  굴리다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일쑤니까 아예 안 가져 가는 게  낫다. 이상하게도  집으로 싸가지고 간 음식은 본래 맛이 안 나는 거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실컷 먹는 걸로 만족하고 웬만해서는 싸가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아니다. 오히려 많이 싸달라고한다. 가능하면 맵고 짠 것말고 서양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위주로 싸달라는 요청까지 한다. 이유가 있다.

다음날, 지인이 싸준 음식들을 직장으로 가지고 갔다. 직장에는 내가 챙겨주어야 할 입들이 많은 것이다.  S, R, 그리고 최근에는 내 옆자리에 새로 온 동료까지. 

독자들은 아마 믿지 못 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부국인 미국에서, 먹을 것이 지천인 미국에서 배곯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나도 첨엔 믿지 못했으니까. 내 배가 늘 불러있으니, 어딜 가나 음식들이 넘쳐나니, 하도 많이들 먹어 살 찌는 게 제일 큰 고민인 사람들 속에서 배고파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일 년여전,  위에 쓴 S가 내 뒷자리로  옮겨왔다. 첨에 나는 그가 약간 이상한  남자인 줄 알았다. 10년 넘게  그 직장에서 일했는데도 친하게 지내는 사람 하나 없이 늘 혼자였다. 생긴 것도 우리와는 약간 달라보이고 늘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자라는 사람은 아니고 자폐성향이 조금 있는 사람이었다. 혼자 벌어 구순의 어머니를 봉양하고 사는데 요리를 전혀 할 줄 모른단다. 그래서 항상 'TV 디너'라 일컫는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음식만 먹는다고 했다. 점심이라고 싸오는 것도 모두  TV 디너.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매일을.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 같았다. 덩치는 산 만한데 먹는 게 시원치않으니 늘 허기져 했다. 마음이 아팠다. 

남편이 나보다 2 시간 일찍 출근하고 퇴근도 그에 맞춰 이르다. 그래서 아침에  남편 저녁을 만들어놓고 나온다.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와 바로 먹을 수 있게.   

스파게티 등 평범한 음식을 할 땐 그냥 넘어가고 고기요리를 할 때는 조금 넉넉히 만들기 시작했다.  일부러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이왕에 만드는 것 양만 좀 낫게 하면 S에게 갖다줄 수 있겠기에.

새 프로그램에 대한 트레이닝을 받던 중 알게 된 R .  입사한 지 몇달이 되도록 복도에서 마주치면 하이, 하던 게 다였는데 옆자리에서 일 주일간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우유도 없이 맹물에 시리얼만 타서 아침 저녁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학자금 융자 빚에 눌려 늘 허덕이느라 줄일 거라고는 식료품 밖에 없다는 이십대 중반의 젊은 아이다. 한창 먹을 나이, 얼마나 먹고 싶은 게 많을까. 

S 음식만 챙기기엔 R이 걸린다. 이왕 해다 주는 것 두루두루 해다주자 싶어 R것까지 하게 됐다. 

최근에 내 옆자리에 온 흑인 남자아이도 늘 배가 고프다. 몇년 전, 믿었던 사람들에게 크게 배신당한 후에는 새로운 사람 사귀는 게 싫어 통성명조차 일부러 하지 않았는데 이 아이가 변죽좋게 하루에도 몇번씩 고개를 빼고 묻는다. 뭐 먹을 것 없냐고. 군것질을 잘 안하는지라 내 서랍에는 커피밖에 없다.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한 게 미안해서 몇 번 음식을 갖다주었더니 허겁지겁 먹는다. 

군대 제대하고 첫 직장이라고 들어 온 게 우리 회사였는데 월급이 너무 적으니 아파트 렌트비 내고 차 유지비 내고나면 남는 돈이 없어 늘 배를 주린단다. 더구나 매일 짐에 가서 운동을 하는데 쓴 에너지만큼 먹는 걸 보충 못하니 그렇잖아도 빼빼한데 더 마른다고 걱정한다. 

배고파 본 사람이 배고픈 사람 심정을 안다는 말이 있다.  사실 나는 어릴 때 가난하게는 살았지만 굶지는 않았다. 보리밥이나마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먹었다.  그런데도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잘 알겠다.  그들의 고픈 배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아리다.  오죽하면 이 세상 서러움 중 배고픈 서러움이 제일 크다는 말이 있을까. 그들의 비워진 배가 매일매일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채워지길 간절히 바라는데...